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느영나영 둥그레 당실
김양수 2007년 07월 24일 (화) 09:52:35
h h h h  “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 “
-후렴-느영나영(너하고 나하고) 둥그레 당실 놀고요-오...

여름 장마가 끝자리에 이른 요즘 아침저녁으로 불현듯 떠올라서 절로 흥얼거려지는 제주도 민요의 한 소절입니다.
오뉴월이 지나 보리 수확을 마칠 즈음부터 시작되는 제주도의 장마는 2-3 주간 지루하게 계속되면서 섬 전체가 물먹은 솜처럼 갈아 앉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침 선잠을 깨고 내다보면 잔뜩 습기를 먹음은 안개가 유령의 도포처럼 스멀스멀 한라산 자락을 덮고 초가집 안 마당까지 자욱해 낮인지 저녁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온 세상이 안개 속이고 온 살림이 장맛비에 젖어들면 일손을 놓아 버린 동네 아낙네 비바리(처녀)들의 입심을 돋구기에는 안성마춤입니다.

훈장댁이던 우리집 사랑에서는 담뱃대를 늘어뜨린 어른들의 질펀한 입씨름이 익어 갈 때쯤 부엌은 오지랖 넓은 작은 이모가 중심이 돼 한 낮의 먹거리로 보리를 볶아 개역(미싯가루) 만드는 일로 부산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까까머리였던 나는 이모의 치마끝에 매달려 솥 뚜껑에서 튀어 오르는 고소한 보리 팦콘을 낼름 집어 먹다가 고래(맷돌)에서 갈아진 미숫가루를 욕심대로 한입 털어 넣었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캑캑거리곤 했습니다.

아낙네들이 맷돌을 맞잡아 돌리면서 시름삼아 느영나영 하는 후렴을 띄우면 작은 이모가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고파 울고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고 능청스럽게 돋구는 노래가 초가 추녀에서 지는 낙숫물 소리로 구성지게 잦아들었습니다. 지리한 장마로 눅진눅진하기만 하던 짜증도 엇갈아 부르는 노래에 씻겨지는 듯 했습니다.

4-50년 저 쪽,
네가 필름으로 남은 장면들이 이제금 끝물 장마에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습니다.
장마철이면 왁짜하던 동네 어른이나 아낙네들의 흔적도 간곳없고 초가 추녀에 지던 낙숫물 소리도 들을 수 없고 더구나 괴이한 것은 당시 노랫말처럼 구구-구-욱 하고 울어 대던 산비둘기 울음마저 종적을 감췄다는게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배가 고파 울고, 님이 그리워 울던 새들은 다 어딜 갔을까,
최근 들어 안 일입니다만 앞산 뒷산을 오가며 울어대던 텃새인 산비둘기가 없어진 것은 까치들에게 터전를 잃고 한라산 계곡으로 쫒기거나 개체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외래종인 까치가 제주도에 자릴 잡은 것은 20여년 전 일입니다. 색동과 까치가 상징이었던 아시아나 항공이 서울 제주노선 취항을 계기로 50여마리의 까치를 한라산에 방사한 것이 커다란 화근입니다. 산비둘기는 물론 까마귀까지도 수난을 당하면서 조류 생태계가 파괴에 이른 것입니다.

집단적이고 공격적인 까치의 폐해는 조류만이 아니라 감귤, 감, 콩 작물까지 전방위적입니 다. 거기에 한국전력은 정전 등 피해 방지를 위해 연간 15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을 정도로 극심한 상황에 이르자 도민들은 까치 퇴치 운동을 전개하면서 원인을 제공한 아시아나 항공을 제소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 올 정도가 됐습니다. 참 황당한 일입니다.

외래종의 침입으로 제주 민요 말처럼 느영나영(너하고 나하고)두리둥실 놀 수 없다는 게 비단 까치의 사례뿐일까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 가는 기분을 떨칠 수 없습니다. 님이 그리워 운다고 새 울음을 노래하던 작은이모도 가고 없는데 되돌릴 수 없는 아스라한 추억 몇 조각에 까치 주둥이에 찢겨진 새 울음이 환청으로 빈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까치에게는 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현재 JIBS(제주방송)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78년 KBS에 입사한 후 보도본부 문화부차장, 제주총국 보도국장, 제작 부주간, 시사보도팀장을 역임했다.1990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바람도 휴식이 그리울 것이다’ 등 4권의 시집을 냈고 국제펜클럽 회원이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행인 (211.XXX.XXX.59)
오랜 전 제주 바닷가 검은 바위 근처에서 바람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그게 "느영나영"이었네요.... 북한산 아래 동네에 살 때 보니 까치의 천적은 고양이였습니다. 제주의 고양이들아, 분발해다오!
답변달기
2007-07-24 21:59:37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