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줏빛 점퍼의 회상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김영환 사에라

자줏빛 점퍼의 회상

김영환

2013년 05월 03일 (금) 00:25:24

약 4년 전 겨울에 아내가 두툼한 번데기 점퍼를 사왔습니다. 백화점 앞에서 2만원에 팔고 있길래 사왔다는 것이었죠. 동대문이나 남대문 표를 좋아하는 성향을 꿰뚫고 있는 아내다운 구매 습관이었습니다. 아주 좋아했습니다.

아내가 사온 점퍼를 여기저기 훑어보니 '메이드 인 DPRK'였습니다. “아! 개성공단에서 만든 옷이 나에게 왔구나”하고 약간의 감탄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친구들이 옷 색깔이 좋다고 하면 ‘북한제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솔직히 옷을 본 당시에 남북협력이나 상생과 협력, 평화공존, 공동번영이라는 거창한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비즈니스 라이크‘하게 남한의 자본 및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합쳐서 만든 제품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것은 필자가 그런 경제 협력에 앞서 서신 교환과 전화 통화, 이산가족 고향방문을 비롯한 상호 내왕, 매스컴의 교류 등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이질화를 막을 비경제적 노력이 더 급선무라는 것을 독일 통일 과정을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제 점퍼를 평가하자면 그저 그랬습니다. 보온 기능은 뛰어났지만 좌우 양쪽 주머니가 너무 얕아 걸핏하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폰이나 ’와이파이 에그(일종의 휴대용 와이파이 중계기)‘가 땅바닥에 떨어져서 뚜껑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외출복이 아닌 작업복으로만 입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소비하는 의류 제품을 보면 제조국이 중국 일변도에서 서서히 벗어나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지로 퍼지고 있습니다. 나라들이 발전 단계별로 저마다 글로벌화한 한국 기업을 유치하여 잘 살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들도 우리처럼 먼저 값싼 노동력으로 섬유공업부터 발전시켜 외화를 벌어들여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계획일 것입니다.

최근에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스마트 모니터를 샀습니다. 텔레비전 기능은 물론이고 USB나 HDMI 같은 단자들을 이어서 DVD 등의 플레이어에 담긴 동영상을 모니터로 볼 수 있는 것인데 브랜드는 우리 것이지만 말레이시아 제품이었습니다.

이런 동남아 각국의 노력과는 정반대로 고립될 대로 고립된 북한은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에 핵무기 개발로 혼자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어느 나라가 북한에 쳐들어간다는 건지 평화와 번영과는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방향만 잘 잡으면 한국 말고도 각국의 투자가 불처럼 일어날 것인데 말입니다.

일부의 불만 속에서도 그런대로 굴러가던 요즘 개성공단마저 건드렸습니다. ‘말 폭탄의 달인’인 북한은 이례적으로 개성공단을 ‘6ㆍ15 선언의 옥동자’라고 평가했다는데 옥동자를 죽일 작정이 아니었다면 남측 주재원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의 보급을 막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신문들을 보면 9년간 유지해온 개성공단이 ‘민족 상생 최후의 보루’라거나 ‘남북대화의 끈’이라면서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때도 가동된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정경분리라는 것이 동족 살상 때도 적용되기는 곤란한 것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성과물이 그나마 날아갈까 봐 숨죽이고 지켜본 과잉 보호의 결과로 북한의 턱없는 주장이 확대재생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닫을 수 없다는 일부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치와 무관한 경제는 있을 수 없죠. 베트남처럼 도이모이를 내걸고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국가라면 정치가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죠. 독재 성향이 강한 체제일수록 경제는 정치에 봉사하는 하부구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근로자가 모두 철수하면 개성공단에 단전ㆍ단수하라고 촉구하는 매체도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깨는 체제는 국제사회가 외면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 어려워진다”는 우려와 경고가 나왔습니다. “공단 폐쇄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 이번 기회에 북의 버릇을 고쳐놓자”는 강력한 주장도 보입니다. 반면에 “북을 몰아간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북의 체면을 살려주자”는 친북적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이 화해하지 말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이 생긴 이유와 대책이 뭐냐 하는 데 대한 엇갈림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반 대한민국 세력이 앉아 있다“는 김진태 국회의원의 본회의 발언처럼 북한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친북이 똬리를 크게 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일부에선 개성공단의 임금이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반면 류길재 통일부 장관 같은 사람은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마중물”이라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개성공단 전원 철수를 결정하자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나중에 눈곱만큼이라도 들어주는 것으로 개성공단이 정상화된다면, 그런 개성공단은 의미가 없다”로 급선회했습니다. 마중물은 펌프를 처음 돌릴 때 한두 번 집어넣는 물입니다. 계속 들어가는 물은 마중물이 아니죠.

그런 애매모호한 언어로 뒤얽힌 남북관계는 풀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핵을 비롯한 남북간 현안에 대해 정부의 철학적이고 군사안보적인 분석과 답변이 절실해졌습니다. 북핵과 개성공단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정치한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많은 국민들이 묻고 있습니다.

박경용 (115.XXX.XXX.144)

남북관계 참 답답합니다. 북측 권력집단은 조폭을 연상하게 하고 국민은 그들의 인질이된 느낌입니다. 남측 정치집단은 자기 이익을위해 좌익우익하며 시대적으로 한물간 이념으로 대결하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들도 많이 성숙되어 있는데 보수언론과 합세한 이들의 행태는 반성해야할 것입니다.언제 유럽수준의 성숙한 사회가 될런지요, 선생님과 같은 글이 많아야 그 기간을 좁힐 것입니다.

답변달기 ▼

2013-05-13 13:05:25

2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