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구해도 불편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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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구해도 불편한 마음

정달호

2013년 05월 21일 (화) 02:19:42

불에 탄 지 5년 3개월 만에 숭례문이 복구되었습니다. 측면 성곽까지 복구되었으니 불타기 전의 모습보다 더 위용을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숭례문 복구를 보는 마음이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수도 서울의 얼굴과도 같은 상징성이 큰 우리 문화재가 속절없이 화염에 싸일 때의 허탈감과 망연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탓일 겁니다. 숭례문 화재는 선진국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고일 텐데, 이처럼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기에 여전히 마음속에 불편함과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숭례문 복구작업에 관한 기사가 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문화재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그 소실의 아픔에 대한 기억이 앞서 발 빠른 복구작업이 도리어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불탄 숭례문의 흉한 모습을 덮고 재빨리 복구하는 것이 거대한 실패의 책임을 덮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당국의 심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재와 기술로 근사하게 복구를 한들 600년의 역사를 품은 그 숭례문은 아닐 것이기에 복구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조선왕조 5백년과 근대 1백년의 영욕을 함께 해온 그 숭례문은 소멸하고 그 자리에 새 숭례문이 들어섰으니 이 새 숭례문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긴 해도 상당 시일이 지나기까지는 이 새 축조물을 볼 때마다 옛 숭례문의 기억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국보 1호라는 등급에 대한 논란을 넘어 선조 대대로 우리와 함께해왔던 유구한 문화재로서의 기억 뿐 아니라 한 불량자의 방화로 어처구니없이 내려앉았음에 대한 아픔과 분노의 기억과 함께 말입니다. 새 숭례문은 새 건물이라서 그런지 그리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보완된 성곽 양쪽 길이의 불균형 내지 각도의 옹색함도 시선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숭례문이 화염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얼굴이요 역사이기도 한 숭례문을 경비원이나 보안시스템도 갖추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으니 국정이 잘못되어도 여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게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통해 잘못의 이유를 밝혀내었어야 합니다. 조속한 복구보다도 진실 규명이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선진국의 경우 대형사고가 나면 반드시 2, 3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리더라도 의회를 중심으로 철저한 조사를 하여 합당한 보고서를 내는 것이 상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이런 반성과 조사보다도 빠른 복구를 통해 낭패감을 털고 실패의 책임을 묻어버리려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숭례문 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대형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거나 잠재합니다. 그 원인들을 여러모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단계별로 공직을 맡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온 데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보살피는 일을 맡은 공직자들이 각자 소임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데 어떤 국민이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공직을 맡은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까지 그 자리가 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초대형 불상사가 난다면 국민의 위임을 받아 모든 국정을 감독할 책임을 진 국회에 그 궁극적 책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국회는 무슨 일이 터지면 담당 공직자를 불러 호통을 치면서 정작 자기들이 국정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은 덮어두는 뻔뻔한 행태를 보여 왔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대형사고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의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의회가 궁극적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어찌하면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들로 하여금 소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이들이 소임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법이 바로 서야 합니다. 법을 위반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아무런 가책도 없이 버젓이 행세하는 사회에 공정과 정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법치주의 하에서 법을 엄정히 집행하지 않는다면 결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법의 엄정한 집행을 위해서는 공직자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법을 지킨다는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좋은 공직자, 좋은 사회구성원을 배양하기 위해 교육이 바로 서야 함은 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야말로 땅에 떨어진 이 시대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중지를 모으고 다 함께 나서야 할 것입니다. 시민을 대신하여 국정을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법, 교육, 언론 등 전반적인 영역에 관여하는 것이 바로 정치요, 정치를 책임진 것이 정당과 국회인 만큼 국회의원들은 구태의연한 정략에 매몰되어 국사를 겉돌게 할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최종적으로 감시, 감독하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의 몫입니다. 개헌논의를 통해 권력의 배분이나 운용을 개선할 방법도 찾아야겠지만 선거를 통하지 않고도 국회의원을 감독할 국민의 권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헌법 개정 시 국회의원 소환제도를 마련하여 직분에 충실하지 않은 국회의원이 없도록 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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