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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반란
방석순 2007년 07월 27일 (금) 03:35:31
그날 밤 딸들은 삼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외삼촌들도 불려왔습니다. 산지사방에 흩어져 살던 그들이 모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찍 도착한 패들은 구수회의를 열어 짐작이 가는대로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아파트가 50여m 뒤로 보이는 길목, 맏딸은 아빠와 엄마의 모든 형제가 모인 가운데 나직나직 심각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이행될 사항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어린 조카라고만 볼 수 없을 만큼 단호한 목소리였습니다. 삼촌들도 외삼촌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굳어진 결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낚싯대에 드리운 납덩어리처럼 모두가 무거운 얼굴로 아파트에 들어섰습니다. 거실 장식장 위에는 예전 딸들과 엄마 아빠가 환한 모습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가 일행을 맞았습니다.

방안 광경은 참담했습니다. 이부자리가 널린 방바닥에 헤아리기도 쉽지 않을 정도의 술병과 책과 일상용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방안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난데없이 빨랫줄이 걸려 있고 거기에도 이불이니 수건이니 옷가지들이 어수선하게 걸쳐져 있었습니다.

병인은 밤낮으로 이부자리를 깔고 덮고 한 손에 술병을, 다른 손에 핸드폰을 쥐고 식구들을 차례로 불러대며 술에 취해 살아왔던 것입니다. 때로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처자식의 언행을 폭력으로 응징해 여기저기 멍들고 다치고 했지만 모두들 우연한 사고와 부상으로 위장해 숨기고만 지내온 것입니다. 특히 가계를 꾸리느라 밖으로 나다니는 처에 대한 의심과 겁박은 너무나 가혹해 급기야 딸들의 결심을 재촉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낸 몇 달, 몇 년이 결국 병만 키워놓았다며 모두들 후회막급이었습니다.

병인으로부터 이성적인 상황판단이나 응대를 기대하기는 애초에 틀린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삼촌들은, 외삼촌들은 위로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면서 병인을 달래보았습니다. 그 상황에선 우선 술병부터 고쳐 보자며 타일러보는 게 고작 할 수 있는 인사였습니다. 병인은 한사코 술병을 부인하며 처자식의 무관심이 자신의 화병을 불렀다고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미 때를 놓쳐 모든 게 부질없는 입씨름임을 한탄하면서 삼촌들도 외삼촌들도 고개를 흔들며 물러났습니다. 말없이 앉았던 막내삼촌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줄기가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도 건강했던, 그리고 아버지처럼 의젓하고 어질던 형의 옛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병이 깊어진 형의 장담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슬픔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딸들의 전화를 받은 구급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습니다. 차마 지켜볼 수 없는 광경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형제들은 하나 둘 자리를 피했습니다. 건장한 두 청년이 남아있는 몇 사람에게 간단히 신분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병인의 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잠시 실랑이가 있었을 뿐 병인은 아주 간단히, 손쉽게, 가볍게 두 청년에게 들려나왔습니다. 대낮부터 입고 있던 파자마 바람으로. 병약해진 그의 힘으로는 버틸 재주가 없었던 것입니다. 형제들을 부르고 처남들을 찾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어떤 멀쩡한 성인이라도 이런 기습이라면 아무 대책없이, 속절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또 한편 처자식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 끌려가게 된 그의 처지가 안쓰럽고 서글펐습니다.

그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사업가였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있었고 자신의 뛰어난 기술도 있어 활발하게 사업을 펼쳐나갔습니다. 사업상 어쩔 수 없다며 때때로 술판을 벌이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아내를 아끼고 딸들을 사랑하던 자상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일시에 너무 많이 변했고, 그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나이가 들고 스스로 날개가 꺾였다며 주저앉은 그에게 가장 큰 위로가 술이었습니다. 괴로울 때 마시는 술, 혼자서 마시는 술은 음식이 아니라 독약입니다. 술이 그의 육신을 해치고, 정신을 해치고, 마침내는 그의 전체를 마셔버린 것입니다.

알코올중독은 일차적으로 개개인의 자제력이 부족한 탓일 겁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술 권하는 사회, 폭음이 자랑인 음주문화에 있습니다. 술잔을 나눌 수 있어야 비로소 피가 통하는 사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관습이 문제입니다. 내미는 술잔을 사양하는 것은 동질성을 거부하고 한 통속이 되기를 거절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한동안 대학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술 못하는 후배에게, 하급자에게 공공연히 기합이 가해졌습니다. 과음으로 인한 사망사고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MT에 술을 지원하겠다는 무지스러운 상혼의 주류업체가 줄을 잇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이 마신 술은 대략 맥주 80병, 소주 72병, 양주 1병 반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알코올중독자 수가 200만명이 넘습니다. 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와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20조원을 넘는다고 보건복지부는 추산합니다. 지속적인 경제난, 구직난으로 이러한 수치는 갈수록 나빠지리라는 예고입니다.

더욱 불행한 일은 다른 질병과는 달리 술로 인한 병은 대부분 이성의 상실과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배우자는 물론 자녀들에게도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충격이 가해지고 마침내 가정이 파탄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밤중 구급차를 먼눈으로 전송하고 다시 돌아온 아파트에서 딸들은 엄마와 함께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를 술에 빼앗긴 슬픔에, 그토록 단란했던 가정을 술 때문에 잃었다는 설움에 그들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삼촌들은, 외삼촌들은 “마음을 모아, 정성을 모아 꼭 아빠를 되찾아오자”며 어린 조카들의 어깨를 다독거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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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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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 (121.XXX.XXX.105)
다시 건강하시던 모습으로 되돌아 오실꺼라 믿어의심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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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8 15:54:54
2 2
이양재 (222.XXX.XXX.98)
경험 할수 있는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족의 사랑이 있는한 또다시 더 큰 행복이 찿아옵니다. 힘을 네세요.
답변달기
2007-08-02 13:47:4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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