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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南天) 송수남 선생님의 뜨락에서
안진의 2013년 06월 11일 (화) 00:34:45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열정을 보여 주셨던 화사하고 활기찬 꽃그림처럼,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슬퍼 마시고, 생전의 좋은 생각을 떠올리며, 꽃으로 가득한 장례를 치렀으면 하십니다. 여느 장례식처럼 무겁고 칙칙하게 오시는 분들은 절대로 사절한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부고를 접하고 온몸에 전율이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밝고 화사한 꽃이 되어 달라는 유지에, 가시는 길도 선생님답다고 생각하며 검정색 옷 위에 노란 꽃그림 스카프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영정 앞에 꽃 한 송이를 놓은 후 여태껏 선생님을 뵈었던 순간 중 가장 긴 시간동안 겁없이 선생님의 눈을 마주했습니다.

한국화단의 큰 별이신 남천(南天) 송수남 선생님께서 8일 새벽에 급성 폐렴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75세입니다. 늘 인생을 ‘소풍’에 비유하셨던 선생님이 이승에서의 소풍을 마감하고 돌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너무나 존경했고 또 한편 너무나 어려워했기에 제대로 진심도 못 보여 드리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제겐 더없이 야속한 이별이었습니다.

남천 송수남 선생님은 당신이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곳인 전주에서, 1년 중 가장 좋은 때인 10월 25일에 태어나셨습니다. 동그란 뿔테 안경과 남산만한 배가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어릴 적 뒷동산에서 마음껏 뛰놀던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의 모습을 돌아가실 때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던 분이셨습니다.

   
1980년대 한국화의 위기상황에서 수묵을 통한 동양 고유의 정신을 찾고 새로운 한국화를 정립하고자, 우리 것을 되찾자는 문화적 자각의 ‘수묵화 운동’을 주도하신 분이십니다. 그간의 전통적 산수화에 현대적 조형성을 입히고, 수묵조형을 통해 현대한국화의 또 다른 지평을 열며, 살아서 생동하는 정신 속에 전통을 지키려 했던 뛰어난 작가이셨습니다.

또한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 제자들을 뜨거운 열정으로 키워내신 따뜻한 교육자이셨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옷을 벗어주셨고, 운동권 학생들이 농성을 하면 끼니를 걱정하며 라면박스를 넣어주셨고, 사재를 털어 전시회를 후원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 술을 못 얻어먹은 학생이 없을 만큼 술도 원 없이 사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술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늦은 오후 하늘의 먹빛이 시작되면 절로 술이 고픈 시간이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한껏 만나지는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술처럼 맛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시는 술집은 늘 정해져 있었는데, 술과 안주는 늘 같아도 언제나 정겹고 편안한, 세월이 주는 행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술상은 대개 두 시간도 넘기지 않고 끝나셨습니다. 속전속결 즉 ‘빨리 먹고 빨리 취하고 빨리 놀다 빨리 집에 간다.’ 그리고는 달콤한 초콜릿이나 쿠키 또는 커피를 즐기신 후 댁에 들어가셨습니다. 네댓시간의 수면 후, 선생님은 새벽부터 이른 작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술잔을 들든, 붓을 들든, 선생님의 손가락은 그의 작품 ‘붓의 놀림‘처럼 한시도 쉼이 없었습니다.

홍익대학교 교정을 돌고 운구차는 말년의 작업장이었던 전주를 향했습니다. 선생님의 뜨락에 오방색 발이 드리워지고 그 안에서 선생님의 동그란 뿔테 안경이 다시 웃고 있었습니다. 좋아하셨던 와인 한 잔과 달콤한 빵이 영정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햇볕은 따듯하고 하늘은 푸르고 선생님의 뜨락은 선생님의 그림 같은 꽃 천지였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실엔 여전히 묵향이 돌고, 수많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단아한 우리 옛 물건들의 향취가 가득했습니다. 서울 서교동의 작업실에 계실 때는 학교에 잠깐, 작업실에 주로, 그리고 인사동에 가끔 가시는 단조로운 일상이셨는데, 전주에 내려와서는 그 모든 일을 이 한 곳에서 하시면서, 우르르 따르던 제자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뜨락에 각종 야생화를 가득 심고, 담요 얹은 그네의자와 석등과 항아리도 놓고, 울긋불긋 좋아하시는 전통 상여 장식들을 여기저기 세워놓고 돌 위에는 부처상도 슬며시 올려놓으신 후, 뚱하면서도 소박한 그 표정들을 읽고 보듬으시면서, 술 익는 시간을, 찾아오는 제자를 기다리셨을 것만 같습니다.

‘야무지지 못하고 대범한 구상, 야물지 못하고 덤덤한 솜씨, 그러면서도 진실한 준법(皴法)과 묵법(墨法)과 구도가 한국미의 본질에 육박하고, 어두우면서 밝고, 허술하면서도 짜임새 있고, 어리석은 듯하면서 지혜로워 따듯하고 정답다.’는 이경성 선생님의 평론을 읽자면 그 자체가 바로 남천 선생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색은 저 혼자 고와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색에 따라 달라져요. 인생도 마찬가지지요.” 관계의 소중함을 알려주신 분, 솔직한 교육자, 교실 밖에서 더 큰 가르침을 주신 분, 투박하지만 따듯한 정으로 학생들을 아끼셨고 화단에서는 끊임없는 창작과 실험정신으로 작가로서의 위대함을 보여주신 분, 외로움을 빼고는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던 분.

선생님의 장지에는 제자들이 놓은 꽃들이 가지런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마치 나비가 되어 흔들어 놓은 것처럼 선생님의 따듯한 온기와 천진난만한 미소가 그윽한 꽃 향으로 우리의 마음을 적십니다. 그림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고, 그림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처럼 느낀다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선생님의 뜨락에서 선생님의 소풍에 동행했던 시간을 영원한 행복과 추억으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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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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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단정한 상복에 꽃그림 가득한 스카프를 두르고
찾아뵐 스승이 있다는 말씀,
그 분의 참 제자이심을 부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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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17:40:25
0 0
임종건 (211.XXX.XXX.73)
남천 선생의 영정이 없는데도 얼굴이 그려지고, 작품이 없는데도 작품이 연상되는 그림같은 추모사군요.
답변달기
2013-06-11 08:36:0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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