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들 지금 다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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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들 지금 다 어디에'

황경춘

2013년 07월 04일 (목) 00:41:03

일제 식민지 시절의 옛날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금년으로 70년이 됩니다.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매년 4월에 있는 모교 개교 기념식에 맞추어 우리 동기는 졸업 50주년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유일하게 옛 모습대로 남아 있는 학교 도서관 건물을 빌려, 우리 14회 졸업생은 작고한 동기생 45명의 추모식 등 별도의 행사로 이날을 기념했습니다.

그 행사를 위해 모교가 있는 진주에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서울에는 기념 문집 발행을 위한 편찬위원회도 만들었었습니다. 확인된 당시 생존자 수는 47명이었습니다. 그중 해외에 거주하는 한 친구를 뺀 46명이 글을 쓴 문집은 예정대로 기념행사에 맞추어 발간되었습니다.

비매품으로 만들어진 350쪽을 넘는 ‘飛鳳(비봉)을 떠난 지 50년’이란 제목의 이 책에는 동기생들의 학창시절의 귀중한 추억담을 포함한 여러 글 외에, 개인이 소유하던 일제강점 때 학교 관련 사진과 친한 친구끼리 찍은 학창 시절 사진 등이 수록되었습니다. 비봉은 학교 바로 뒤에 있는 나지막한 산 이름입니다.

국민의 모든 행동이 전쟁 수행으로 제약을 받던 당시, 개인 사진은 사치품으로 간주되어, 당연히 있어야 할 우리의 졸업 기념 앨범 제작이 금지되었습니다. 우리는 친한 친구 5~6명이 이곳저곳 기념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직업 사진사에 앨범 작성을 몰래 부탁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귀중한 사진 일부가 이 책에 수록되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모교에서 있었던 이 졸업 50주년 기념식에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30명 내외 동기생이 참가하여, 전야제 만찬으로 시작된 1박2일의 각종 행사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이미 60대 후반이거나 70줄에 들어선 동기생들의 이 모임 이후의 신상 변화는 매우 빨랐습니다. 20년이 지난 현재, 집에서 두문불출하거나 요양원에 들어 있는 친구를 합쳐 생존해 있는 동기생 수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저와 함께 기념문집 발간을 책임진 친구는, ‘125세에의 도전’이란 단행본을 개인적으로 내기까지 한 생활력이 강한 경제학 교수였습니다. 50이 넘어 박사학위를 딴 활동력이 왕성하던 그도 얼마 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1980년대 중반에 동기회 모임을 재정비했습니다. 중앙 조직을 없애고 동기생이 많이 거주하는 진주 부산 서울 세 곳에 지역 동기회를 구성하고, 매월 14일에 점심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 해 한 번씩 1박2일의 합동 모임을 세 곳 동기회가 번갈아 주최했습니다.

이 합동 모임은 나이가 들고 회원이 줄게 되자 10여 년 전에 중지되었으나, 14일의 월례 모임은 부산과 서울에서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한때 20명을 넘는 동기생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 생존회원은 5명으로 줄었습니다. 요양원에 있는 한 사람을 뺀 4명이 지금도 매달 모임을 가집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청력에 문제가 있어 옛날과 같이 아기자기하게 이야기하기가 힘든 것이 아쉽습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요양소에 입원 중인 친구의 장남이 문병을 갔다가 전화를 연결해 줘, 며칠 전 이 친구와 정다운 통화를 했습니다. 아들 이야기로는 최근 약간 치매 증상이 발견되었다고 들었으나, 이날은 뚜렷한 어조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우리 친구 사이에 최초의 치매 환자가 생겨 진주 어느 요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개교기념식 후 면회 안내를 맡은 친구가 바로 이 친구였습니다. 광복 전, 신의주 근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일제 패전 후 구사일생으로 남하에 성공하여 평생 교직을 지켰던 친구입니다. 서울에 있는 아들과 같이 살게 되어 모임에 나와, 신의주 근처 출신인 식당 여사장과 그 지방 이야기를 한참 재미있게 하던 것이 몇 달 전 이야기입니다.

서울 동기생의 최근 부음은 한 달 전에 있었습니다. 고위 관직에 있다가 변호사업을 시작해 무료변호 등 봉사 활동으로 유명했던 이 친구는, 작년 하반기부터 집에서 요양 중 타계했습니다. 가족의 반대로 문병도 가지 못 한 사이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래 살다보니 험한 꼴을 많이 본다.”고 한 시골 노인들 푸념이 자주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집안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혹은 항렬이 낮은 사람의 부음을 받을 때 잘 듣던 말입니다.

동기생 월례 모임을 시작할 때, 건배를 하며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이 모임을 계속하는 거야!”라는 누군가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한 우리였습니다. 누군가가 혼자 남아 그 ‘험한 꼴’에 직면할 것이 명명백백한 사실인데 요즘 모임에서는 누구도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 강 (110.XXX.XXX.167)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작고하신 아버님 생각이 남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전 저의집에 오셔서 건강검진을 받으시고서 지병이 없이 건강하시니 적당한 운동만 하시면 오랫동안 사실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한블럭을 걸어서 외식을하고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시골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부음을 듣게 되어습니다. 고교동창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후에 아버님 동창 명부를 발견하고 전화를 해보았는데, 34명 명부중 생존하신분이 15명가량 된다고 하였습니다. 2년전에 작성된 명부였는데 벌써 절반정도만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모임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또 인원이 줄어들 때마다 그 기분은 어떠셨을까요? 예전에 대학원생시절 저의 지도교수님께서도 친구분이나 지인의 부음을 접하시면 어두운 그늘진 얼굴로 "나 집에갈께" 하셨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세월에 장사없다지만 아쉽고 야속한것이 세월인가 봅니다. 선생님의 글로 오늘은 지난 회상의 시간을 갖게되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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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2: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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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110.XXX.XXX.167)

세상 일이 다 그렇습니다. 건강한 아버님을 뵈온 일주일 후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독후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더욱 건강에 조심하여
오래 글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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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2: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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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웅 (110.XXX.XXX.167)

황선생님 건강계속 유지하셔서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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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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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110.XXX.XXX.16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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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2: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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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110.XXX.XXX.167)

한시대를 이끌어 온 구세대들의 단면입니다. 시대가 변하여 향후 세대는 자기들끼리 다시 룰울 정하여 살아가겠지만, 현시점에 대한민국 청년들은 향락에 찌들어가는 자본주의 말로를 향해 치닫고 있는것 같습니다. 현재 중학교과정에서 학교기념식은 하지 않고 3.1절노래, 6.25노래,개천절, 광복절 노래를 가르치지도 않고, 스승의노래 어버이은혜 노래도 가르치지 않으며, 가곡, 등을 통한 정서순화등은 1학기에 몰아붙여, 음악, 미술, 체육을 끝내버리고ㅓ 국영수에 치우친교육으로 일관하고 잇습니다. 그래서 흙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은 춘다...아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이런 노래를 부를지 모르니, 향후 우리 청년들은 사회를 이루는 공감대가 무엇일까요.. 학교교육자체를 음미체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체육시간에 배우는 좌향좌 우향우 뒤로돌아도 못합니다. 바보들의 집단입니다. 이런 애들이 30년후에 무슨 추억을 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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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1: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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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110.XXX.XXX.167)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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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1: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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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10.XXX.XXX.167)

KC님! 너 아니면 나 누군가는 남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누가 그 역할을 맡을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그래도 함께 그 십자가를 지는 쪽이 더 영광스럽지 않을까요. 최후의 1인으로서의 할 일도 대단히 중요하니까요. 험한 꼴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참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내 친구들 다 뒷바라지 해서 보내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를 지킨다는 거. 그게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닐까요. KC님! 그 임무를 다했다는 글까지 읽어보고 싶습니다. 더 오래 더 차분하게 인생은 이런 것이 최선이다를 증명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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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1: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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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110.XXX.XXX.167)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과욕임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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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1: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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