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안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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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안과 전문의?

방석순

2013년 07월 16일 (화) 03:18:10

"역사는 혼이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역사 문제는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것으로 (잘못하면) 한 개인, 한 민족의 영혼이 다치게 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처음 만난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에게 한 말입니다. 이달 초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두 장관은 한·일 양국의 새 정권 출범 후 비로소 첫 대면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냉랭해져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 사이가 이렇게 불편해진 것은 양측에 모두 불행한 일입니다. 윤 장관의 발언은 역사 왜곡과 망언을 일삼으며 우경화로 치달아 오늘의 상황을 초래한 일본 집권당과 극우 세력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바르게 알고 그 교훈을 소중히 여겨 경계했더라면 거듭해서 외세에 처참히 짓밟히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 선대에서도 못난 자들이 제 허물을 덮기 위해 역사를 외면하거나 정쟁에만 골몰하다 온 백성을 환난에 몰아넣곤 했던 것입니다.

고려 말 정승을 지낸 행촌(杏村) 이암(李喦; 1297~1364)은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엮으며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라는 형체(形體)와 같고 역사는 영혼(靈魂)과 같은데 형(形)이 혼(魂)을 잃어버리고 보존될 수 있겠는가?(國猶形史猶魂形可失魂而保乎) …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심해져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다시 세우는 일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는데, 우리 대신(大臣)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 안에 역사가 없고 형(形)이 혼(魂)을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몽골의 입김에 하루아침에 왕이 뒤바뀌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왕위에 앉았다가 느닷없이 원(元) 나라로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쫓겨났던 왕이 아들과 아귀다툼 벌여 복위하기도 했습니다. 군주(君主)를 일컫는 호칭이 짐(朕)에서 고(孤)로, 폐하(陛下)에서 전하(殿下)로 격하되었습니다. 시호(諡號)는 조종(祖宗)에서 왕(王)으로, 보위(寶位)를 이을 태자(太子)는 세자(世子)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던 모든 용어가 줄줄이 한 단계 내려앉았습니다. 외세에 짓눌려 독립된 나라의 자긍심을 잃어버린 참담한 심사를 토로하며 이암은 역사의 중요성을 그렇게 피력했던 것입니다. 그는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역사에 있다는 신념으로 단군세기를 펴냈습니다.

얼마 전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언론사의 설문조사가 큰 논란이 됐습니다. 6·25를 ‘북침’이라고 한 응답이 69%나 됐다는 것입니다. 중고교생들 가운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독립지사 안중근(安重根), 윤봉길(尹奉吉)과 매국노 이완용(李完用)을 구분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안중근 의사(義士)를 병자를 고치는 의사(醫師)로 잘못 알거나, 일제 침략 야욕의 상징 욱일승천기의 의미를 모른 채 예쁘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답니다. 6·25의 ‘북침(北侵)’ 응답은 ‘북한의 침략’으로 잘못 이해한 탓으로 뒤늦게 밝혀졌다지만 안 의사를 병원 의사로 잘못 아는 것처럼 우리 학교의 역사 교육에도 어문 교육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는 우려는 가시지 않습니다.

현재 고교 3년생 대부분은 한국사를 배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학업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한국사는 사회탐구 11개 과목 중 하나인 선택과목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대학 수능에서도 선택과목으로 밀렸습니다. 수업은 자연 소홀해지고,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도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제 나라 역사에 대한 기초상식조차 갖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05학년도 수능 국사 응시자가 전체의 27.7%였는데 2013학년도에는 7.1%로 줄었습니다. 반면 이웃 일본의 국사 응시율은 무려 40%라고 합니다.

서울대는 2005년 이후에도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키고 있는 유일한 4년제 대학교입니다. 그 서울대에서 최근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하자는 논의가 벌어져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결국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지만 논의의 배경이 한국사가 서울대에 가려는 학생들만의 과목으로 인식되어 오히려 한국사를 멀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니 입맛이 씁쓸합니다.

학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든, 뭔가 가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든 역사가 선택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온 기록이고 앞으로 살아갈 지침이요, 교훈입니다. 역사를 모르면 시공(時空) 속에서 제 위치를 알 수도 없고, 나아갈 길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학과목에서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은 선거에서 포퓰리즘으로 표심을 얻으려는 일부 정치꾼들의 얕은 수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행히 교육계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최근 역사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지난달 한국교총 출범식에서 “한국사가 수능 선택과목이 되면서 고교 1학년 때 몰아배우고 마는 것이 교육의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반영해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김영환 민주당 의원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6·25를 미국과 일본의 전쟁으로, 3·1절이 안중근 의사 선생님이 병을 치료하다가 일본군과 싸운 날이라고 답한 사례까지 있었다"고 학생들의 역사 지식 부족을 개탄했습니다. 김 의원 역시 "대입 수능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창조경제시대에 걸맞게 단순 암기식 교육이 아닌 토론 교육과 창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당 안에서도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제 역사 교육을 맡은 일선 학교들이 나서야 할 차례입니다. 책상머리에서 연대를 외우게 하는 방식으로는 학생들에게 역사의 중요성도 흥미도 깨우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숨결이 남아 있는 현장과 박물관을 찾아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 스스로 확인하고 체험하며, 그 교훈을 새기는 창의적이고 살아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모처럼 공론화되고 있는 역사 교육의 개선 노력이 실효를 거두어 우리의 역사가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용웅 (58.XXX.XXX.96)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동일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자 교육도 강화되어야 '안중근 의사'를 병원 의사로 오해하는 일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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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16: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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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주 (58.XXX.XXX.96)

마침 필요한 때에 역사는 그 나라의 혼임을 일깨우신 좋은 글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셔서 나이 든 국민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르칠 선생님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또 문제라 하니 걱정스럽습니다. 교과서, 참고서들도 잘 돼 있어야 하겠지요. 하루 속히 조치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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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16: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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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근 (58.XXX.XXX.96)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국사는 모든 시험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않는 필수과목이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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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16: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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