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임철순 담연칼럼
     
노래도 늙는구나<6> - 동요는 다 슬프다
임철순 2007년 08월 06일 (월) 09:14:17
꽃병처럼 허리에 두 손을 얹고 한들한들 고갯짓하며 뒷걸음질하는 여교사
그 호루라기 소리 맞춰 “셋, 넷” 소리치며 따라가는 병아리같은 어린이들
멈추어라, 너희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오래 전의 내 노트에 씌어 있는 글입니다. 꽃들이 저마다 힘내어 핀 어느 맑고 밝은 봄날, 여교사가 유치원 아이들 10여명을 이끌고 나들이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부는 호루라기는 “하나 둘!” 하는 신호입니다. 그 소리에 맞춰 노란 옷차림의 아이들이 힘차고 즐겁게 “셋 넷!”을 이어 외치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숫자를 가르치고 순서를 알려 주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대목입니다. 줄 맞추기, 발 맞추기, 따라가기, 함께 소리내기, 그 짧은 봄날의 나들이에 교육의 큰 줄거리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스케치북이 든 가방을 메고 그림을 그리러 가고 있었습니다. 발 맞추어 걷다가 재잘거리다가 까르르 까르르 새새끼들처럼 웃다가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 보겠네’, 「앞으로」라는 제목의 노래, 어린이달 5월이면 흔히 듣게 되는 그 노래.

 리모컨으로 화면을 정지시키듯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멈추게 하고 싶은 순간, 머무르고 싶은 삶의 순간이 있습니다. ‘멈추어라, 너희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는 괴테 「파우스트」에 나오는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을 약간 바꾼 것입니다.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을 향해서 이 말을 외치면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기로 했던 계약의 말입니다. 어린이들의 봄나들이를 보면서 멈추라는 말을 한 것은 그 장면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줄 맞춰 걸어갈 때는 귀엽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자 뭔지 애닯고 안타깝고 목이 메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움 속에는 항상 애수와 슬픔의 정서가 깃들이는 것인가, 아름다운 순간은 이내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므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슬퍼지게 되는 것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노래만이 아니라 다른 동요를 들어도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섬집 아이」라는 노래는 항상 목이 메이게 합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스르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1절 2절이 다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기 손바닥 발간 손바닥 무엇 달라 내미나 발간 손바닥’ 그 노래, 그리고 ‘뜰 앞의 벌 나비 소르륵 소르륵 꿀 빨다 꿀 빨다 잠이 들고 앞 마당의 바둑이 쌔근쌔근 닭 쫓다 닭 쫓다 잠이 들고’ 그 노래.

 그리고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오빠생각」의 2절. 그리고 「꽃밭에서」라는 동요의 2절-‘애들하고 재미있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 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1절에서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인 꽃밭을 함께 만들었던 아빠는 어디 간 것일까요? ‘아빠는 어딜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라는 이미자의 가요 「기러기아빠」가 연상됩니다.

 이런 노래에 목이 메이는 것은 가난한 시대의, 외로운 어린이들의, 가족 간의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겠습니까. 자꾸 걸어 앞으로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니 아이들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싶어 했겠습니까.

 동요는 결국 어른의 노래입니다. 어린이들의 입으로 어른들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동요에 담긴 원망(願望)과 그리움, 새것에 대한 반가움, 상실의 아픔 이런 것들은 따지고 보면 다 어른의 것입니다. 어린이를 귀여워하는 것,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이제 다시는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어린이가 자라면 어린이가 지닌 상처도 함께 자랍니다. 그래서 동요에는 상처까지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서정주의 <미당 자서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돌아가고지고. 그래도 요량이나 겨우 되는 이 마음 가지고 내 어린 철로 다시 한 번만 더 돌아가, 그 분의 그 고독한 사랑에 뺨을 비비며 압니다고 한 번만 말해 드리고지고’. 미당의 외할머니는 시집 온 지 얼마 안 돼 어부인 남편을 바다에 잃었습니다. 바닷가의 그 집 마당에 해일이 밀려오면 외할머니는 반가운 남편과 상봉이라도 하는 듯 신부처럼 표정이 환해졌답니다. 바닷물 따라온 물고기와 게가 반가워 이리저리 뛰어 다녔던 미당은 자란 뒤에야 외할머니의 고독과 기쁨을 알고 ‘돌아가고지고…’의 글을 쓴 것입니다.

 미당을 본받아 “돌아가고지고.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지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돌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가 바로 동요가 알려주는 삶의 진실입니다. 어린이를 통해, 어린이를 위해 삶을 말하는 인간의 안타까운 노력, 그래서 모든 동요는 다 슬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그래서 그런 건지,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지, 동요를 들으며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바르고 옳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책이었는지 잊었지만 법정 스님의 수상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산다는 게 뭔가. 모르겠다. 어제는 알 것 같더니 오늘은 또 모르겠다.’ 어제는 알 것 같더니 오늘, 바로 지금은 모르겠다는 데 묘미가 있습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지금 그 말을 표절하고 싶습니다. 동요가 왜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알 것 같더니 오늘은 또 모르겠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6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박창원 (211.XXX.XXX.231)
베토벤은 "음악은 만든이의 인격의 반영이다" 라는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작곡가의 마음 만큼이나 듣는이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임주필님의 말씀대로 동요을 만든이가 어른이요 어두운 시대분인 것 만큼 듣는 지금의 우리또한 밝은 세상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 우울함이 반영되는 것이 아닐 까요? "멈추어라 너희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다름에 글귀는? 멈추어라! 지금의 나의 슬픔이여 ..._-_
답변달기
2007-08-10 13:40:13
0 0
박정미 (121.XXX.XXX.152)
언제나 공감하는 글로 마음에 새로운 청량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요를 들으며 슬펐던 기억이 저도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적으로 짜증나는 썰렁한? 한국 땅에서 참신한 내용의 글은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물음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어제는 알 것 같더니 오늘은 또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감동을 잃고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 컬럼이 기다려집니다.
답변달기
2007-08-07 19:21:42
0 0
이용백 (211.XXX.XXX.211)
어린시절 어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찾아오셨던 기억이 가끔 떠오릅니다. 그땐 왜 그리 창피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고 있는데, 어머니가 다짜고짜 교실 앞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오시던 그 장면이 가끔 떠 오릅니다. 그리고, 죄송한 눈빛으로 선생님께 목례를 하시고, 제게 도시락을 건네주시던 손길, 체온까지 새록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답변달기
2007-08-07 09:32:57
0 0
김장실 (152.XXX.XXX.25)
너무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저는 국민학교 때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로 시작되는 동요를 부르며, 그후 중학교 때는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옛동산에 올라'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그런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가슴 속에 차오르는 슬픔의 감정을 도저히 어린 저가 절제할 수 없었습니다. 지고지순한 동요의 세계는 홍진 세상에 사는 어른들이 지향하는 영원의 꿈인 것 같습니다.
답변달기
2007-08-06 18:08:04
0 0
haeddulnal (168.XXX.XXX.66)
섬집 아이를 말해서 내 맘을 어둡게하시나,,,,,,지금뿐 아니라 국민학생 시절에도 그 노래만 들으면 코끝이 찡~했었는데.동요는 순박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라 그 속의 의미도 순해서 부르는 이에게도 순한 마음을 깨우는 모양입니다.참고로 요즘 유치원에서는 하나 둘,,,셋 넷 하지 않습니다. 돼지,,,꿀 꿀, 병아리,,,삐약 삐약, 송아지,,,음 메, 오리,,,꽥 꽥,,,,,요로케 하지요.
답변달기
2007-08-06 16:47:21
0 0
mallian (211.XXX.XXX.34)
동요는 가만이 있는데 노래가 늙었고 슬프다고 한 것...그렇게 들었기 때문이겠죠? 동요는 다 기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답변달기
2007-08-06 16:23:51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