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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한 내 자식,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에게
신아연 2013년 07월 30일 (화) 03:09:19
초여름 하늘빛 세모시 바탕에 이름자조차 수줍은 듯 가녀린 너를 받아 품에 안던 날, 그 고운 태깔조차 내겐 왜 그리 안쓰럽던지. 번듯하고 굵직한 서체를 이마에 달고 울긋불긋 치장을 뽐내는 또래들 틈에 그 작은 몸피 뉜 곳은 하필이면 매대(賣臺) 맨 가장자리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였지.

그땐 왜 그랬을까. 성큼 다가가 너의 매무새를 매만져 주며 응원해야 했건만 난 그냥 먼발치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만 보았지. 사람들은 네게 눈길을 주는 듯하다가, 네 얼굴을 한 번 쓰다듬을 듯하다가 그냥 스윽 지나치더구나.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조바심으로 콩콩 방망이질 소리를 내는데, 눈길이든, 손길이든, 발길이든 관심없다는 식으로 너를 한 번씩 추스르기만 할 뿐인 판매원의 무심함이 오히려 야속하더구나. 마치 산모가 안 본다고 신생아를 함부로 다루는 조산실 간호사들처럼.

그런 짠한 내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새침한 듯, 도도한 듯 함초롬히 자세를 가다듬던 네 모습이 지금도 애처로이 눈에 선하다.

‘빽’도 없이, ‘레떼르’도 없이,더군다나 아득한 이국에서 너는 그렇게 혼자 그 자리까지 갔던 게지.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고 기뻤는지. 나역시 20년 별리의 모국땅에서 너를 잉태한 후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도움주신 분들과 함께 조촐히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시간과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막상 너를 낳아놓고 보니 기대와 원(願)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더라. 네가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지만 세상에서 인정을 받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기대감 말이야. 못할 것도 없지, 내 새끼 어디가 어때서? 이만하면 남 부럽지 않잖아? 간질거리는 욕망으로 열에 들떠 마음이 질정없이 부풀어 오르대. 자기 자식은 원래 잘나 보이는 법이거든.

강남 엄마도 아니고 비싼 과외를 시키지도 않았으면서 제 자식 서울대 가고 출세하기 바라는 미욱한 부모처럼 언감생심 그런 마음을 품어 봤다는 거지. 부모 후광 하나 없이 저혼자 똘똘한 개천 용이 너였으면 하는 속마음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말이야. 하긴 요즘 개천엔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없다지만.

하지만, 하지만 얘야, 난 그래도 네가 어느 정도는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뛰진 못한다 해도 옴칠 수는 있을 줄 알았단 말이지. 비슷하게 태어난 것끼리 '주르런히' 한 줄로 서서 ‘요이 똥’을 하는 줄만 알았지, 그 중 몇몇을 주변에서 ‘우~’ 달라들어 업고 대신 내달려 줄 줄은 몰랐어, 정말. 그렇게 해서 걔네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버린다지,아마?

너를 세상에 선보인 지 어느덧 4개월, 세상이 너와 나를 알아줄 거라는 미망에선 진즉 깨어났다만, 세상 빛도 보기 전에 일찌감치 서가에 꽂힌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을 ‘내 새끼’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하기사 같은 운명을 타고난 너의 두 형제도 행방이 묘연하다만… 고운 세모시 어여쁜 홍안에 얼룩이 진다 한들 그 누가 관심있어 슬허할까. 그 너른 한국 땅에 뎅그렇게 너를 두고 온 그저 못난 어미의 넋두리만 서럽구나.

지난 3월 신간,<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낸 후 꼭 4개월 만에 ‘잔치는 끝’난 느낌입니다.실은 시작도 못해 본 잔치였습니다. 5월에 터진 ‘자음과 모음’이라는 출판사의 책 사재기 사건이 아직도 씁쓸한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출판사가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내 책이 베스트셀러 잔치에서 밀려났다는 말이 아니라 출판계의 오래된 음모에 어찌해 볼 수 없는 무력감과 상처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책을 내는 것을 흔히 자식을 낳는 일에 비유하듯, 저 역시 네 번의 산고를 치렀습니다.내 자식들이 사회에서 공정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무망하게 스러져갈 수 밖에 없는 출판 현실에 화가 나고 서러워 어드메 서고를 떠돌고 있을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자식 기리듯 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경향신문 5월8일자 사설이 저의 비통한 심정을 잘 대변해 주었기에 그것을 아래에 실으면서 희떠운 소리를 마치겠습니다.

"지식과 철학의 창고인 서적이 ‘사재기 관행’을 통해 독자를 기만하고 출판시장을 교란하는 ‘문제 상품’으로 추락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일부 출판사나 사재기 전문업체는 해당 서적을 사들인 후 수천 개 이상의 아이디를 확보해 아이디 1개당 1~3권의 책을 무료로 보내주며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을 선택할 때 베스트셀러를 참고하기 때문에 ‘사재기’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광고비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인터넷 사재기는 수법이 점점 정교해져서 적발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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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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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93.XXX.XXX.33)
아 이런.... 어찌 그런 일들이... 넘 상심마세요.. 아, 저부터 책을 고르는 바른 안목을 길러야겠다는..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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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0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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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미 (60.XXX.XXX.96)
정말 짠하네요,우리들의 힘은 너무 미약한거군요. 사재기는 뭐고 좀 혼란스러워요. 그래도 화이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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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1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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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156)
읽어내려 가는데 애잔한 마음이 끝까지 동행을 하네요.
이 또한 천민자본주의가 적랄하게 본색을 드러내는 탓이겠죠?
생산의 동기가 오직 이윤을 위해서고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에 따라 춤추는 가격을 노리고 지적재산에도 매점매석이 이뤄지니 할 말 없습니다
아연님의 자식 같은 책들이 변방으로 몰린다면 잉태하여 출산하기 까지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부모의 입장은 많이 아프겠죠~
제발 출판업계 만큼은 자본의 위력이 미치지 않는 성역으로 지켜졌음 좋겠습니다. 각성한 독자들이 아연님의 자식들을 지나쳐가지 않고 어여삐 여겨줄 날이 불현 듯 다가올 것입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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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09: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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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60.XXX.XXX.96)
제 책을 빌어 좀 엄살을 떨며 표현해 본 것이지만, 세상의 천격스러움이 극에 달했습니다... 독자들도 아무 판단력없이 무조건 많이 팔린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만 하니... 깨어서 자기 삶을 산다면 이렇게까지 돈, 돈 하며 살지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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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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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모 (60.XXX.XXX.96)
박병모입니다. 처음엔 무슨일이있나. 애기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참을 읽어보니 그 자식들이 내가읽은 책들을 의인화시켰구나..안심과 웃음이 나왔고 나중에는 슬펐습니다.제대로 평가조차 받을 기회도 없는곳이 출판계구나라는 생각에 말이죠.그래도 힘내세요. 좋은 펜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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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07: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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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박 (60.XXX.XXX.96)
책 읽는 것도 너무 유행에 치우치는 느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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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06: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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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은 (60.XXX.XXX.96)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선정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 출판 풍토가 문제입니다.저는 베스트셀러는 되도록 안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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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06: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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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60.XXX.XXX.96)
이국 만 리 에서, 자식 생각하는 어미의 마음을 알아주는 독자가 있습니다.


어미만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내가 많이많이 사랑하고 쓰다듬으며 애지중지 읽고 있으니 마음 조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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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06: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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