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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낡은 도장
박상도 2013년 08월 02일 (금) 01:42:58
'한밤의 DMB'라는 라디오프로그램이 있습니다. FM이나 AM주파수로 듣는 라디오가 아니라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라고 불리는 새로운 송출방식으로 듣는 라디오입니다. 영상이나 음성을 디지털로 변환해서 이를 휴대용 IT기기에서 방송하는 서비스를 DMB라고 합니다. 이 DMB는 이동 중에도 개인 단말기로 영상과 음성을 전송 받을 수 있어 휴대폰과 차량용 내비게이션에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2년 여 간의 연수를 마치고 현업에 복귀한 필자는 DMB라디오를 직접 제작해 보겠냐는 제의를 받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는 '한밤의 DMB'를 지난 2010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DMB라는 매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방송 초기에는 DMB라디오 방송을 듣는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CBS에서 ‘박승화의 가요쇼’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는 유리상자의 박승화 씨가 몇 년 전 자신이 DMB라디오를 진행하던 때의 에피소드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모 방송사에서 DMB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땐 정말 의욕적으로 방송을 했어요. 하루는 생방송을 했는데 선물을 잔뜩 준비해 놓고, ‘지금부터 전화를 받겠습니다. 전화 주시면 선물 드릴게요'라고 방송을 했어요, 그런데 한 시간 동안 전화가 한 통도 오지 않는 것 있죠?”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모지나 다름 없던 DMB라디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람들이 듣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애청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발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신 분, 튼 살, 그러니까 갑작스런 체중 증가로 갈라진 피부 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한의사님, 전직 학교 선생님, 그리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는 분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제가 제작하는 '한밤의 DMB'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분들께서 제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제게 보내주신 사연 중에 이제는 아득하게 잊힌 것 같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요즘엔 ‘개천에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없다’고 하는데, 개천에 용이 나던 시대에 대한 이야깁니다. 선생님이 교사가 아니라 스승님이던 시대의 얘기입니다.

1970년대 초반 스물두 살 난 젊고 예쁜 선생님이 당시엔 두메산골이던 제천의 신덕 중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부임을 했습니다. 이제는 폐교가 되었지만, 당시 신덕 중학교에서 당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는 이영자 선생님은 이제 60을 훌쩍 넘겨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지요. 그런데 이 선생님이 지난 40년 동안 사용하던 도장은 플라스틱 펜대로 엉성하게 파놓은 도장이었습니다.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할 때도, 학교에서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도, 이 낡고 허름한 도장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도장에 얽힌 일화는 이렇습니다. 한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계속 머리를 푹 숙이고 있어서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뭔가를 재빨리 숨기더라는 겁니다. 손을 펴서 보니 플라스틱 펜대였고 이 펜대를 자세히 보니 큰 원에는 선생님의 이름이, 작은 원 안에는 ‘영’자가 새겨져 있더랍니다. 그 사춘기 학생은 선생님이 무척 좋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읽은 이 선생님은 그 엉성한 도장을 지난 40년 간 간직하며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송으로 사연이 나간 다음날 '채병용'이라는 분이 제 프로그램의 게시판을 찾아주었습니다. 당시 ‘이영자 선생님께 도장을 파 준 학생(채상근 씨)의 아들이라면서, ‘아버님이 사연을 들으시고 많이 즐거워하셨어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항상 바쁘게 일하시고, 많이 웃을 일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아버지에게 좋은 추억 선물을 해주셔서 아버지도 옛 생각을 떠올리며 활짝 웃으시더군요’라는 글을 올려 주었습니다. 선하고 기분 좋은 일은 세월이 흘러 되돌아볼 때도 사람을 미소 짓게 해 줍니다.

시골에는 재능을 썩히기 아까운 동량(棟梁)들이 가끔씩 나타납니다. 공부를 특출하게 잘하는 학생이 있어서 선생님이 판단하기에 좀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그 학생의 집을 찾아가 부모님을 설득해서 청주의 큰 중학교로 학생을 유학(遊學)시켰다고 합니다. 학생은 유학을 가서도 도시 아이들 틈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결국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그 학생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사제지간의 정이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는 은퇴를 하신 이영자 선생님은 당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어디서 힘들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도 마음을 쓰며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선생님의 제자 사랑은 선생님의 스승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이영자 선생님이 당신의 어릴 적 스승님을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박 아나운서님,

교육 공무원인 부친께서 슬하의 1남 4녀를 모두 대학까지 가르치다 보니 저희 가족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근검절약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었지만 피아노 레슨비를 부탁드릴 가정형편이 되지 않아서 배우지는 못하고 항상 학교 음악실을 빙빙 맴돌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음악 선생님께서 부르시더군요.

“집에 안 가고 왜 여기에 있니?”

집엔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했습니다. 담임인 음악 선생님은 다음날 바로 저희 집 가정방문을 오셨죠. 한옥인 큰 집에서 저는 동생 둘과 마당엔 돼지, 닭, 토끼, 개까지 완전 동물농장처럼 가축들을 키우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저는 방과 후에 집에 가고 싶지가 않았던 겁니다. 아버님께서 다른 지역 학교로 전근을 가셔서 부모님과 생이별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살림을 모두 맡은 저로서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웠던 때였습니다. 제 중학교 때 별명이 ‘시어머니’였을 정도니 그때 동생들 돌보며 살던 제가 친구들 눈에는 애늙은이처럼 보였던 겁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저의 가정환경을 보신 후,

“너 당장 내일부터 남는 시간에 피아노를 배우렴. 공짜는 아니고 음악실을 깨끗이 청소하는 조건이다.”

저는 너무 좋아서 방과 후에 매일 음악실로 달려가 청소를 하고 얼마나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는지 모릅니다. 바이엘(Beyer)을 한 달 만에 끝내고 재능이 있다면서 칭찬을 받았을 때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지요.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저는 어른이 되면 ‘음악 선생님이 되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답니다.

세월이 흘러 음악적 열정을 미술로 승화시킨 저는 미술 선생님이 되었지만 아마도 제 교육의 정신적 지주는 과거 담임이셨던 음악 선생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교사는 이렇게 학생의 꿈을 영원히 살릴 수도 있고 반면에 꺾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저는 교직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앞으로 20년 후나 되면 나를 알 것이다.”라고 말하며 좀 엄하게 교육했답니다.

요즘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대할 때면 교단에 있을 때 제가 무척 엄하게 대했음에도 잘 따라와 주었던 제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여 가끔씩 밥도 사주곤 하지요. 저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도 다시 교사를 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고 싶다는 이영자 선생님을 보면서 세상은 침묵하며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선한 사람들이 있어서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전쟁의 폐허에서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아마도 이렇게 헌신적으로 교육에 애써주신 좋은 선생님들께서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몇몇 탐욕스런 학교의 분탕질에 교육계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환부는 도려내야 하겠지만 정도를 걷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께서 이영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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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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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175.XXX.XXX.174)
이 시대 이 땅에 있는 교육계 인사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스승의 참 모습을 그린 감동적인 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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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3 20:50:24
2 0
libero (58.XXX.XXX.96)
저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두 직업인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학교 선생님과 병원의 의사 선생님,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선생님들이 더 많은 덕에 훌륭한 인재도 키우고 귀한 생명도 구하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거겠지요.
대학 다닐 때 "교수님!"하고 부르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고 싶다던 은사가 생각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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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17:06:07
3 0
utopco (117.XXX.XXX.243)
박상도님 아자아자 지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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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14:37:27
1 0
차덕희 (121.XXX.XXX.200)
은사 몇분이 떠오름니다.
제게 스승의 도리를 몸소 실천해 주신 분들이요.
유명인이 못되고 평범하게 사는 삶이 부끄러운 듯 여겨져 뵙기를 미루다가 제대로 철이 들어 찿아 뵈려고 하니 이 세상 분이 아니신 것을 알고는 가슴이 애틋하여....
평범하게 도덕적 삶을 가르쳐 주신 은사분들의 뜻을 마음에 새겨보는 나이가 되서야 교육의 옳바른 목적에 대하여 되새김을 해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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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12:47:15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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