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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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김홍묵

2013년 08월 09일 (금) 00:30:23

“2045년이 되면 인간은 죽지 않는다.”
귀가 번쩍 뜨이는, 그러면서 쉬 믿어지지 않는 미래예측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불과 한 세대 뒤의 일이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65)이 내다보는 우리의 앞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무렵이면 인간의 뇌를 클라우드(cloud)와 연결하여 기억을 분산 저장하거나, 컴퓨터를 통해 뇌기능을 업로드하고, 다른 사람의 뇌와 연결해 기억을 공유할 수도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 전제로 커즈와일은 10년 안에 암과 심장 질환에 대한 연구가 거의 끝나고, 20년 안에 인류는 모든 질병을 극복한다고 단언했습니다.

이 황당한(?) 예측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 아마도 허언은 아니라고 봅니다. IQ 165의 커즈와일은 스캐너, 신시사이저, 광학 문자 인식기(OCR) 등을 발명했고, 지난 30년간 자신의 미래예측 중 80% 이상을 적중시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10년 이내에 무인 자동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가고, 3D 프린터가 상용화되어 20년 안에 옷이나 음식도 프린터로 장만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했습니다. 홀로그램 기술도 진보하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호흡이나 체온 촉감까지 완벽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029년쯤에는 사람의 뇌와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 컴퓨터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불로장생의 미래, 아니 더 나아가 인류 불멸의 시대가 오면 어떤 요지경 세계가 될까요. 범인의 생각으로는 번데기처럼 쪼글쪼글한 노인들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거나, 외계인 모습의 고령자들이 손자의 손자뻘 되는 수하나 신참들과 함께 일하고, 100세 넘은 노인들(노인이 아닐 수도)이 출산하는 일은 당연한 현상들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반면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사라진다면 전쟁이나 재난도 막을 수 있을지, 현재도 모자라는 식량은 어떻게 조달할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가 어떤 양식의 삶을 살아야 할지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 과제도 많습니다. 컴퓨터로 업그레이드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좋은 일만 추구하지 않고 사악한 일을 공모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한 죽지 않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신(神)뿐입니다. 그것도 상상이나 가설의 존재이지만.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과연 신이 될 것인가. 커즈와일은 “인간은 절대로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신처럼 되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류는 우주 만물의 섭리를 끝없이 통찰함으로써 진화를 가능하게 하고, 진화는 곧 신을 닮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면 비록 사람이 불멸의 존재가 되더라도 전쟁 살인 징벌 질투 복수 저주 이간 간통 따위의 악업이 끊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은 전지전능하고, 강력한 힘을 갖고,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위력을 지녔지만 처신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들도 인간의 원죄와 똑같은 행위를 저질렀으니까요.

욕망의 화신 미다스(Midas)왕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소아시아 프리지아 지방을 다스리던 미다스 왕은 자신을 무척 똑똑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실 소유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먹다가 잡혀 온 실레노스 노인이 자신이 숭배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스승임을 알고, 진수성찬을 대접하여 나귀에 태우고 신전을 찾아갔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나의 스승을 이토록 극진히 대접해 주었으니 그 보답으로 무엇이든 소원 하나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미다스 왕은 한껏 겸손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내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황금으로 변하게 해주십시오.” “더 좋은 소원도 있을 텐데··· 아무튼 그대의 소원이니···.” 신은 빙그레 웃으며 왕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신이 난 왕은 조바심을 못 참고 돌아오는 길에서 시험을 했습니다. 나뭇가지를 하나 꺾자 순식간에 노란 빛을 띠었습니다. 조약돌 진흙덩어리 사과 밀 이삭 할 것 없이 손끝만 닿으면 황금이 되었습니다. 궁전의 문도 커튼도 그릇의 물도 빵도 카펫도 모두 황금으로 변하는 조화에 왕은 ‘지상에 나보다 더 부자 왕은 없겠지’하는 기쁨에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불행은 그 순간에 찾아 왔습니다. 빵도 포도주도 산해진미도 입안에 넣기 전에 황금이 되어버려 씹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딸을 안자 황금이 되어버렸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왕은 바로 신을 찾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과하고 고통을 풀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디오니소스의 지시대로 팍톨루스 강에서 몸을 씻고 머리를 감은 뒤에야 미다스 왕은 황금의 주문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신들은 진흙과 빗물로 사람을 만들어 인간 세계를 창조했지만 인간에게 끝없는 시련을 주었습니다. 끝내는 인간을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면 욕망을 버리고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는지, 더 악독한 카인의 후예들로 변할는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