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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始球)를 시비한다
박상도 2013년 08월 27일 (화) 00:46:00
마케팅 격언 중에 ‘최고가 아니면 최초가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업들이 광고를 할 때, ‘세계 최초로 개발한’이라는 문구나 ‘세계 최고의 품질을 보장합니다’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말해야만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첨단 기술은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뉴스의 기사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휘는 디스플레이로 출시될 예정인 삼성의 시계형 스마트폰은 출시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 최초의 시계형 스마트폰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수나 아나운서가 드라마에 출연을 하면 화제가 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제는 그런 일이 다반사라 그다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습니다만 십수 년 전에는 이슈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기상캐스터 출신의 방송인이 개그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기로 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최초’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됐든 개그 프로그램이 됐든 관련자들이 ‘최초’마케팅을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최초’로 도전하는 연예인 덕택에 프로그램의 이름이 기사로 작성되어 매체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연예인 또한 이 ‘최초’라는 수식어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것이 바로 이 ‘최초’를 이용한 마케팅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일들 중에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이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프로야구 ‘시구(始球)’입니다. 한동안 포털사이트 1면에 도배되다시피 한 사진이 바로 ‘공항 패션’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연예인의 공항 패션을 사진과 함께 기사로 올린 것이 ‘최초’로 시도되면서 갑자기 붐이 일었습니다.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관심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고 올 때의 복장까지 대중이 알아야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예를 들어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는 선수가 입국하는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그 선수가 입은 복장에 대해 얘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연예인이 귀국하면서 입고 온 복장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항 패션’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서 뜬금없이 연예인의 난해한 사진을 올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공항 패션’은 패션업계와 연예인과 포털사이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패션업계는 일정액의 사례비를 주고 연예인에게 출국할 때 자사제품을 입으라고 요청합니다. 좋은 옷 돈 주고 입어 달라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연예인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그 제품을 입어줍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사진 몇 장을 찍습니다. 포털은 ‘연예인 XXX 공항 패션이 우와~!’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첨부해서 기사화합니다. 패션업계는 자사의 제품이 노출돼서 홍보효과를 얻으니까 좋고, 연예인도 자신의 기사가 나오면서 돈도 버는 일이라서 좋고, 포털은 기사의 클릭 수가 높아져서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공항 패션’이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이 그들의 숨은 꼼수를 다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공항 패션’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평소에 연예인들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단서였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협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한 모습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연출된 이미지였기 때문입니다.

공항 패션은 아니지만 박태환 선수가 수영장에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착용하고 나오는 헤드폰을 보면 필자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습니다. 물론 박태환은 우리나라의 보배이고 언제 봐도 흐뭇한 선수입니다만 그가 쓰고 나오는 헤드폰은 왠지 과도한 광고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류현진 선수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공개됐는데 마스크를 쓰고 검은 선글라스와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었습니다. 기사에 류현진이라고 쓰여 있어서 류현진인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프로야구 시구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초의 시구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태동의 혁혁한 공로가 있는 분이니 시구를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작을 이렇게 했으니 그 이후의 시구는 구단이 속한 지역의 정치인들이 주로 해왔습니다. 야구경기를 보러 와서까지 배 나온 중년 남자들의 정치적인 쇼를 보는 관중들은 시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런 거 왜 해야 하나?’하고 마음속으로 불만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연예인이 시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면서 이제 연예인 시구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팬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화면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야구장에서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즐거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조금은 어색하더라도 마운드에 서서 열심히 공을 던지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응원석에서 팬들과 같이 열심히 응원하는 연예인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의 시구가 일반화되면서 그냥 밋밋한 시구로는 주목을 끌지 못하게 되었나 봅니다. 클라라라는 배우가 민망한 복장으로 시구를 하면서 갑자기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클라라 본인도 자신의 인생이 시구 전(前)과 시구 후(後)로 나뉠 정도로 큰 변화를 겪었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무명배우가 시구 한 번으로 유명배우가 된 것입니다. 당연히 보다 강도 높은 시구를 통해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시도가 뒤를 이었습니다. 신수지, 태미의 시구는 시구라기보다는 묘기였습니다. 외국 언론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으니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클라라, 신수지, 태미는 시구의 효과를 확실히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오락적 요소가 강한 스포츠라도 격(格)은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격(格)의 기본은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야구를 보러 온 관중이 뜬금없이 체조나 태권도 동작을 하는 시구자를 보는 것이 격(格)에 맞는 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몇몇 연예인들의 노출 시구 역시 프로야구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롯데에서 오늘은 두산에서 시구를 하는 연예인들의 행태도 문제가 있습니다. 시구는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는 방송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경기장을 찾는 홈 팬들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기본적으로 시구자는 홈 구단의 팬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다른 구단의 시구 제의에 응하지 않는 정도의 도리는 지켜줘야 합니다. 시구가 끝난 후 경기 관람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합니다. 아무리 연예인이더라도 이 정도는 지켜줘야 시구를 할 자격이 있습니다.

1980년대 3S(Sex, Screen, Sports)에 의한 우민화 정책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래, 시작은 정권의 필요에 의해서 급작스럽게 출발했어, 그래도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스마트하게 프로야구를 즐기고 있는지 알아? 우리는 그렇게 바보 같지 않다고!”라고 얘기하고 싶다면 지금의 시구 행태를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아들과 손잡고 프로야구를 보러 경기장에 갔을 때 비키니 차림의 시구자를 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역치는 상승하게 되어 있고 이대로 놔두면 일본처럼 반쯤 벗은 연예인이 시구자로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보여주겠다는 데 보아주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쁘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정 섹시한 시구가 보고 싶으면 집에서 ‘19금’ 인증하고 혼자서 보면 될 일입니다. 벌건 대낮에 경기장에서 볼 일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지난봄에 있었던 시구입니다. 플로리다주 템파베이의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9살의 소녀 엘레이나가 시구자로 마운드에 서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경기장의 대형 전광판에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돼 근무 중인 엘레이나의 아빠가 등장해 격려를 합니다. “엘레이나 너를 정말로 사랑한단다. 오늘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라. 엘레이나 기억하렴, 걸어나갈 때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집중하고 즐기렴. 아가야,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엘레이나는 멀리서 자신을 응원해준 아빠를 생각하며 힘껏 공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던진 공은 포수 앞에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갑니다. 포수도 어설프게 그 공을 주어서 잡습니다. 이어서 포수가 마스크를 벗습니다. 엘레이나의 공을 잡은 포수는 방금 전광판에서 본 아빠였습니다. 깜짝 놀란 엘레이나는 아빠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아빠는 딸을 힘껏 끌어 안습니다. 30초 동안이나 부녀는 서로를 끌어 안으며 감격의 재회를 합니다. 그리고 관중들은 부녀의 눈물겨운 상봉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 프로야구에도 관중과 소통하고 감동을 주는 시구가 꽤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매체가 앞다퉈 보도하는 시구는 연예인들의 부적절하고 뜬금없는 시구였습니다. 구단과 연예인과 이를 보도하는 매체가 스스로 앞장서서 스포츠 문화의 질(質)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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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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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 (175.XXX.XXX.85)
반갑습니다 여기서 인사를 나누게 되네요 시구 이야기도 한밤의 dmb 며칠전 방송에서 들은듯한데.. 이 글 카페에 퍼가도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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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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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날카롭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청진기로 훑듯이 진단하고 파악해 내는 박상도님의 글을 대할 때면 때론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님의 글을 죽~ 따라가다 보면 자아와 상식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되돌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님의 정성스럽고 정교한 글이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사회를 깨끗이 하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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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08: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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