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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에게 장미를'(3. 끝) - 오마리
오마리 2007년 08월 11일 (토) 14:11:08
h h  장미꽃들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먼 동네의 집으로 이사 온 후, 꽃들이 필 무렵이 되면 가끔씩 그 집 앞을 지나쳐 봅니다. 집주인은 장미들을 잘 키우고 있을까, 아니면 다 죽여 버렸을까. 7년간 정들었던 장미들로 마음이 그곳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Luis Wilson ( 루이스 윌슨), Hybrid Tea


 먼 거리를 불문하고 그 집 앞을 자주 지나치다가, 문득 어느 날 이러한 행동이 지나친 것이다, 집착은 미래의 발목을 붙드는 헛된 망령일 터인데, 그만 그곳을 가지 말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힘에 겹게 키웠던108 그루의 장미는 곧 백팔번뇌였다는 깨달음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많은 꽃들과, 특히 장미를 가꾸면서 겪은 육체적 고달픔은 가히 중노동이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무시하고 했던, 몇 만 번도 넘은 삽질로 어깨와 하반신, 신체의 골격조차 변하였고, 손목 발목의 관절까지 아프면 허리 손목 보호대까지 차고 꽃밭을 헤매고 다니자 몸 안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Freisinger Morgenrote(프라이징거 모르겐로테), Large-Flowered Climber


 종일 땡볕에 서서 피부까지 변하고, 물집이 생기는 것은 예사였으며 손톱 밑까지 흙물로 까매져 완전히 농부아낙네 모양새였습니다. 그 때 절실하게 떠 오른 것이 누군가 노동(육체적 노동)이 신성하다고 했던 말, 그 말은 육체적 노동이라는 체험을 해보지 않은 철학자의 궤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도 생겼습니다.

 또한 그런 힘든 노동 속에서 새로운 경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일이나 장미가 피고 지고 하는 일이나 별반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양을 많이 주면 좋은 줄 알고 흠뻑 주었다가 뿌리를 태워 죽이고, 이미 심은 장미를 다 른 꽃들과 조화가 안 된다 하여, 장미가 치명적으로 옮겨 심기를 싫어하는데도 자주 옮겨 장미들을 죽였습니다.
   

Chicago Peace ( 시카고 피스), Hybrid Tea


 가장 좋아하는 미스터 링컨을 뒤뜰에서 앞뜰로 옮겨 심어 두 그루를 다 죽여 가슴이 무척 쓰렸고, 게으름으로 아침 물주기를 놓치면 한낮의 물주기를 합니다. 그것을 아주 싫어하는 장미에게 한 행위는 장미에 대한 횡포였습니다.

 가끔은 게을러져 잡초 제거에 늦을라치면 조그마한 풀뿌리 하나가 번지고 번져 꽃밭을 망쳐 버리는 것입니다. 더욱이 분수도 모르고 예뻐서 사다 심은 사랑했던 장미들에 지치기 시작하자, 아름답고 탐스러운 장미가 버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동네 이웃들에게 장미를 나누어 주게 되었습니다.
   

Garden Party ( 가든 파티 ), Hybrid Tea


 끝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자성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일로, 이 절제 없는 나는 어떤 인간일까, 봉사 박애 운운하며 선하고 정의로운 척했던 그것은 위선이었나, 이기심으로 가득한 본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깊은 실망이 새벽 안개비처럼 마음의 뜰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미는 마치 완숙한 어른처럼 내게 가르쳐 준 것이 많았습니다. 사랑
은 절제와 진실이 전제된 배려와 케어(CARE)라는 것입니다. 장미는 은애를 받는 만큼 되돌려 주는 갸륵함이 있고 배반을 모릅니다. 받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 경고를 내림으로써 그 사랑을 불러 지키려는 현명함도 있으며, 바보같이 하늘 보고 기다리다 놓쳐버리는, 결과를 불행으로 몰고 가는 우매함도 없습니다.
   

Gina Rolobrigida ( 지나 롤로브리지다 ), Hybrid Tea


 또한 계절 내내 받은 애정으로, 서리가 내리기까지 장하게 피어 주는 강한 인내도 있으
며, 꽃밭의 모든 화초들이 서리 맞아 흉측한 모습으로 시들어 떨어진 후에도, 장미는 늦봄부터 초겨울까지 의연히 홀로 독야홍홍(獨也紅紅)하니 꽃밭의 유종의 미를 거두는 희생도 있습니다.
   

Marmalade Skies ( 머멀레이드 스카이즈) , Floribunda


 프랑스 격언에 사랑은 받는 사람 따로 있고 주는 사람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받기만 하고자 하는 사랑도, 주기만 하는 사랑도 언젠가는 균형이 깨져 무너집니다. 조그마한 배려에서 큰 사랑의 힘이 창조되고, 조그마한 나태에서 사랑은 침몰합니다. 이것은 부부, 형제, 친구, 연인 간의 사랑에서도 같은 에너지 파장으로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Paradise ( 패러다이스 ), Hybrid Tea



 프랑스의 유명가수 에디뜨 삐아쁘가 불러서 히트한 샹송 라 비 엉 로즈( La vie en rose )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듣고 싶은 노래입니다. 그 노래에서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듯이 삶에 희망을 걸거나 행복한 시간 속에 있을 때 대체적 표현이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라 비 엉 로즈)이라고들 합니다.
   

Sheer Elegance ( 쉬어 엘레건스 ), Hybrid Tea


 장미꽃이 주는 매력과 향기가 그런 이미지를 형성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코믹하면서도 씁쓸하게 끝을 맺은 한국 드라마 한 편이「라 비 엉 로즈」였는데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희망을 잃고 좌절할 때마다 장밋빛 꿈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장밋빛 꿈이 깨져버리는 역설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만 그녀는 삶의 무게가 힘들 때마다 첫사랑의 꿈이 담긴 장밋빛 인생이라는 이름의 찻집에서 아름다운 회상에 잠깁니다. 그리고 결코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떠나올 준비를 하던 날, 무언지 모르는 슬픔에 울적해진 심정으로 분당의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환한 빛에 시선이 끌렸는데, 아파트 단지 내의 낮은 담장 위로 피어 있는 몇 송이의 넝쿨장미(Climber)였습니다. 11월이라 날씨가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미는 힘차고 열정 있는 모습으로 피어 있어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능력과 인내, 열성 부족으로 손을 들고 말았던 장미를 누가 심었을까!
   

Dublin Bay ( 더블린 베이 ), Climber


 그때 번개처럼 한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공포와 추리 소설 형식으로 쓴 윌리암 포크너의 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에서, 왜 포크너는 많은 꽃들 중 제목에 장미를 선정했을까? 이 역설적인 내용을 통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 느낌, 환한 빛이었구나, 그래 그는 한 송이의 장미로 희망을 얘기했던 거야, 오랫동안 머리를 맴돌았던 젊은 날의 의문이 풀리자 그 소소한 기쁨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훈훈했습니다. 그리고 살아온 삶을 다시 반추해 보았습니다.
   

Orange Sensation ( 오렌지 센세이션 ), Floribunda


 장미를 위해 쏟은 고통과 정성만큼 나를 필요로 했던 주변의 사람들에게 열성을 다 했던가, 배반한 적이 없었던가, 그리고 마지막까지 인내를 다하고 있었고 또 하고 있는가….

- 장미사진은 오마리님께서 직접 편집하였습니다. -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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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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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 (188.XXX.XXX.175)
장미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 반성의 귀결을 내려주신 글,
나를 돌아 보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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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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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74.XXX.XXX.211)
장미가 더더욱 아름답군요.아름다운 장미에겐 가시가 있다는 것을 가끔 잊을 때가 있읍니다. 장미에게도 가시가 있듯이 선생님 말씀 꼭 기억 하겠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 가끔씩은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할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사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07-08-14 12: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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