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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하는 사랑의 한의학
신아연 2013년 10월 17일 (목) 00:25:13
어느 책에서 ‘인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귀한 생물을 키우는 데는 사랑의 본질인 관심, 배려, 보살핌, 책임 등이 요구된다며 의미를 부연했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자라는 것이 어찌 인삼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인삼’이라는 말에서 오는 느낌과 최근에 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접한 연유로 사랑의 본질과 동양 의술의 본래적 가치가 관련성 있게 연상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의학과 인문학이 따로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둘이 함께할 때 우리 안의 치유본능을 이끌어 내어 궁극적으로 몸과 삶과 생각이 하나가 된다”고 고미숙은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로 인해 ‘의학에도 은근한 향기와 온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평소의 막연한 제 생각이 지지와 탄력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타자와 나 사이를 공글리고, 예리해진 대립각을 둥글게 하며, 냉과 열이 다사롭게 기운을 합치는, 그리하여 생의 에너지가 자율적 물꼬를 트도록 만드는 사랑의 가치와 한의학의 실체가 닮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오던 참에 말입니다.

얼마 전, 일로 인연을 맺은 서울의 어느 한방병원 선생님이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 과학으로 포장되고, 법적으로 면허화되고, 전문화, 세분화의 미로 속에 놓이다 보니 심오하고 아득해 보이는 것 뿐이지, 실상은 환자와 눈을 맞추고, 따뜻한 미소를 보이고, 환부를 만지고, 교감하며 희망을 나누는 행위가 치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라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마치 제 생각이 맞다는 걸 확인해 주려는 듯한 공교로운 타이밍의 ‘내부자 발언’에 흐뭇하고 흡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말에는 차가운 청진기가 아닌 따스한 문진의 손길, 창백한 알콜 냄새 대신 온후한 한약 내음과 함께 환자의 자생력, 삶의 내재적 회복력을 먼저 헤아리려는 미더운 정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열흘 전, 같은 병원의 탕전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재 구입에서부터 보관, 관리, 제조, 전달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양방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과 한방의 섬세하고 공교한 손길이 양한방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다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약재 잔류 농약 시비나 한방의 치료 효용성 논의의 소요(騷擾)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면모를 일신하며 동양 전통 의학의 맥이 이어져 갈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잘디 잘게 나누어진 단절과 분절, 타자와의 어떤 교감의 기미도 마다하는 차단의 삶을 사는 시대입니다. ‘사랑’ ‘소통’ ‘힐링’ 등 알곡 없는 겨와 같이 가볍고 알량한 말들이 공허하게 떠도는 세상입니다. 불신의 깃발이 생명과 삶을 조롱하듯 나부끼는 세태에 익숙해진 지도 오래입니다.

이 모든 부박한 시대 현상이 ‘후투루’ 양풍(洋風) 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의료계 또한 서양의학에 대한 과대 신뢰로 동양의학이 부지불식간 홀대를 받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에만도 한방은 인정의 수준을 넘어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에도 정작 전통을 이어가야 할 우리는 무심하게 딴청을 부리는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은근한 군불처럼, 웅숭깊은 우물처럼, 두터운 가마솥처럼 삶 속에 스며들 듯 한의학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푸근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걸 잊고 있다고 할지.

온갖 시비분별이 어지럽고, 양극단이 대립하며, 모 아니면 도의 긴장 속에서 분절되고 조각난 삶을 전체적, 통합적인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일은 비록 '시지포스의 돌'일지언정 거듭거듭 반복되어야 합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고, 흰 것을 지탱하며 검은 것을 인정하는, 영광을 취하면서 오욕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양가적 가치가 통합된 상태를 가장 가치있는 선(善)이라고 하듯이, 한의학이 비단 의료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원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자생(自生)에 뿌리를 둔 몸과 마음의 치료를 통해 우리 삶을 창조적이며 지혜롭게 회복시키는 것이 한의학의 핵심 사상이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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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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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112.XXX.XXX.157)
요즘 한국 의사들 환자 얼굴도 보지 않고 컴퓨터로 차드를 보면서 '일분 진료'(어떤 경우 30초^^)하니 어떻게 정감이 오가겠으며 제대로 진찰을 하는지 의심이 가는 상황입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간미가 식어가는 환자-의사 관계가 선생님의 좋을 글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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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17: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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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모 (210.XXX.XXX.250)
신아연님, 안녕하세요
저희병원과 탕전원을 방문해주고 거기에 대한 느낌을 한의학과 연결시켜 좋은 말씀주신거에 감사드립니다.한국은 의료체계가 한,양방으로 이원화되어 정부입장에서도 의료비가 더들게 되는구조를 가지고있고 각 의료계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밥그릇 싸움한다는 싸잡아 비난을 받는 다툼이 끈이지 않고 있답니다. 싸움에서항상 코피 터지는 쪽은 한방이지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 훨씬이전부터 우리의 삶과 같이해온 생활의학이 요즘에 무당취급을 받는 막말 댓글을 보면 의료 일원화가 되는게 좋겠구나라는 생각도 한답니다. 물론 전통의학을 살릴수있는제도준비를 하면서 말이죠. 이처럼 한의사들의 어깨가 축쳐지고 쪼그라져 있을때 신선생님의 칼럼은 저희 한의학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좋은 격려와 당신들의 수고를 안다라는 인정 믿음을 준것같아 힘이됩니다. 앞으로도 한의학의 발전과 수술없이 척추를 치료해주어 환자를 자생시켜주는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두서없는 답글이였습니다. 맟춤법이 여간 신경써지는게 아닙니다.꼭 국어시험보는기분^^
자칼과 신아연선생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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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7: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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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박병모 원장님, 조심스럽게 쓴 글이었습니다. 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저의 단상이 자칫 한의계 전체에 오해와 누를 끼치게 되는 게 아닐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스한 화답을 주시니 엉터리 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싶어 마음이 놓입니다. 한국 와서 보니 사회 곳곳, 분야분야마다 전통이나 역사, 전래 문화 등이 마치 전쟁통에 쓸려 나가듯 무자비하게 취급되고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차제에 한의학도 경시와 홀대의 시선을 넘어 양방과의 비교 선상에 놓여 위기를 겪고 있다는 말씀이 안타깝습니다. 서로 비교의 대상이 아님에도... 원장님 말씀처럼 상생할 수 있는 길, 의료 일원화의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추구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글이 작으나마 힘이 되었다면 보람입니다.

자생한방병원 이름이 무연히‘자생(自生)’으로 지어진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남시 복정동 자생한방병원 탕전원은 규모도 규모이지만 약재 구입에서부터 보관, 관리, 제조, 전달에 이르기까지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두뇌와 섬세하고 정교한 손길이 빚어낸 결과물로 가히 ‘한방 명품’이란 라벨을 붙일 만했습니다.

외골 인생의 오롯한 성역(聖域)이 무결점 지대처럼 다가와 방문 이후 다소 경건하기까지 한 소회를 지금껏 품고 있습니다.

맞춤법 문제는 언제나 '옥의 티'일 뿐입니다.^^ 작은 티로 옥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요. 마음 푹 놓으세요. 국어 시험 보는 상황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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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8: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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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112.XXX.XXX.157)
"호주의 의료행위는 자연치유에 목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좀 천천히 치유가 되더라도 독한약을 사용하지않고 우리몸 스스로 이길수있는 힘을 길러주는 그런 방법이
동양의학과 비슷하다고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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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5: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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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유 (112.XXX.XXX.157)
한의사보다 더 한의학의 본질을 꿰뚫고 계시는 신아연님의 예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신아연님의 애독자 나병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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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5: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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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 (112.XXX.XXX.157)
요즘 저도 우주와 인간역사를 운영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사랑(요3:16; 요일4:8,16)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아연 선생님의 의견에 동감하게 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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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5: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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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원 (112.XXX.XXX.157)
의사선생님의 환자를 포용해주는 따듯한눈매. 마음속의 깊은 진성성의 대화는 짧은진료이지만 그 시각을 마주하기로 하고달려온 환자들의 가슴속 불안을 짧은진료 시간을 모두 이해로 받아 들이게 하는 묘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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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5: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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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익 (112.XXX.XXX.157)
늘 좋은글 기고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감이 아님 일감을 앞세우고
인정과 존경에 앞서 부정과 평가가 중시하는 요즘
신아연님은 온누리에 온기를 나눠주기에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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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5: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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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당연히 그렇겠지요. 모든 작물은 사랑의 손길, 발길, 눈길로 자라겠지요.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니 선명하고 감동적인 경험을 얼마나 자주 하시겠습니까. 사랑이란 것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삶을 제대로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그것은 전인생의 길이와 에너지가 투자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 속에서 나와 우리,전 세계가 오늘도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는 거겠지요. 검은 머리로 건강해진 모습, 다음에 또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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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8: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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