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왜 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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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왜 망하나

김홍묵

2013년 10월 18일 (금) 00:49:02

아시아 최대 항공사 일본항공(JAL).
그 일본항공이 3년 전 망했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부활했습니다.

왜 망했을까요?
△ 비효율의 온상
△ 낙하산 인사의 천국
△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린 노선 확장
△ 강성 노조
△ 재임 기간 중 문제가 터질까봐 메스를 대려 하지 않았던 경영진
부활의 한 축을 맡았던 오니시 마사루(大西賢 58) 회장의 분석입니다.

2010년 1월 JAL은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해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직군별 강성 노조가 8개나 있는 노조 왕국이었습니다. 정년퇴직한 스튜어디스에게까지 노조의 요구로 월 500만~600만 원의 연금을 주는 복지 천국이었습니다. 낙하산 임원들은 정치권의 입김에 적자인 줄 알면서도 전국 각지에 노선을 늘렸고, 경영진은 재임 중 노조와의 충돌이 두려워 피를 많이 흘리는 수술을 저어했습니다.

어떻게 부활했을까요?
파산 보호 신청 다음 달 JAL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81) 교세라 창업자 겸 명예회장을 구원투수로 영입했습니다. 월급 없는 회장으로 부임한 이나모리는 JAL에서 주로 정비 분야 일을 해 온 오니시를 사장으로 발탁했습니다. 종신 고용 전통이 남아 있는 회사에 대해 이들은 혁명적인 구조조정을 결행했습니다.

취임 6개월 만인 8월 회생 계획을 법원에 제출한 직후부터 1년 만에 전 직원 4만8,000명 중 3분의 1인 1만6,000명을 내보내는 대수술을 단행했습니다. 구조조정은 인력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09년 67개에 이르던 국내 노선 중 적자 노선 27개를 1년 안에 폐쇄했습니다. 국제선 포함 총 247개 노선을 2012년 초 173개로 30% 줄이고, 항공기 기종도 가짓수를 줄여 평균 운행비용을 20%나 낮췄습니다.

JAL은 2011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2조 원대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증권 시장에도 재상장했습니다. 망한 회사가 다시 살아난 화려한 부활입니다. 그 이면에는 이나모리 회장의 강렬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는 반드시 재생시켜야 한다 △남은 3만여 명 직원의 고용은 반드시 지킨다 △소비자를 위해 일본 항공 업계를 경쟁 관계로 유지해야 한다는 세 가지 대의(大義)를 걸고 직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독실한 불교도이자 자비(慈悲)를 경영 철학의 근간으로 삼는 이나모리는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를 많이 흘리더라도 당장 대수술을 해버리는 단칼 구조조정을 실행했습니다. 3년 걸릴 구조조정을 1년 만에 끝내 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비효율 요인을 척결하고,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전일본공수(全日空 : ANA)와의 경쟁체제로 JAL을 회생시켰습니다. 78세의 노구인데도 그는 24시간 ‘일본항공 회생’ 일념으로 일했습니다. 그 결과 ‘경영의 달인’으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그는 끊었던 담배를 8순의 나이에 다시 피운다고 합니다.

작년 2월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물러난 이나모리의 뒤를 이은 오니시 회장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이나모리의 애제자라고 했습니다. 사장 취임 후 그는 3년 동안 쉴 새 없이 현장을 누비며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이나모리의 경영 철학과 회생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때문에 3년 동안 회사에 나가지 못한 날은 딱 5일뿐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있은 아들 결혼식과 밤샘 근무 끝의 휴식 두 번이 전부입니다.

1987년 민영화된 JAL은 2010년 파산 직전 부채가 30조 원에 달했지만, 퇴직 적립금이 10조 원에 이르는 강성 노조만 살아 있었습니다. 오니시 회장은 망하기 전까지 JAL에서는 직원들끼리 여러 가지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그게 좋은 회사라고 여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일에 모두가 집중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다고 그는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오니시 회장은 우리 회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업 이념’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신입 사원 채용 때도 활용했습니다. 응시자들에게 기업 이념을 알려주고 ‘우리 회사는 이런 회사입니다. 여기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습니까.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라고 묻고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 중에서만 뽑는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목표가 모두 일치하는 회사가 되었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강 건너 불일까요?
빚더미에 올라앉아 한 해 수십조 원의 혈세를 축내고 있는 우리나라 공기업 꼴을 보면 JAL의 파산과 회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JAL이 망하게 된 원인을 우리 공기업에 대입해 보면 하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비효율 경영, 낙하산 인사, 정치권 입김, 노조의 횡포, 안일한 경영진 등 기업을 망칠 요인은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습니다. 거기다 기업이 망할 조짐에 대한 개선 의지마저 보이지 않으니 더 한심합니다.

부채 규모가 큰 10대 공기업만 봐도 올해 빚이 28조 원이나 늘어난다고 합니다. 하루 770억 원씩 빚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총 부채는 올 정부 재정 적자 규모(23조 원)보다 5조 원이나 많은 373조 원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한전, 한국수력원자력, 가스공사, 도로공사, 석유공사,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등 10개 공기업의 빚이 전체 295개 공공기관 부채의 70%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이들 공기업은 '갑(甲)질 횡포'에다 특별 승진, 성과급 잔치를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만백성의 고름이자 천 인민의 피인 줄 모르고. 한 술 더 떠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최근 회의석상에서 “대선 승리를 위해 힘을 다 바친 동지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공신들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과연 그들이 몇 백조 원의 빚더미 공기업을 살릴 능력과 철학을 갖추고 있기나 한지도 모르고.

JAL을 살린 이나모리 회장은 어릴 때부터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난 무엇을 보며 달려야 하지'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 고민은 자신의 행로에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 주고, 실패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잿밥에 눈먼 사람에게 주어진 과분한 감투는 자칫 화장실 변기에 그려진 파리의 기능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랫동안 보아왔습니다. 적자는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준다는 타성에 빠져 돈잔치나 벌이는 공기업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국가 경제도 앞날이 캄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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