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에 목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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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에 목매지 말고

임철순

2013년 10월 23일 (수) 01:00:55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관계자가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방한목적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문인들은 수상후보자 선정을 위해 사전조사를 하러 온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 상을 받는 것이 거의 비원(悲願)처럼 절실해진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손님이 없었겠지요. 한국문학의 우수함과 어느 나라보다 더 활발한 문학시장(특히 시)을 열심히 소개하는 한편 유명 음식점에 모셔 그야말로 칙사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 문학인 A씨가 문학인 B씨에게 했다는 말이 나중에 화제가 됐습니다. A씨는 그때 “이번엔 자네가 양보하게.”라고 했답니다. 내가 먼저 노벨문학상 후보자(또는 수상자?)가 되는 것 같으니 나보다 나이가 적은 자네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아무것도 약속한 게 없는데 ‘양보’ 운운한 이 우스꽝스러운 말은 B씨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입이 걸기로 유명한 B씨는 “지가 뭔데 나보고 양보하라 마라 해?” 그러면서 A씨를 마구 씹었습니다. 우리 문학인들의 정서와 경쟁심리를 잘 알게 해준 에피소드입니다.

금년에도 노벨문학상은 한국을 비켜갔습니다. 지난해 중국 소설가 모옌(莫言)이 수상했을 때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보냈던 우리는 올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에 더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수상자는 무라카미가 아니라 캐나다의 소설가 앨리스 먼로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산케이(産經)신문 디지털 뉴스가 ‘무라카미 하루키 노벨상 수상’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호외를 냈다가 오보로 밝혀져 망신을 샀습니다. 수상에 대비해 작성해둔 기사를 담당자가 실수로 내보낸 탓입니다. 우리와는 좀 다르지만 일본인들도 노벨문학상을 고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문학인들의 초조감과 조바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94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중국도 2000년에 가오싱젠(高行健), 2012년 모옌이 상을 받았습니다. 한중일 ‘문학 삼국지’에서 중국과 일본은 두 명씩 수상자가 나왔는데 한국은 한 명도 없는 상태입니다. 올림픽 개최연도는 일본 1964년, 한국 1988년, 중국 2008년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20년 빠릅니다. 무역규모나 각종 경제ㆍ사회지표 등 모든 부문에서 한국이 노벨문학상의 경우처럼 일본과 중국에 비교도 안 되게 완전히 처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더 약이 오르고 애가 타는 거지요.

게다가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했던 오에 겐자부로가 유력 후보자로 지목한 중국의 모옌(2012),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2008),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2006) 등은 다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후보 중 한 명으로 꼽은 한국의 소설가 황석영 씨만 아직 무소식입니다. 황씨는 작품 8종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프랑스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작가’입니다. 올해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를 했는데, 이번에도 반가운 소식은 역시 듣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 10일 무렵이면 고은 시인의 집 앞에 민망한 풍경이 빚어집니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부담을 느낀 고씨는 일부러 집을 나가곤 했습니다. 2005년 당시 수상을 하지 못하자 고씨는 아내를 통해 “국민들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후보였다고 확인해준 사람도 없었는데 왜 면목이 없어야 하는지, 아무래도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됩니다. 하지만 취지에 맞게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 문학인들은 더욱 더 세계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작품을 창조해 내야 할 것입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 미흡이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없는 주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늘 지적되는 번역 문제도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 번역 출판한 작품은 10월 현재 28개 언어권 608건입니다.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된 것은 고은 4종, 이문열 2종, 황석영 2종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최근 10년간 수상한 외국 시인 소설가들의 스웨덴어 출판량은 평균 6.6종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우리 문학작품을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한 달 독서량은 문학서적을 포함해서 0.8권에 불과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라고 합니다. 자국 독자들도 읽지 않는 문학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기초예술 지원 7개 분야 중 문학분야 지원은 총 관련 예산의 4% 수준으로 꼴찌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40억원 규모의 문학나눔 사업(문학도서 보급)이 문화부의 우수도서 선정사업에 통합돼 문학 진흥을 위한 행정이 후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 여부가 그 나라의 문학적 성취를 가늠하는 절대적 척도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수상자가 나올 것입니다. 문학인이든 일반인이든 너무 상을 의식하지 말고 문학이 생활화하도록 그 기초와 풍토부터 다지고 내실을 키워가야 합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작품이나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작품을 중시하는 경향이 이제는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발전과 통합에 기여하고 인류 보편의 소통과 성숙에 힘을 더하는 ‘매력적인 문학’이 중시돼야 합니다.

정달호 (211.XXX.XXX.254)

우리나라에선 왜 문학에서만 노벨상을 목 메어 기다리는지요.
평화상은 한 번 받았다지만 그 외 여러 분야에도 빛나는 상이 있는데
언론은 인기몰이 하듯 씨즌이 되면 노벨문학상만 가지고
지지고 볶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여 안타까운 바 없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 의학, 과학, 경제학 분야도 상있는데 이런 분야에서도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나와야 하고 나올 때도 되었을 법합니다.

담연님께서 말씀하신 바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상을 기다리기에 앞서 더 보편적인, 더 깊이있는 문학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책 안 읽는다고 하지만 우리 책으로서 읽을 만한 게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컬럼에서 정론을 펼치다보면 이런 부분도 차츰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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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5: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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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7)

감사합니다. 물리학 같은 분야에서 먼저 상을 받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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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5: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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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환 (220.XXX.XXX.8)

글 잘 읽었어요. 언론인 답게 날카로우면서도 사리의 실마리를 놓치지지 않는 글흐름에서 멋을 맛보았습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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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5 09: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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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19.XXX.XXX.227)

'글을 쓰는 것은 사적인 행위지만, 상을 받는다는 것은 공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서 기쁘다.'던 故 이청준 선생님의 이산문학상 수상소감이 생각납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상 받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하지만 상에 앞서 수행해야 할 보다 소중한 작가의 의무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불빛 같은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전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로 인해 독자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사람다운 삶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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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0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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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7)

감사합니다. 어제 행사에도 참석해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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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15: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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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맹문재시인이 최근에 출판한 시집 *기룬 어린 양들* 이란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문학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수려한 문장력, 빼어난 감수성 이전에 무엇을 왜 써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은 물론 받으면 좋은 것이겠지만 그 보다 더 가치있는 것, 세상을 향한 당연한 자기 역할 같은 것,그런 것을 다할 수 있다면 상을 못받은 들 실망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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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0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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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10월 24일 강동아트쎈타에선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손 흔드는 젊은 씨니어들이
풋풋한 몸짓으로 자신의 말을 걸어왔습니다.
만남이란 것이 이렇게 즐겁구나!
객석 어둠속에서 박수치며 내내 생각했습니다.

강동 아트쎈타_ 너무 멋진 곳 이었습니다.
유명배우(정준호?)를 쏙 빼닮은 구청장님 아니라도
강동구는 젊고, 새롭고, 멋진 곳 이었습니다.
길가의 깊고 울창한 숲도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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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5 1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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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20.XXX.XXX.8)

왔다 가셨군요. 얼굴을 모르니 제가 인사할 수도 없었겠지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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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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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구 (220.XXX.XXX.8)

임철순 선생님의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작품이나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작품을 중시하는 경향이 이제는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발전과 통합에 기여하고 인류 보편의 소통과 성숙에 힘을 더하는 ‘매력적인 문학’이 중시돼야 합니다.”는 임 선생님의 문학관에 깊은 공감을 갖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려대 연구교수. 문학평론가
송용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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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22: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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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220.XXX.XXX.8)

노벨문학상을 기대하기전에 독서를 국민이 많이해야하고, 한국축구가 worldcup에서 좋은성적을 거두려면 K-league가 활성화되야하고, 한국사람이 영어를 잘하려면 영자신문을 읽어야하고 한국여자골프가 세계정상인이유는 KLPGA 가 인기가 있어야합니다. 아주시의적절한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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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22: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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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220.XXX.XXX.8)

노벨상수상은과정이지목표가아닙니다문학을사랑하는국민이되면노벨상은못받아도섭섭치않읍니다권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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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22: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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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220.XXX.XXX.8)

'다행히'란 표현에 순간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 필자 소개에 '배우'는 언제 넣으실 건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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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22: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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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211.XXX.XXX.68)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않고 각종 노벨상만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측은합니다. 문학의 경우에도 질 높은 작품이 적은 상황은 외면하고 상만을 기다리는 우스운 모습을 언제까지 연출해야될지 모릅니다. 문학상을 못타는 나라에도 좋은 작품이 넘쳐나기도 하고 상을 못타는 사람도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김니다.

독서인구가 적다는 말은 좋은 작품이 적다는 얘기도 됩니다.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을 탓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작품에 천착하기보다는 상을 고대하는 문인은 많고 자녀에게 책을 읽는 모범을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기다리는 것은 커다란 모순입니다.

상보다는 당연히 내실이지요. 모든 이치가 그러할 것입니다. 좀 귀찮겠지만 오늘부터 책 한 권을 항상 겨드랑에 끼고 외출/출퇴근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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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09: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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