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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면 증오일까
신아연 2013년 11월 04일 (월) 00:35:18
지난 한 주간 방송인 김주하 씨의 이혼 소송이 연일 매스컴을 달구었습니다. 원하지 않아도 유명인들의 ‘결혼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이혼 이야기’ 또한 안 듣고 싶어도 들어야 합니다.

안 유명한 사람에게도 이혼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대명천지에 다 까발려진 이혼 사건은 당사자들에게 참담함과 수치심, 죄의식을 더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무분별하게 들끓는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질 즈음부터 마취에서 깨어나듯 생생한 고통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결혼식 뒤 일상의 밋밋함, 위무의 장례식 후 남은 자의 망연함, 조명 꺼진 무대 뒤의 민낯의 배우처럼 세간의 이목이 걷힌 후 고통은 비로소 이혼 당사자들에게 잔인한 실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불행을 견딜 순 있어도 피해갈 순 없습니다. 김씨처럼 9년을 견뎠든, 25년을 버텼든 그때까지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온 데에는 나름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당장 그만두지 왜 그러고 살았을까, 똑똑하고 잘난 여자가.., 이해가 안 되네” 하는 따위의 말로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며 상처를 덧입힐 일은 아닙니다.

다만 때가 ‘무르익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결혼 관계를 종결하는 것일 뿐 상대방을 증오하고 미워하다 못해 전 에너지를 쏟아부어 이전투구하며 끝내는 불구대천의 원수 되는 과정으로 이혼을 받아들여선 안될 것입니다.

한때는 ‘죽을 만큼’ 사랑에 쏟았던 열정을 지금은 ‘죽일 만큼’ 격렬한 분노에 옮겨 붙여 지옥의 화염 속으로 뛰어들 까닭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무리 사랑과 증오가 한 짝이라 해도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두 사람 사이에 자녀까지 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업을 함께 쌓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추악하고 잔인하며 소름 돋는 파멸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는지 의아합니다.

살이라도 '베어 먹일' 듯 살가웠던 두 사람이 돌연 서로 살이라도 '베어 먹을' 듯 끔찍하게 구는 것이 이혼이라고는 하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각각이듯, 죽음에 임하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듯 이혼도 각자 처한 상황에서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지상에서 우아하고 고상한 이혼은 없습니다.

거두어진 사랑 앞에 걷잡을 수 없이 냉혹해져서 심지어 변기 옆에 걸린 쓰다 남은 휴지조차 서로 차지하겠다며 옥신각신하고 창고에 처박아 둔 굳은 페인트 통을 배우자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페인트 값보다 백 배는 더 비싼 소송료를 감수하며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도 있었다니 말입니다. 이쯤되면 부부 2인의, 비극을 빙자한 목불인견의 희극이라 아니할 수 없겠지요.

두루마리 화장지, 굳은 페인트가 분노와 증오의 기폭제가 되어 완전히 이성을 잃은 두 사람이 가없는 치사함을 굽이굽이 펼치며 '막장'을 연출하는 것이 정녕 이혼의 어이없는 현실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인간관계에는 어떤 형태로든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추악한 종말도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관계의 몹쓸 끝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좋은 매듭을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하물며 일생 중 가장 소중한 관계 맺기라고 할 혼인 관계가 상처에 상처를 덧입으며 결말이 난대서야...

이혼 후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더구나 앞으로의 시간은 혼자 꾸려가야 할 지난하고 쓰라리며 막막한 세월입니다. 그 시간 속을 싸움박질의 상흔을 안고 걸어가야 한다면 얼마나 곤비하겠습니까.

미국 철학자 리처드 테일러는 저서 <결혼하면 사랑일까 Love Affairs: Marriage and Infidelity>에서 결혼관계가 반드시 사랑으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되짚습니다. 부부의 깊은 사랑을 기반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도 우리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요.

그 책 제목에 빗대어 저는 ‘이혼하면 증오일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사랑 말고도 여러 요소가 있듯이, 서로를 증오하지 않음에도 결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무리된 지난 결혼 생활에도 분명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대부분의 시간이 사랑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분명 '남는 장사'였습니다.

혹여 사랑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없었다 해도 ‘시절 인연을 따라 내 생애에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내가 더 성숙해졌다고 마음을 정리할 수는 없을까요.

사람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생 성장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는지도 모릅니다.

바야흐로 ‘이혼 시대’입니다. 그나마 우정이라도 남으려면 배우자와의 최선의 마무리를 위해 안간힘을 다해 기본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모든 법적 절차, 조율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지금 이혼을 준비하는 사람들, 마지막까지 정신 바짝 차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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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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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sun (184.XXX.XXX.82)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2005년 8월말부터 살고있는 사람입니다.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떻게 만나는가 보다 어떻게 헤어지는가가 참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참 편안하게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시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늘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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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6 08: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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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훈 (112.XXX.XXX.157)
주제는 좀 무겁고 어둡지만 실타레를 풀어가듯 엮어가는 글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말미에 교훈은 가슴에 파고 들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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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1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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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 (112.XXX.XXX.157)
정말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저는 둘사이는 잘 모르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운 김주하 아나운서

같은 사람을 왜 그렇게 대했는지 이해가 않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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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8: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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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112.XXX.XXX.157)
만남의 환희와 달리 헤어짐의 잔인함도 인격적 성숙함이 있어야만 미소로 스칠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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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8: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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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112.XXX.XXX.157)
"바야흐로 ‘이혼 시대’입니다." 끔찍스럽게 들려요. 아니되옵니다 정말 아니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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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04: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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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 (112.XXX.XXX.157)
그럼 어떻게 해야 이혼을 잘할 수 있을까요? 암걸린 교우들 위로하는게 참 어렵던데..암걸려본적이없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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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04: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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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근 (112.XXX.XXX.157)
지당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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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04: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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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12.XXX.XXX.157)
부득이 이혼을 하더라도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로, 내가 가장 믿고 의논할 수 있는 상담자로 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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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2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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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술 (112.XXX.XXX.157)
신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저 역시공감합니다.공인의 신분은 사회의 모범이 됐으면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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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21: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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