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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권력의 대이동
김수종 2007년 08월 18일 (토) 10:14:52
미디어 산업의 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의 얼굴을 볼 때마다 상어가 연상됩니다. 힘을 잃어가는 매체의 냄새를 맡고 사정없이 달려들어 먹어치우는 사업행태가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가 얼마 전 미국 전국지(全國紙)의 쌍벽중 하나인 월스트리트저널을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천하의 월스트리트저널이 그렇게 잡아먹히다니...

뉴저지 중산층 거주지역인 버겐카운티의 겨울 아침 6시 반은 껌껌했습니다. 한국에서 갓 특파되어 나온 기자는 여기서 뉴욕 맨하탄의 월가까지 가는 통근버스를 탔습니다. 승차하는 순간 기자는 갑자기 이방인들에 둘러싸인 것을 느꼈습니다. 한결같이 짙은 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백인 남자들이 버스좌석을 꽉 메웠는데 모두가 신문을 펼쳐들고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 아닙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었습니다. 버스 안은 조명이 환한데 들리는 것은 신문 쪽 넘기는 소리뿐이었습니다. 기자는 한 시간 동안 계속된 그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신문기자가 신문 읽는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충격에 휩싸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 승객들의 반만이라도 뉴욕타임스를 읽고 있었다면 기분은 달랐을지 모릅니다. 1990년대 초의 일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뉴욕타임스를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미국과 세계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습니다. 뉴욕에 앉아 뉴욕타임스를 보면 세계의 조류와 그 흐름을 타려고 헤엄치는 나라와 조직들의 모습이 선명히 보입니다. 서울에서 꼭 같은 뉴욕타임스를 보고 있어도 얻을 수 없는 육감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이나 뉴욕의 한쪽만을 본 것임을 곧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한 쪽을 비춰주는 거울이 월스트리트저널입니다. 미국 금융가와 비즈니스계의 아침을 지배하는 것은 뉴욕타임스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입니다.

월가의 투자은행 매니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모니터를 서너 개 띄워놓고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일과는 새벽 6시 반에 시작합니다. 시간이 아까워 회사까지 15분 거리를 택시를 탑니다.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택시 안에서 우선 하는 일은 월스트리트저널 읽는 일입니다. 무슨 기사를 보느냐 하면, 딱 두 가지랍니다. 월가를 비롯해 세계금융센터에서 나오는 다우, 니케이, 환율, 유가, 선물 등 주요 인덱스(지수), 그리고 미국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짤막짤막하게 압축한 ‘What's news?'를 봅니다. 택시 안에서의 10분 동안 그의 두뇌에 필요한 정보가 이렇게 입력됩니다. 그리고 그날 수천만 달러가 그의 판단에 의해 거래됩니다.
“뉴욕타임스는 읽지 않느냐? 고 물었습니다.
“Times? Sometimes in weekend.(주말에나 가끔 보죠)” 라고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주말용밖에 안 된다는 투였습니다.

미국의 힘이 생성되고 모이는 곳을 서너 군 데로 꼽으면 워싱턴, 헐리우드, 실리콘밸리, 그리고 뉴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워싱턴은 정치선수들이, 헐리우드는 영화계선수들이, 실리콘밸리는 하이테크 선수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듭니다.
뉴욕은 전 세계의 돈벌이 선수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돈줄을 바탕으로 막강한 미디어 산업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미국 3대 네트워크 방송사와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이곳에 진을 치고 미국의 에너지를 전 세계로 분출합니다. 사실은 이 미디어 산업자체가 바로 미국의 힘이기도 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태어날 때부터 미국 자본주의를 먹고 자라온 경제 저널리즘의 원조 매체라 할 수 있습니다. 1882년 찰스 다우, 에드워드 존스, 찰스 벅스트레스 등 세 기자가 공동으로 다우존스회사(Dow Jones & Company)를 창설했고, 존스는 1889년 조그만 뉴스레터 형식의 소식지를 ‘월스트리트저널’로 이름을 바꾸고 전보를 통해 경제뉴스를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모멘텀을 잡았습니다. 이때 ‘존스평균’이란 뉴욕증시의 지수를 만들어 보내기 시작한 것이 오늘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다우존스지수’가 된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02년 2대 소유주 클레런스 배런이 경영하면서 그 당시로서는 경이적으로 두려움 없는 독립적 보도매체의 전통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928년 배런이 죽은 후 사업권이 밴크로프트 가문으로 넘어가 올해까지 70여 년 간 가업으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전성시대는 1940년대 미국산업이 팽창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는 독특한 편집디자인이 이때 정착되었고 부수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신문의 발행부수는 1902년 7천부, 1941년 3만3천부였다가 1967년 1백10만부로 폭발했으며, 2006년 유럽과 아시아판까지 포함하여 약 205만부가 되었습니다.

뉴스산업의 흥망성쇠는 신속성과 공신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특히 방송이 발달하면서 공신력은 신문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공신력을 결정하는 것은 신문의 독립성과 기자의 취재력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도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적으로 보수이고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가 확립된 신문으로 미국 보수정치와 월가를 대변합니다. 기사는 숨 막힐 정도로 길고, 사진은 절대 쓰지 않고 헤드커트(잉크 점으로 그린) 인물초상을 씁니다. 정말 이 신문을 집에서 읽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단조로움까지도 신문의 권위로 만드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들의 직업의식과 취재능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편적인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외국기자단에 끼어 월스트리트저널 뉴스 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은행취재 담당 기자가 몇 명이냐?”
편집간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두 명이다.”
방문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 간부는 보충설명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경력 25년이고 다른 한사람은 15년이다. 알랜 그린스핀 FRB의장이 표정을 바꾸며 한 단어만 던져도 이들은 단숨에 20~30인치를 쓸 수 있다.” 20인치라면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드물게 긴 분량의 글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쟁자는 누구냐?”
“저널의 경쟁상대는 타임스다.” 뉴욕 사람들은 그냥 줄여서 월스트리트저널을 ‘저널’이라고 부르고 뉴욕타임스를 ‘타임스’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자들의 자부심과 능력에 의해 이 신문은 33명의 퓰리처상 수상자를 내면서 발행부수 112만부의 뉴욕타임스와 더불어 미국 신문의 쌍벽을 이루고 있고, 런던의 파이낸셜타임스와 국제경제뉴스 경쟁에서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올 여름 이 철옹성 같던 월스트리트저널에 일대 소용돌이가 일었습니다. 미디어 합병의 명수 루퍼드 머독이 경영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와 밴크로프 가문이 소유한 지분을 사버린 것입니다. 이 소식은 전 세계 미디어계가 놀랄만한 뉴스였고, 뉴욕타임스가 혼비백산할만한 소식이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인의 자존심이 흔들리는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회사의 문제가 돈에서 생기듯이 월스트리트저널의 변화도 그렀습니다. 흑자행진을 계속하던 이 신문은 1990년대 광고수입이 감소하고 원가는 상승했습니다. 인테넷의 등장으로 미디어세계의 권력이동이 생긴 것일까요, 회사의 원가절감과 수입증대 노력에도 전망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반세기 동안 찍지 않던 주말판을 찍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전통을 버리고 1면에 광고를 실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 피터 칸이 작년 퇴임하고 발행인이자 그의 아내인 카렌 하우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이 신문의 운명은 더욱 불안해졌고, 이틈을 놓치지 않고 머독의 작전이 진행된 모양입니다. 70년 전통의 가업의 운명을 놓고 밴크로프트 가문은 격렬한 내부논란을 거듭했지만 역시 돈의 위력 앞에서 굴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밴크로프트 가문이야 시세의 배나 비싸게 판 주식으로 돈방석이라도 차지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의 명성과 전통을 지켜온 기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머독의 월급을 먹으며 남느냐, 보따리를 싸느냐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루퍼트 머독. 그는 미디어 합병의 괴력을 가진 이 시대의 불가사의한 인물입니다. 올해 76세인 그는 영국의 자존심이라는 더 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미국의 뉴욕포스트 등 전 세계에 걸쳐 175개의 신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뉴욕에 본부를 둔 폭스뉴스를 만들어 CNN과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과 홍콩의 스타TV 등 수많은 TV매체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산업의 20세기폭스사와 출판업의 하퍼콜린스 등 쟁쟁한 브랜드의 매체가 그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머독은 호주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신문사 지분을 갖고 어렸을 적부터 아들에게 신문사업을 물려주기 위해 기자수업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머독은 기사 쓰는 일보다 도박이나 돈벌이에 더 관심을 가질 정도로 권력 지향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미디어사업에 손을 대면서 우선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 미국 순으로 미디어 정복의 길에 나서 유력매체를 인수하거나 새로 설립했습니다. 그가 세운 뉴스코퍼레이션은 그의 미디어 왕국을 상징하는 지주회사입니다. 영미권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한 머독은 동양권에까지 손을 뻗쳐 홍콩의 스타TV를 인수하여 세 번째 결혼한 중국인 부인에게 경영권을 주는 등 중국진출의 발판도 마련했습니다.

호주가 영미권, 아니 세계 미디어를 장악해가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머독은 사업을 위해서 국적도 미국으로 바꿀 정도로 자기의 미디어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1세기 글로벌 환경을 천재적으로 활용하는 초국가적 수완가임에 분명합니다. 독특한 사업 스타일과 명성으로 그는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의 모델 인물이 된 적이 있습니다.

머독은 그의 매체의 보도성향을 기준으로 보수주의자로 분류됩니다. 사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 영국의 대처와 블레어총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의 매체는 그들의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그는 대통령 예비후보로 뛰는 민주당의 힐라리 클린턴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 파티를 열어줬습니다. 권력의 냄새에 민감하다는 평을 받는 사례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로 활약 중인 경제학자 폴 크루먼은 “루퍼트 머독의 위험성은 그의 우파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업을 위해 뉴스보도를 왜곡하는 기회주의자라는 데 있다”며 맹공을 퍼붓습니다.

머독의 월스트리트저널 인수 충격의 불똥은 이 신문 기자들에게만 튄 게 아닙니다. 뉴욕타임스가 머독의 행태에 대해 쏟아내는 기사를 보면 그 위기감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두 신문은 경쟁관계지만 영역의 경계선이 있었습니다.

머독은 계약을 체결하면서 월스트리트저널의 전통과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머독이 생각하는 것은 세계적 경제권위지가 아니라 소비자를 자극하고 돈을 버는 일반 상업지로서의 위치일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봅니다. 미국과 세계의 그날 뉴스 아젠다를 독점하던 뉴욕타임스가 경제이외 분야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의 도전을 받는다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 언론계만 아니라 세계 언론계가 ‘머독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크루먼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이 머독의 손에 들어가는 날 미국언론과 민주주의는 암흑기로 접어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게 미국이 녹슬어가는 징조일까요. 옛날 로마는 북방 야만인의 침공으로 차츰차츰 무너져 내렸듯이, 남방 호주의 미디어 포식자에게 미국의 미디어 권력이 잠식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같은 영미권 문화 안에서 주인이 바뀌는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보아야 할까요.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기업도 그렇고, 따라서 미디어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권력의 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세기 어느 날 머독이 뉴욕타임스를 매입했다는 뉴스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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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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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11.XXX.XXX.51)
머리가 핑핑 도는 자본주의자들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다 보면 마침내 인류의 지성과 교양이 한계에 달할 거고 괴로운 시간 속 지구의 참을성이 바닥나고 나면 마침내 200만년이 흘러 모든 영장류가 사라지게 되겠지요. 그때를 생각하며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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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8 1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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