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관통되는 방탄복’ ‘보이지 않는 야간투시경’ ‘전자파 공격에 맥 못 추는 셸터’
30년 넘게 외쳐 온 ‘자주 국방’의 관건인 군사 장비들이 부실 불량투성이인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원인은 이들 장비의 유효기간이나 성능 유지에 관한 규정이 없거나, 있어도 성능 검사를 하지 않고 납품 받아 보급한 때문입니다.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은 최근 3년간 군수품 13만 6,844개의 부품과 원자재의 공인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한 34개 군수업체를 지난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K-9자주포, k-1전차, 헬기 등 무기류 부품 제작 업체의 원자재 시험성적서 위-변조가 23개 업체 103건, 식품 및 피복류 관련 위-변조가 11개 업체 22건에 이르렀습니다.

업체들은 기품원과 국방과학연구소(ADD) 같은 신뢰도가 높은 기관 대신 정부 공인 시험기관이 발행한 시험성적서의 일부 항목을 변조하거나, 과거에 발행한 성적서의 날짜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 군사 장비의 성능이 엉망인 데다 가격마저 비싼 것은 군이 구식 규격을 바꾸지 않고, 일부 업체가 독과점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감사원의 비(非)무기 군수품 조달 및 관리 실태 감사 결과 2008년산 방탄복 일부는 AK-47소총에 완전 관통됐습니다. 2006년부터 2,500억 원을 들여 구입한 야간투시경 176대 중 26대(14.8%)는 곳곳에 흑점과 긁힌 흔적이 발견됐고 14대에는 중고품이 장착돼 있었습니다. 최근 3년간 33억 원을 들여 108대를 구입한 포격 지휘차량의 셸터(전자파로부터 전자 장비를 보호하는 차폐물)는 차폐율 규정이 너무 낮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2009년부터 보급된 신형 반합은 업체의 요구대로 시험기준을 낮춰 주어 반합의 알루미늄이
인체에 흡수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또 군용 유류는 방위사업청이 단가를 잘못 계산해 2007~2011년 정유 업체에 823억 원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가 안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할 군과 방산 업체의 유착이 의심되는 사안들입니다.

말이 부실 불량이지 실제로는 가짜와 다름없는 무기와 군사 장비가 널려 있다는 의혹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무기는 극소한 오류만으로도 성능과 정밀도에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규정을 허술하게 방치했거나 방산 업체와의 이해관계로 전력에 차질을 빚게 했다면 그것은 가공할 범죄행위입니다.

지난여름 우리는 일촉즉발의 대 정전(Black Out) 위기를 하루하루 넘기며 무더위를 참고 지내야 했습니다. 군사장비 업체처럼 원전 부품 생산 업체들이 성능검사를 위조 조작하여 불량품을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천인 공노할’(김황식 전 총리), ‘용서받지 못할’(박근혜 대통령) 짓이라는 통박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량 아니면 가짜가 판을 휩쓸고 있습니다. 군사 장비나 원전 부품뿐만 아니라 나라를 이끌고 지탱할 사람조차 온전하지 않아 보입니다. 위조, 변조, 탈법, 위법, 편법, 담합, 정실, 거짓에 무감각해진 먹물들이 하도 많아서입니다. 설마 했는데 이번 개각에도 병역 미필 감사원장 후보자가 등장했고, 이성헌 경찰총장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다운계약’ ‘투기’ ‘논문표절’을 모두 했다고 인정했으니 말입니다.

학문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문제입니다.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는 올해 A학점(평균 3.7이상) 비율이 60% 대로 높아졌습니다. 법대(61.1%) 경영대(58.9%) 사범대(58%) 사회대(56%) 순으로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교수들은 로스쿨 진학, 취업 지원 등의 이유를 대지만 과거 5% 대와는 판이해졌습니다.

성적 세탁도 해 줍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졸업생의 성적증명서 발급 신청 때 취업용인지 열람용인지를 물어 취업용일 경우 성적을 세탁한 증명서를 떼어준다고 합니다. 전문대 포함 연간 대학 졸업자 50만 명 중 신입사원 취업이 5만 명 정도라니 학생과 대학의 고충도 알 만하지만, 성적 성형까지 일삼는 대학을 최후의 양심의 보루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한 일부 지방대는 교수가 고교 진학담당 교사와 짜고 학생 장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경북 포항대(전문대)는 2008년부터 신입생 한 명당 20만 원씩의 사례비를 주고 학생을 충원했습니다. 그동안 대학이 뿌린 돈이 2억2,800여만 원, 한 해 80여 명을 입학시켜 준 교사 한 명이 3년간 받은 돈이 4,800여만 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형식 요건만 갖춘 짝퉁 대학생도 양산하고 있습니다. A대학은 교직원과 가족 39명을 ‘전액 장학생'으로 등록시켜 학위까지 수여했습니다. B대학은 백지 원서를 받아 교직원이 합격 가능한 학과를 써주고 114명을 뽑았습니다. C대학은 돈 주고 중국인을 데려와 입학시켜 신입생 충원율을 높인 다음 바로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한 대학들이 이 지경이니 학생들도 일탈을 일삼기도 합니다. 전남 순천의 J파 폭력 조직은 전문대 두 곳에 조직원들을 입학시켜 총학생회장에 당선시킨 뒤 학교 지원금 등 4억여 원을 빼돌렸습니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는 총학 선거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가 하면, 충남의 모 대학은 총장이 학생으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교생 10명 중 4명 이상이 ‘10억 원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에라도 가겠다’고 하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군사 장비와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변조, 세탁 성형한 대학 성적증명서, 학생 거래로 충원한 가짜 유령 대학생---. 100년 뒤가 아닌 코앞의 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