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2_(김창식)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김창식 에트바스

볼펜2

김창식

2013년 11월 25일 (월) 04:11:50

지난여름 칼럼(2013. 8. 23)에서 지하철을 옮겨 다니며 상품(접착제)을 파는 떠돌이 행상 이야기를 했죠. 지하철 잡상인을 만나면 여러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 물품을 사주면 실제 도움이 될까? 일푼(一分)의 적선이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내게 이 물건이 필요하기나 한 걸까? 전에도 설거지용 라텍스 장갑을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불량품이었잖아? 시답잖은 생각일랑 거두고 그냥 한 개 살걸 그랬나? 등등.

지난 글에는 60년 대 후반 정릉 노선에서 볼펜을 판 조폭형 상인 이야기도 나옵니다. 당시 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물건을 강매하는 그자의 방식에 분노하여 “여보쇼!”라고 같잖게 큰소리치긴 했는데, 겁도 나고 해서 “한 자루 더 주쇼!”라는 말로 어색한 상황을 어렵사리 수습했었죠.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어요.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왜 일이 그 지경에 이른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은 용기의 문제였거든요. 젊은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누누이 스스로에게 다짐해온 그 용기.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붉어졌어요. 돌연히 등장한 비정상적인 권력의 횡포에 맞서기는커녕 스스로 밧줄로 옭아맨 꼴이 되었으니까요. 나는 나의 비겁함을 자책하였으며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오면 거칠게 저항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나는 혈기 방장한 젊은이였으니까요, 누가 뭐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다시 만났고,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었으며, 이건 아니잖아! 온몸이 참을 수 없이 가려웠습니다. 지금도 화가 나면 온몸이 견딜 수 없이 가려워지곤 하는데 그것은 그때 이후 생겨난 몸의 변화이자 습관입니다. 거꾸로 온몸이 가려워지면 화가 나기도 하였지만 말이에요. 나는 벌떡 일어나 지난번처럼 외쳤습니다. 돌연한 사태에 놀란 승객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였음은 물론.

“여보쇼!”
그래 놓고 또 할 말이 없었어요. 전처럼 대책 없이 일어선 것이었으니까요. 이번에도 어떻게든 국면을 상처 없이 마무리 지어야 했습니다. 신통방통하게도 지난번처럼 또 어떤 생각이 스쳤고, 나는 가능한 한 목소리를 깔아 퉁명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이 볼펜 바꿔주쇼!”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고 입술이 말려 올라갔습니다. 그 사람이 웃은 것이죠. 웃었다니까요, 글쎄.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와 더 조우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무릎 위에 더 이상 볼펜을 놓지 않았어요. 이로써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더 이상 간여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 정도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자위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나는 자괴감과 모멸감, 그리고 응달진 곳 보통사람인 그와의 사이에 싹 텄음직한 루저의 연대감에서 오랫동안 헤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김윤옥 (39.XXX.XXX.180)

대체로 지하철에서 산 물건은 품질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손녀가 사다준 플라스틱 책받침형 돋보기는 성경책에 끼워놓고 요긴하게 쓰긴합니다.

언젠가 길에서 "맥심믹스봉지커피"를 싸게 파는 사람을 만나서 100개들이 한 봉지를 샀지요.
집에와서 봤더니 감쪽 같은 가짜커피..
" 이 커피 바꿔주쇼!"
그러고 싶은데...

답변달기 ▼

2013-11-25 18:01:24

0		0

김창식 (116.XXX.XXX.184)

김윤옥 선생님께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언제 책받침 돋보기 보여주세요~.

답변달기 ▼

2013-11-27 16:05:57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