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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실은 인생 파노라마-18번을 통해본 나의 개인사 <상>
김장실 문화관광부 종무실장 2007년 08월 20일 (월) 10:36:16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동요보다는 유행가를 더 많이 부르고 자랐습니다. 지금도 트로트 계열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노래를 좋아하는 집안 내력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경남 남해군 남면 우형 마을에 산소가 있는 저희 할머니가 동네 분들과 일을 하면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는데, 목도 쉬지 않고, 주변 분들의 반응도 좋았다는 아버지의 얘기를 어릴 때 자주 들었습니다. 그 때 마을과 많이 떨어진 산속에 있는 논과 밭에 멧돼지들이 자주 출현하여 농사를 망치는 일이 잦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곳에 자그마한 농막을 짓고 야밤에 멧돼지가 나타나면 고함을 쳐서 쫓곤 했는데, 심심할 땐 밤새 노래를 불렀다고 하더군요.

이런 유전적 영향인지 저희 4형제가 어디 가서 노래 때문에 곤란을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 금전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살았던 저는 여름 밤 큰 덕석을 마당에 펴 놓고 형님들과 노래를 시작하면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연달아 불렀습니다. 물론 아침에도 유행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이렇게 오래 불러도 그 당시 어린 아이인 제가 밑천이 많이 달리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유행가를 많이 배우고 많이 불렀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수와 삼천포를 오가는 여객선이 아침과 저녁으로 우리 동네로 오가면서 틀어주는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면서 당시 유행하는 노래들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해질 무렵 여객선 조도호에서 나오는 애절한 노래를 소 먹이면서 혹은 나뭇단을 지고 다니면서 신명나게 지게작대기로 만들어내는 장단에 맞춰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모릅니다.

또한 어릴 때 마을 빈터에서 자주 열렸던 가요 콩쿠르의 최종 결승전까지 앞 자리에서 보며 출연자들의 노래를 같이 불렀습니다. 당시 동네 어른들이 콩쿠르에서 많이 불렀던 '무너진 사랑탑'과 같은 가요들은 거칠게 꾸며진 무대에다 별로 기교 없는 노래솜씨에, 기타 혹은 아코디언 반주로만 연주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요즘의 화려한 공연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락거리가 별로 없는 시절 거듭되는 힘든 노동으로 지친 우리의 일상을 치유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대회장 분위기와 더불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러나 나의 유행가 스승은 아무래도 집집마다 달아놓은 유선방송 스피커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통해 연속극도 듣고, 그 당시 유행하는 최신 노래도 새롭게 많이 배웠습니다.

가끔 우리 작은 형님 친구들이 레코드와 LP판을 집에 가지고 와서 크게 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제가 노래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어머니나 형님들한테 공부나 좀 하라는 꾸중을 듣고도 계속 그 노래들을 들었습니다.
평소 이렇게 여러 경로를 통해 배운 유행가는 학교 소풍 등 여러 계기에 동요 대신 부르게 되고, 특별히 설이나 추석 때 친구들끼리 모이면 친구 집 큰 방에 큰 밥상을 몇 개 놓고 다 함께 모여 빙 둘러 앉아 손뼉을 치거나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돌아가며 부르게 되므로 즉각 실력이 발휘됩니다.

이런 식으로 배운 노래들이기에 대개 우리 세대가 같이 공유하듯이 제가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는 시기적으로 보아 주로 1930년대 우리 대중가요가 본격 태동하던 시절의 노래에서 시작하여 1970년대 노래에서 끝이 나는 실정입니다. 그 이후의 노래들은 배우지를 못해 부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저의 18번곡들은 모두 요즘 신세대들이 보면 구닥다리 냄새가 풀풀 풍기는 옛날 노래들입니다.

아주 어릴 때야 애창곡이라는 것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이런 저런 노래를 가리지 않고 불렀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점차 좋아하는 노래들의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더군요. <계속>

김장실:1955년 경남 남해 출생. 영남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거쳐 미국 하와이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1979년 제 23회 행정고시에 합격, 문화공보부 근무를 시작으로 청와대 사정 및 정무수석실 행정관, 비서실장실 및 정치특보실 보좌관, 국무총리실 교육문화심의관 역임. 문화관광부에서는 공보관 예술국장 등을 거쳐 2006년 2월부터 종무실장으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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