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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끝 무렵 대한민국 국회 모습
고영회 2013년 12월 18일 (수) 00:58:30
건설공사 현장은 시간과 싸우는 곳입니다. 공사를 진행할 일정표를 정해두고, 그 일정 안에 일을 마무리하려고 온갖 것을 미리 점검합니다. 건설자재 중 어떤 것은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품 승인, 제작시간, 운반기간, 설치시간을 고려하려 공정표를 짭니다. 각 공정표를 연결하여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주공정이라 합니다. 이 주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공기를 못 지키게 됩니다. 따라서 공사 관리자는 주공정선(主工程線)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이것을 주공정관리법(CPM, Critical Path Method)이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경로를 관리하는 것이지요.

자재와 장비와 일꾼(기능공)이 다 같이 잘 어울려야 공사가 진행됩니다. 물론 그 전에 공사방법과 계획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공사방법은 현장기술자와 건축주를 대신하는 공사감리자가 협의하여 정합니다. 설계서에 분명하지 않은 것이 있어 공사자와 감리자가 서로 의견이 다르다면 생각을 조율해야 합니다. 당장 공사해야 하는데도, 방향을 정하지 못할 때가 생깁니다. 이런 때는 일꾼이 일하러 나왔는데도 일을 하지 못하고 빈둥빈둥 기다려야 합니다. 일꾼은 그날그날 삯을 받는데 만약 일을 못한다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결정 책임을 진 기술자와 관리자는 돌 날아올 것 같아 진땀이 납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일꾼이 노는 사태가 벌어지면 도리가 없지만, 계획을 세워 일하는 공사현장에는 웬만해서 노는 사태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기면 그런 회사는 곧 문을 닫아야 합니다.

지금 국회에서는 내년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합니다. 나라 살림살이를 정하는 일입니다. 공사 현장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심의시한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라 전체 돌아가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일을 맡은 사람은 일을 끝낼 때까지 잠이 오질 않을 정도로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이 일정은 워낙 중요하므로 헌법에 처리 시한을 못 박아 뒀을 겁니다. 헌법이 정한 주공정입니다.

헌법 54조는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은 2014년 예산을 12월 2일까지 확정하라고 했지만 여태까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일정에 맞춰 예산안을 제출했을 것인데, 국회는 심의기간 60일 동안을 대충 지내다가 처리마감일 무렵인 11월 28일에야 겨우 심사소위를 구성했고 12월 16일 완료 목표로 움직였다고 하며, 헌법 시한보다 한참 늦은 목표일마저 별일 아닌 듯 넘겼습니다. 죄의식도 없는 것 같습니다.

헌법이 예산 심의에 60일을 주었지만, 나라 살림살이 내용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니 열심히 움직인다 하더라도 이 시간도 모자랄 것입니다. 예산 하나하나에 담긴 뜻이 중요하다는 것이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열심히 움직일 생각도 않는 것 같고, 걱정스러운 눈빛 하나 보이지 않고, 날짜를 넘겨도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올해 안에 처리하지 못하면 여론 뭇매에 시달리다 얼렁뚱땅 통과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미국은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 행정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는 자상하게도 헌법에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을 계속하는 데 들어가는 경비는 전년도 예산에 따라 집행할 수 있다.’라고 규정된 탓인지 행정이 멈추지도 않나 봅니다. 그렇지만 예산이 확정되어야 진행할 수 있는 수많은 일은 제자리에서 멈춥니다.

조그만 건설공사 현장에서도 날짜를 하루만 못 지켜도 말썽이 납니다. 온 국민이 영향을 받는 나랏일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해를 넘길 무렵마다 여의도에서 나라 살림살이를 놓고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헌법에 벌칙을 넣어야 헌법을 지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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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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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119.XXX.XXX.227)
좋은글 통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이무성사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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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4 08:25:38
0 0
이희원 (119.XXX.XXX.227)
감사합니다.
건설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어서 더욱더 피부에 와 닸습니다.
마음의 양식이 되게끔 열심히 숙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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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13: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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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3) (119.XXX.XXX.227)
->나를 찾아가고 한국인임을 찾아가는 의미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이창직
->추위에 수고 많으시지요? 날카로운 지적이 사회를 바꿉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고부회장님의 깨어있는 시민 의식에 찬사를 보냅니다. - 유희열
-> 쓴소리, 산소리, 볼멘소리, 많이 많이 해주세요. 그래야 대한민국이 바로잡혀 갈테니까요. 오늘도 웃으며 시작합니다. 수고하세요. - 작은 거인
답변달기
2013-12-18 21: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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