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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바퀴의 만남
허찬국 2007년 08월 23일 (목) 09:19:22
스페인 사람들의 기록에 따르면 1532년 11월 16일,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문명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사건이 전개되었습니다.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아타우알파의 수만 명에 이르는 병사와 신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200명에 못미치나 말과 철제 무기, 총으로 무장한 군사에게 처참하게 도륙됩니다. 80명의 장정이 멘 호화스런 가마에 몸을 싣고 피사로 일행을 접견했던 아타우알파 황제는 사로잡혀 엄청난 양의 금을 몸값을 치르지만 결국 살해되고 맙니다. 이로써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시작된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벌이 완성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미국 UCLA의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이 역사적 사건을 저서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에서 소개하는데, 그는 인류역사를 길게 보았을 때 인종과 같은 집단의 명운을 결정지어온 것이 그 집단 고유의 특성보다는 어떤 자연조건에서 출발하였는가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합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과 원주민들을 정복한 데에는 두 집단이 1만여 년 전 매우 다른 자연조건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을 길들여 식량 경작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유럽이나 아시아인들이 앞서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이는 일종의 농업혁명을 촉발하여 잉여식량의 축적을 가능케 하여 일부 구성원이 직접 식량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종교, 정치, 문화 등의 일에 전념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과 중국 대륙에서 보편화된 ‘마차’ (길들여진 동물과 바퀴가 달린 수레)의 탄생은 물류 혁명을 가져왔고 농업 혁명과 함께 인류 사회의 발전을 가속화 시켰다고 지적합니다.

나름대로 번창했던 아즈텍과 잉카제국은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몰락할 때까지도 ‘마차’가 없었습니다. 서부영화에서 인디안들이 안장없이 타는 말도 사실은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 소개되기까지 미대륙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15세기 이전 남미 페루에는 말과 비슷한 라마가 길들여져 농사나 운반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마차’의 한 핵심은 이미 존재했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바퀴였습니다. 다른 핵심 부품인 바퀴도 미 대륙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멕시코 내륙지역에서 선사시대 유물중에서 장난감에 부착된 바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들 바퀴와 라마가 만날 수 있었다면 ‘마차’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불행은 이 두 사물의 지리적 격리였습니다. 파나마 등지와 같이 험준한 산악과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인 데다 무더운 적도 기후인 중미지역을 통해야 하는 남북미 대륙 간의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동성이 있는 라마가 바퀴를 찾아가는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지만, 건조 한랭한 고산지역에 분포하는 라마가 열대우림에서 살아남기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일, 먼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서 ‘마차’가 널리 쓰였더라면 앞서 보았던 페루 카하마르카의 드라마가,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바뀐 모습으로 유럽의 평야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전 인류역사의 큰 흐름에 대한 얘기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기업 등과 같은 개별 조직이나 사회 전체로 보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아이디어나 인적자원은 잠재적으로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할 마차의 부품과 같습니다. 조직이나 인사의 경직성,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개인들과 집단의 무지나 편견 등, 우리 주변에서 ‘바퀴’와 ‘말’의 만남을 막는 인위적 장벽은 없는지 명심해서 살펴야할 일입니다.
아울러 나라 밖에서는 어떤 ‘마차’가 만들어지고 쓰이는지 유심히 살피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허찬국(許贊國):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경제연구본부 본부장. 198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Barbar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급준비은행 조사부와 연방지급준비제도 이사회(FRB) 국제부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국내에서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과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과 금융감독원 거시금융감독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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