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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간 8-예술의전당
장주익 2014년 03월 04일 (화) 01:20:05
1981년 9월 독일의 바덴바덴에서는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려 서울이 개최지로 결정됩니다. 다음해 초 정부에서는 올림픽 개최에 즈음하여 복합문화센터를 건설하기로 한다고 발표합니다.

돌이켜보면 1977년은 100억달러 수출을 이루었고 1978년에는 1,000달러 소득이 되었으며 불에 타버린 세종문화회관이 번듯하게 새로 지어졌습니다. 1980년에는 국산 컬러 텔리비전 처음 출시되었고 지하철 2호선이 부분 개통되었습니다. 1981년은 프로야구가 막을 연 시대였습니다.

정부는 복합 문화센터의 부지 선정에 들어갑니다. 우선 4대문 안에서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의 서울고등학교(강남으로 이전) 부지와 장충단 공원 지역이 거론됩니다. 그러나 서울고 자리는 토지 매입비가 너무 들고 장충단 공원은 가용 면적이 부족했습니다.

그러자 강남에서 서울시청 건립예정 부지였던 지금의 대법원 자리가 물망에 오르나 용도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어 최종적으로 서초동 꽃마을이 검토됩니다. 그러나 이곳은 80년대 초에는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서울의 최남단인데다 우면산을 등지는 북향이고 또한 꽃마을 앞으로 8차선의 남부순환도로가 지나가다 보니 접근성에서 어려움이 거론됩니다. 그러나 7만 평이라는 넓은 대지의 유리함에 서초동 700번지가 예술의전당 부지로 최종적으로 결정됩니다.

다음, 건물 설계를 공모합니다. 건축가 20여명을 엄선한 후 설계 경험이 풍부한 5명을 선정합니다. 국내에서 김중업(1922~1988), 김수근(1931~1986), 김석철(1943~)등 3명과 국외에서는 영국에서 1명(크리스토퍼 본), 미국에서 1명(리차드 브루커) 등 5명으로 지명 설계 공모를 하게 됩니다.

김석철의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되는데 ‘설계 제안서’ 첫머리에서 그는 ‘서울의 중심인 경복궁에서 직선을 그으면 남산을 지나 그 끝이 우면산 기슭(지금의 예술의전당)에 다다른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김석철은 3개월에 걸쳐 음악, 연극, 무용, 미술 등 사용자측, 즉 무대 전면과 뒷면에서 일하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실시 설계안을 만듭니다. 당초 당선안에는 지금의 오페라하우스가 원형이 아닌 4각 형태였으며 그 앞 남부순환도로 위로 넓은 광장이 계획되어 8차선 도로를 건너지 않고 예술의전당으로 바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변경됩니다.

82년 1월 정부 발표 이후 부지 선정과 현상 설계 공모 등으로 84년 11월에 기공식을 갖습니다. 82년 발표 당시 정부의 목표는 1단계 공사를 86년 아시안게임에 맞춰 준공하고 87년에 2단계 공사를 완공하여 88년 서울올림픽 전에 끝내려고 하였으나 88년에 1단계가 준공되고 10년만인 93년 2월에 가서야 완공을 보게 됩니다.

굳이 나누자면 ‘예술의전당’ 은 ‘넓은 의미의 예술의전당’과 ‘좁은 의미의 예술의전당’으로 구분됩니다. ‘국립국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스트라와 무용단 등의 연습을 위한 ‘연습동’은 관리체계가 달라 ‘넓은 의미의 예술의전당’이며 ‘좁은 의미의 예술의전당’인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 서예박물관, 한가람 미술관,디자인 미술관, 비타민 스테이션 등과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84년 11월에 음악당과 함께 기공을 한 국립국악원은 김원(1943~)건축가의 설계 작품입니다. 국립국악원은 1951년 개원하여 그간 장충동 국립극장 내에 있다가 1987년 서초동 현 청사로 이전하였으며 1996년 예악당 등 현재의 청사가 전관 개관되었습니다. 국립국악원 내에는 예악당( 800여석)과 우면당( 300여석) 그리고 1,300여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인 연희풍류마당 등이 있습니다.

오페라하우스는 1,2,3,4층에 걸쳐 2,340석의 말밥굽 형 공연장으로 벽을 따라 둥글게 객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건축가 김석철은 공사장 입구에 자비를 들여 오페라하우스 내부 모형을 크게 만들어 놓아 공사 담당자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 둥근 건물 형태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오페라하우스에는 토월극장(1,000석)이 있어 연극 등에 쓰이고 있으며 소극장(300석)은 객석의 변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음악당에는 2,500여석의 콘서트홀과 실내악을 위한 체임버홀(600석) 그리고 리사이틀홀(350석)이 있습니다. 1988년 개관식 연주를 한 첼리스트 로스트로비치는 “2차대전 이후 지어진 음악당 중 최고 중의 하나” 라고 극찬을 하며 음악당 내 소리 전달이 정말 완벽하다고 했답니다.

오페라하우스 지붕의 ‘갓’ 모양이라든가 음악당 지붕의 ‘부채’ 모양은 '한국미'의 추구였는데 올려다보면 한옥의 서까래 모양을 여러 곳에서 보게 됩니다.

서예박물관은 10개의 전시실을 갖춘 세계에서 유일한 서예전문 전시 공간이라고 합니다. 한가람 미술관과 디자인 전용 미술관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주 출입구 역할을 하는 ‘비타민스테이션’ 은 고객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자리하고 있으며 문화와 예술이 국민의 자양분이 되자는 의미에서 작명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미국의 ‘줄리어드’ 처럼 실기 전문 교육기관으로서 1993년 석관동에서 개원하여 1999년 서초동 교사가 완공되자 현 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음악, 연극, 영상, 무용, 미술, 전통예술 등을 실기 위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나간 80년대, 지구상에서는 동계 올림픽을 포함하여 5번의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1980년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반대하는 서방국가들이 불참함으로서 ‘반쪽 대회’가 되고 말았으며 1984년 LA 올림픽은 소련등 동구권이 불참함으로서 역시 ‘반쪽 대회’에 머물고 맙니다.

1988년 제24회 올림픽은 정치, 종교, 인종을 초월하고 동,서 진영 모두 참가하는 올림픽으로서 사상 최대 규모인 160개국이 참가하여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장주익
제물포고, 고려대를 나와 직장 (애경,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금강개발, 뉴코아백화점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후 젊어서부터 관심 있던 건축분야에서 건축물의 이해를 돕는 해설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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