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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신아연 2014년 03월 14일 (금) 01:55:23
제 스마트 폰에서 MMS (multi-media message service) 수신을 못 받게 된 지 3주째입니다.

문의를 하니 전화기 이상인 것 같다고 하면서도 호주에서 구입한 것이라 제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를 해 줄 수 없답니다. 그렇다고 전화기만 따로 팔지는 않고 통신사에 새로 가입을 해서 플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 외엔 전화기를 바꿀 길이 없다고 하니 난감합니다.

MMS 수신 외에는 인터넷 접속이 일절 안 되는 먹통 전화기 주제에 생긴 것만 믿고 스마트한 척하더니 결국 사달이 난 겁니다.

저는 지금 매우 초조하고 불안하고 아연하고 두렵습니다.

호흡줄이자 영양줄, 소통줄이자 존재줄, 아니 총체적 생명줄이 절단된 듯한 충격입니다. 한마디로 탯줄 끊긴 태아의 심정입니다.

한국 생활 8개월째, 4.5 평 공간, 온종일 전깃불을 켜놓아야 하는,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해도 들지 않는 ‘독방 수인’인 제게, 전화기는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구인 ‘감방의 식구통’ 같은 존재입니다.

‘모태 솔로’ 노총각이 어느 날, 예의 혼자 방에 있는데 아리따운 아가씨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더랍니다. 화들짝 놀라 사방을 둘러봤지만 아가씨는커녕.., 오랜 시간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급기야 환청이 들리누나 탄식하는 찰나, 여자의 음성이 더욱더 선명하게 귓전을 때리기를, “취사를 시작합니다” 엊그제 산 압력밥솥의 작동 멘트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웃자고 한 이야기가 하나도 안 우스운 때가 있지요. 제게 이 우스개가 그렇습니다.

한국에 온 후 거의 3일 내리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못하는 상황이 일상 현실이 되었습니다. 단 식당에서 밥을 사 먹게 된다면 주문할 때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비빔밥 주세요." 이 음절이 사흘 동안 뱉은 말의 전부라는 뜻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요법 중에 말하기 치료(talking cure)가 있듯이 말을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죄수들에게 독방 감금이 가장 큰 형벌이듯이요. 이런 지경에서 저는 문자음 환청을 진짜 들을 때도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처럼 ‘독방 생활자의 수기’라도 써야 할 것 같다는 저의 ‘말고픔’의 절박함에 지인이 이렇게 대꾸해서 벌컥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 지난 3일 연짱 암말도 못했슈…“ “말하는 걸 좋아하나 봐.” “사흘 굶은 사람이 배고파 죽겠다는데 ‘먹는 걸 좋아하나 봐.’ 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언감생심 통화는 바라지도 않고 그간 친구와 지인들의 안부 문자가 외로움으로 실신 지경의 저를 매 순간 살려냈다는 것이 한 치의 가감 없는 진심입니다. ‘압력 밥솥 아가씨’에 홀린 ‘모태 솔로’처럼 문자 메시지 송신음에 목숨을 걸고 사는 제게 전화기 고장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호 통재로다!

그나마 정신이 약간 수습된 지금, ‘문자가 안 되면 전화를 하면 될 거 아냐?’ 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죄다 벙어리도 아니고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모두들 엄지손가락만 놀리냔 말입니다.

<“ 부엌에 시래기 내놓은 것, 저녁에 먹게 좀 삶아 놔라. 미리 쌀 씻어서 제때 밥도 좀 해놓고. 알았어? 그렇게 늦지는 않는다니까.”

“이제 한 정거장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추운데 바깥에 나와 있지 말고, 한 5분 늦겠다.”

“아, 글쎄 그래 봐야 소용없어, 병원을 가는 게 낫지…”

지난 한 달간 버스, 지하철, 거리 등등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꼬박 지냈습니다. 넘쳐나는 핸드폰 통화로 제 귓바퀴는 남의 말을 주워담기 바빴습니다. >


6년 전 이맘때 한국에 다니러 와서 쓴 글입니다. 그때만 해도 휴대 전화기의 주기능이 ‘말을 주고받는 것’에 있었다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찾아가서 얼굴 보고 서로 온기 나누며 할 이야기를 전화 한 통화로 ‘달랑’ 해결해 버리는 ‘인정머리 없는 세태’를 탄한 적이 엊그제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전화만 해도 여간 정성이 아닌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지간한 연락이나 안부는 모두 문자로 해 버리니까요. 문자 메시지의 효율적 기능을 모르지 않고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만 문자에 길들여지다 보니 선뜻 전화하기가 어색하고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좀 과장하자면 저는 요즘 생사의 기로에 선 느낌입니다.

MMS 보내기가 안 되는 제게 귀찮아진 지인들이 이참에 연락을 끊을 것인지, 아니면 대신 전화를 주어 ‘말 아사(餓死) 상태’에 놓인 저를 구원해 줄 것인지, 마치 미국 이야기 <노란 손수건>에 나오는 전과자처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처분’만 바라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들려달라"며 아첨을 떠는 게 고작일 뿐, 감방 식구통 문은 밖에서만 여닫을 수 있는 것처럼 외부와의 소통에 관한 한 외돌토리인 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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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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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112.XXX.XXX.157)
잘 읽었습니다. 절절함이 느껴지네요. 지금은 셀폰 원상복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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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7 09: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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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석 (112.XXX.XXX.157)
힘 내세요! 님의 글을 읽고 공감하고, 또 다른 글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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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7 0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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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46)
아, 모처럼 날씨가 온화해서 꿀벌들을 살펴야기에 남도 나들이에 대한 제안 다시 전하겠습니다~^^
꾸역꾸역 눌러 놓으셨다가 한꺼번에 쏟으시며 스트레스 날려버리세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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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10:02:46
0 0
신아연 (112.XXX.XXX.157)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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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21:05:18
0 0
김윤옥 (39.XXX.XXX.180)
지금 국내에 계시군요. 이 곳에 계시다는 말씀만으로도 괜히(?) 반가운 걸 보면 아연님은 외톨이는 분명 될 수 없겠습니다.

하루도 쉬지않고 나돌아 다니는 제자(?) 를 향해 혀를 차면서 진득하게 집안에 머물면서 생각을 다듬어 보라 충고하시던 일이 떠오릅니다.
때론 너무 많이 말하고 더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보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허당 같은 경험도 했었지요.

세상과 담 쌓은 날들이 진정 세상을 향해 따뜻한 손 흔들고 싶어지는 맘 얻게 하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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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4 22: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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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제가 그 정도 내공이 된다면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어거지로 도 닦고 있습니다. 이런 저도 반가우시다면야 저로선 감지덕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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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21: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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