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성공에는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다양한 사투리도 큰 몫을 한 것 같아요. 알다시피 표준말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원칙으로 합니다. 사투리는 그런 말이 아니라는 뜻이어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살짝 거부감이 듭니다. ‘교양 있는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호하기도 하고요. 가끔 TV 드라마에서 듣는 사투리는 가난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해서 씁쓸하게 와 닿지만, ‘원형의 소리’인지라 정겨우면서도 짙은 페이소스를 전해주는군요.

사투리는 곧잘 소설이나 시의 모티프로 활용됩니다. 김유정(‘봄봄’)과 이문구(‘관촌수필’) 같은 소설은 사투리 사용으로 향토성과 시대상이 더욱 두드러진 경우였어요. 시는 어떻습니까? 너울쪽(널빤지 쪽), 개니빠디(개 이빨), 몽둥발이(몸뚱이 밖에 안 남은 사람) 같은 북방 토속어와 사투리를 시어로 채택한 백석(‘모닥불’),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의 오탁번(‘폭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의 이정록(‘의자’) 등에서 좋은 예를 봅니다.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군(전라도)과 신라군(경상도) 사이에 오가는 걸쭉한 사투리는 웃음을 유발하고 감칠맛을 더했어요. ‘친구’에서 만년 2인자 장동건이 보스인 친구 유오성에게 쏘아 뱉는 “내가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나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가 술집 마담의 가슴골을 보며 감탄하는“살아 있네!”는 유행어가 되었지요. ‘신세계’에서 조폭 황정민이 아끼는 후배 이정재에게 시도 때도 없이 던지는 “브라더는 나만 믿으면 돼야.” 또한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일조하였고요.

토속어와 사투리를 세련되지 못하다하여 멀리할 것이 아니라 재발견하여 가꾸고 보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외연을 확대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는 데 보탬이 될 수도 있겠지요. 비가 내린 단순한 자연 현상에 대한 각 지역 사투리 간의 느낌 차이를 살펴봅니다.

“비가 왔네.”(현상에 대한 인식)
“비가 와가 있다.”(존재와 본질의 탐구)
“비가 와뿌렀다.”(결과에 대한 체념)
“왔구먼유.”(대상과의 거리두기)

사투리 중에는 ‘갓슈(죽었소)’ ‘허벌나게(매우 심하게)’ ‘단디해라(단단하고 정확히 처리해라)’ 처럼 지역 특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전국구로 쓰이는 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전라도 지방에서 사용되는 ‘거시기’가 아닐까 싶군요. 모르긴 해도 세계 언어를 통틀어 ‘거시기’처럼 광범위한 뜻으로 통용되는 단어도 없을 걸요. 영어로 ‘섬씽(something)’, 독일어로는 에트바스(etwas) 정도로 번역될 터이지만, 쓰임새의 너비와 깊이를 따져볼 때 ‘거시기’에는 ‘택(터무니)’도 없지라.

‘거시기’는 힘이 셉니다. 본디 ‘그 무엇’을 지칭하는 ‘거시기’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것’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가 짐작할만한 어떤 것이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 어떤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거시기’가 명사형으로 쓰이면 남성의 정력이나 성스러운 기물[性器, 聖器]을 뜻하지요. ‘거시기’는 경우에 따라 간투사나 접속사, 말없음표 역할에다 말을 시작하는 모두사(冒頭辭), 또는 앞의 내용 전체를 받는 특수대명사 역할을 떠맡기도 합니다.

‘거시기’는 때로 “그 모습을 보니까 거시기하네”에서 보듯 ‘짠하거나 씁쓸한’ 심기를 노출하는 정황형용사로 쓰입니다. ‘형편이 마뜩치 않거나 민망스러움’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애매하고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는 말로 천연덕스럽게 쓰인다고요. 이를테면, “일이 거시기 하니까 거시기 해서 거시기 해라.” 나가 시방 사투리에 대해 쓰면서 주로 ‘거시기’에 대해서 씅께 쪼깨 거시기하긴 하네요, 거시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