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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조차 바쁜 사회
신아연 2014년 04월 07일 (월) 04:36:11
“봄볕 완연하네요. 한국 와서 4계절을 모두 지냈습니다. 덕분에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안착하셨다니 축하합니다. 곧 한번 뵙지요. 4월 초에 연락드릴게요.”

“저 엄청 바빠요, 4월 초 안 되고 15일 넘어야 시간 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드뎌 바쁜 것이 미덕인 사회의 일원이 되었군요.^^”

“미덕 부리려고 바쁜 게 아니라 먹고 살려니까 발버둥이죠. 잘 아시면서.^^”


봄 인사 겸 지인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입니다. ‘바쁜 것이 미덕인 사회’라는 지인의 말, ‘미덕부린다’는 저의 억지 조어에 빙긋이 웃습니다. 지인은 가히 ‘바쁨의 꽃’이라 할 방송사 보도본부에서 일합니다.

저는 ‘바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컨베이어나 생산 라인이 연상됩니다.

규격화된 형식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틀에 짜 맞춰진 결과만 인정할 뿐, 어떤 개별성이나 개체성이 이죽삐죽할 기미만 포착돼도 가차없이 솎아내 버리는 일련의 과정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컨베이어 시스템에 묶여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멈추지 않는 한, 구성원으로선 한 번 올라탔다 하면 여간해선 내려올 수 없는. ‘바쁨 권하는 사회’, ‘바쁨이 미덕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바쁜 게 ‘미덕’이니 바쁘지 않으면 ‘악덕’, 나쁜 겁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으로 치자면 하자 있는 불량품 같은 거지요.

그래서 혹여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바쁘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바쁜 척, 어차피 가진 건 시간밖에 없으면서도 누가 만나자고 하면 대뜸 뜸부터 들이는 사람도 있다지요? 지금 당장 만날 수 있으면서도 바쁘게 보이려고 부러 최소 일주일 정도 뒤로 약속을 잡는다지요? 설마 그럴까 싶지만 저의 또 다른 믿을 만한 지인의 말이니 아마도 맞을 겁니다.

어느 책에서 본 ‘아무도 게으르지 않고, 아무도 부지런하지 않고, 다만 바쁠 뿐이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 말을 저는 이렇게 사유해 봅니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빗대지만 만약 달리는 도중에 넘어졌다면 게으른 탓일까. 그 긴 도상에서 어떤 사람은 한 번 아니라 두 번, 세 번도 넘어질지 모르는데 그때마다 그 사람의 게으름을 추궁해야 할까. 반대로 결승점을 향해 한 번도 실패 없이 달려간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일까.

결승점이란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지점일 뿐, 등위를 매기는 것이 단독자의 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다만 각자의 시간 속에서 완주하는 것, 그 과정 중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거나 조급해 하지 않으며 자신의 궤적, 자신의 서사를 쓰는 것, 중도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 마라톤인 거지. 게으를 것도, 부지런할 것도, 바쁠 것도 없이 그저 자기 페이스로 끝까지 가면 그만 아닌가.’

‘필요 없는 것이 끝없이 늘어나는 과정, 그것이 바로 문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 가운데 우리는 단연 앞선 ‘문명인’이라는 뜻이겠습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끝없이 소유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바빠야 하니까요. 만약 우리가 고요히 존재하며 삶의 본질에 귀 기울인다면 그렇게까지 바쁠 이유가 없을 테니, 결국 바쁜 후 찾아오는 것은 거추장스런 소유를 무겁게 걸머지는 일이겠군요.

‘어떤 사람이 자기 또래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두라.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꿔야 한단 말인가’.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의 말입니다.

이민 이후 21년 만에 서울의 봄을 맞은 저는 요즘 한창 꽃에 취해 있습니다. 그런데 1922년 기상청이 벚꽃을 관측한 이래 서울에서 3월에 벚꽃이 핀 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평년보다 13일, 지난해보다는 무려 18일 빨리 개화한 것이라는데, 그래서 여의도, 석촌호수 등 이곳 저곳에 잡혀 있는 꽃 축제에 차질이 빚어질 거라고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꽃이야 알 바 아니겠지만 여튼 우리의 바쁨의 미덕이 꽃들에게도 어필했나 봅니다. 게으른 것도, 부지런한 것도 아닌 그저 바쁘게 피어난 걸 보면요. 공연히 수선스레 서둘러 피어난 꽃들에게 헨리 데이빗 소로의 말을 빌려, 도대체 누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듯 앞당기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찌된 게 꽃조차 바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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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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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112.XXX.XXX.157)
꽃의 향기와 함께 행복한 시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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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06: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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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제집이 아파트 1층이라 베란다 밖에다 심은 복숭아 나무가 꽃을 피워 베란다가 온통 꽃밭이 되었습니다.
오늘 집안일 도와주러 온 아주머니가 돌아가려 할 때
창밖의 복숭아꽃을 자랑했더니 * 못봤다*고.
넓은 창 가득 핀꽃을 보지못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궁금해 하다가 이 글을 읽었습니다.
바쁨이 행복을 앗아가는 괴물은 아닐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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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23: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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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그 분의 여유없음이 가슴아픕니다. 그 분 뿐 아니라 노동이 우리를 이렇게 무력하게 고단하게 하는 현실, 이러다 세월 다 가버리면.. 하면서 소스라칠 때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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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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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112.XXX.XXX.157)
최근들어 더욱더 개개인의 인생에 대해 또 사회속의 한사람으로서의 삶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고민해본 한사람으로서 깊은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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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5: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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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112.XXX.XXX.157)
잘 읽었습니다. 이 글과 상관없이, 바쁘다니 좋네요. 일할 나이의 사람은 바쁜게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봄의 꽃놀이도 즐기는 여유도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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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5: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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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 (112.XXX.XXX.157)
어쩌다 보니 꽃들도 바쁜 세상이 되었군요.
그래도 개인의 마라톤에서는 순위를 매기지 않으면 바쁠 것 없겠지요. 내 페이스로 가면 되니까요. 코스조차도 저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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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5: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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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식 (112.XXX.XXX.157)
샬롬!

부활절을 2주 앞두고도 아직 기쁨과 감격에서 멀어져 있는 저 자신을 보며, 무척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본질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좌판을 벌리고 있는 무료음료수에 여기저기 융물스럽게 널려져 있는 예수초청 전단지...

매년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장면에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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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22: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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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 (112.XXX.XXX.157)
꽃조차 바쁜사회,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적절하게 한국사회를 망라했습니다. 호주의 아름다운 곳을 두고서 한국에

와 계신다구요. 저는 일생 그래도 한번은 몇년전 시드니 한번 다녀왔는데, 참으로 코알라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곳

이지요.

한국사회는 정말로 바쁜사회로 자리 매김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반발로 느림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물론 그런면도 있지만요. 저는 옛날 군대훈련 때 내 점심은 물론 내옆동료의 점심까지 짧은 시간내 다 먹어

주어서 동료가 제한 시간내 잔반 남기면 기합 받던것을 면제시켜주었는데, 이제는 점심모임에 나가면

내가 제일 늦게까지 점심을 계속하고 있어서 친구들에게 늘 나의 군대시절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냅니다.

나는 군대복무를 4년4개월 자랑스럽게 마쳤습니다. 진해에서 해군 장교로서 말입니다.

아뭏든 오늘 좋은 말씀에 찬동하여 저도 그 간 신아연씨의 글을 읽어 왔지만 붓을 약간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고재윤 경남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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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22: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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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112.XXX.XXX.157)
우리조상들은 원래 양반문화가 있어서, 여유로운 모습이었는데... 개발시대를 거치며 빨리 빨리 시대로 바뀐건가요?
참을성없는 젊은이들을 보면 걱정이됩니다.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면 좋으련만.... 요즘 시드니에는 이르기는 하지만 블루마운틴으로 단풍구경을 갑니다. 이즈음 한국에는 벗꽃이 만발하겠군요. 몇일전 지인으로부터 벗꽃과 진달래의 사진을 찍어보내왔는데, 직접 보고싶긴했지만, 그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봄꽃처럼 화사하고 이쁘며 아름다운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는 모두가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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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21: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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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武 (115.XXX.XXX.227)
요즘 초벌갈이 논 개구리 울듯이..,
한국에는 길 잃은 영혼들이 아우성이겠습니다.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꽃잎 날리는 4월의 밤을
많이 바쁘게 챙기시길 바랍니다. 제 몫도 드리겠습니다.^^


아래 글이 짝이 될 것 같아서 모셔왔습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어느 정도 달리면,
잠깐씩 멈춰서 있다가 달리고 또 달리다 멈추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이 지쳐서 쉬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힘들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을 타고 너무 빨리 달리면 자기영혼이 자기를 따라오지
못할까봐 멈추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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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20: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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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인디언들은 특별히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인가 봅니다. 이들에게서 배우는 지혜가 정말 많지요. 매월 부르는 명칭이라든가, 지금 올려주신 글처럼 일상의 삶에서 그들의 정신과 영혼의 가치 존중을 읽을 수 있지요. 아예 천성에 배여있다는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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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8: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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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전 세계의 노동과 자본을 마구 뒤섞으며 중산층 몰락을 시작으로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지만, 애초 예상했던 일이니 위정자들은 입을 다물 수 밖에요.

결국 자본의 물꼬를 터주는 게 당초 목적이었으니 허울좋은 경제지표, 지수는 올라가지만 서민생활은 허덕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약자가 약자의 적이 되고, 옆 자리 동료가 가장 미운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 좁디 좁은 닭장 속의 닭들처럼. 근본 원인은 인간의 소비형태, 더 근본 원인은 자본의 원리에 있음에도.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인데,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절망스럽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결국 자기신뢰마저 저버리는, 자기 부정과 같으니까요. 그러면 사람이 뭣 때문에 삽니까? 먹고 싸는 기계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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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8: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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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모 (210.XXX.XXX.250)
신선생님 안녕하시죠
한국에서 4계절을 다 맞이했다니 그럼 한돌이 돼간다는 말씀이네요
바쁘게 산다는게 좋고 나쁘고로 판단지어질 성격은 아닌것 같아요.
바쁜 사랍들의 분주함 덕분에 그로인한 문명의 혜택덕분에, 그렇게까지 바쁠이유가 없는 분 들도 다소나마 필요한만큼의 소유를 즐길수있는건 아닐런지요.
꽃들이 보는이조차 정신없을만큼 바쁘게 피어난걸보면 자연의 심술부림에 순진한꽃들이 잠깐속은게 아닐까요? 문제는 속았으면서도 또속고 또속고 학습효과도 못얻는게 탈이죠. 어느누가 자연앞에서 이번엔 안속을거야. 난 이따 몇일후에 필란다 하겠어요. 그랬다간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고말겠죠.
이왕 일찍핀것 지는시기는 예년과 비슷하게 지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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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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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네, 4계절 '무사히' 돌았습니다.^^ 1년 보내는 것도 참 쉽네요...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게 좋다고 하는 이유는 그 무심한 세월을, 때론 무시무시한 세월을 매순간 몸으로, 마음으로, 영혼으로 생생하게 통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세월은 일종의 마취제, 혹은 진통제 같은 것... 마치 자신의 어둡고 비겁하고 불안한 내면을 직면하는 일이 두려워 애써 피하려는 것처럼...

그래놓고는 세월 참 빠르다는 둥, 어느 새 나이를 이렇게 먹었냐는 둥, 능청을 떨지요... 그렇지 않으면 또 어쩔 건데, 라고 한다면 저도 할 말이 없지요.^^ 그렇게 자신에게 속고 자신을 속이며 사는 게 인생이니까요, 괜히 잘난 척 하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것 보단 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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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8 08: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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