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위험한 ‘사무라이’ 향수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황경춘 오솔길

일본인의 위험한 ‘사무라이’ 향수

황경춘

2014년 04월 21일 (월) 03:55:42

1868년의 이른바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이 개국할 때까지의 265년 동안, 이 작은 섬나라는 소수의 봉건주의 무인(武人)에 의하여 통치되었습니다. 약 260여 명의 ‘다이묘(大名)’라 불리는 영주(領主)가 전 인구 5% 내외의 무사계급을 앞세워 무단(武斷) 정치를 실시했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계급의 엄격한 차별제도가 1870년 새 호적법의 제정으로 화족(華族)ㆍ사족(士族)ㆍ평민(平民)으로 개편되고, 이때까지 성(姓)이 없었던 평민에게 성이 처음으로 허락되었습니다. 이 호적제도는 일본의 패전으로 시작된 연합군 군정 치하의 1947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일본이 1895-96년의 청일전쟁(淸日戰爭)에 승리하고 아시아 대륙에 식민주의 야욕을 뻗치게 되자 신흥 일본국에 대한 서방 열강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 기운을 틈타, 1900년 일본의 유능한 관리이며 교육자였던 니토베 이나조(新戶部稻造) 박사가 ‘Bushido: The Soul of Japan(武士道: 일본의 혼)’이란 책을 미국에서 발간하였습니다.

크리스천인 니토베 박사는 이 책으로 ‘사무라이’의 무사도정신을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소개하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두 대통령을 비롯하여 미국의 많은 유명인사가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곧 프랑스어, 독일어 등 외국어로도 번역되었습니다.

1908년에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 국내에도 소개되고, 중국대륙에서 일본군의 전쟁이 계속되던 1938년에 다시 출판되고 내용 일부는 교과서에 채택되었습니다. 원래 ‘무사도’라는 체계 있는 학문이 일본에 있었던 것은 아닌데, 미국 여자와 결혼한 니토베 박사는 ‘사무라이’정신의 좋은 점을 요령 있게 체계화하여, ‘하라키리(切腹)’ ‘게이샤(藝者)’ ‘후지상(富士山)’ 등만 알았던 서방세계에 일본을 새롭게 소개한 것입니다.

명치유신 전의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 시대에는 ‘사무라이’정신에 관한 이런 체계적인 연구는 없었습니다. 사가(佐賀)나 가고시마(鹿兒島) 같은 전통 있는 ‘항(藩)에는 ‘하가쿠레(葉隱)’나 ‘조시칸(造士館)’ 같은 독특한 무사도를 위한 교육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유명한 검객(劍客)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오륜서(五倫書)‘ 등의 저작(著作)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무라이’는 ‘묘지타이토(苗字帶刀)의 특권, 즉 이름 성자(姓字)를 가지고 두 개의 칼을 허리에 차고 다니는 것이 허락되는 소수 특권계급이었습니다. 이들 특징을 대변하는 속담이 두 개 있습니다. 그 하나는 ’부시와 구와네도 다카요지(사무라이는 밥을 굶어도 당당히 이쑤시개를 쓴다)‘이고 다른 하나는 ‘요라바 기루조(가까이 오면 자른다)’입니다.

앞의 것은 그들의 청빈한 정신을 표현하는 속담으로 ‘사무라이’의 충성심이나 성실성 등과 더불어 그들을 존경할 때 씁니다. 다음 것은 요즘에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郞) 등 국수주의자가 가끔 정부의 중국에 대한 외교 태도를 미온적이라 질타하며, 가지고 있는 무기를 왜 무용지물로 만드느냐고 비판할 때 사용합니다. ‘사무라이’에게는 ‘기리스테 고멩(斬捨御免)’이라는 특권이 있어, 불손한 평민을 칼로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는 지금 이 ‘사무라이’를 그리워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는 듯해 불안합니다. 일본 국가대표 축구팀의 애칭은 ‘사무라이 닛퐁'으로, 같은 애칭은 야구 국가대표 팀에게도 쓰고, 언론계 일부도 이 호칭을 사용합니다. 야구 국민 영웅 ’이치로‘가 ’사무라이 닛퐁‘을 대표하는 선수입니다.

일장기 군기에 대한 향수, ‘조센진 죽여라’는 혐한(嫌韓) 시위대원, 축구 경기장에서 보인 "Japanese Only (일본인끼리만)‘이라는 현수막 -- 이런 현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청일전쟁 때의 시민에 대한 난징(南京)대학살을 전쟁 수행에 따른 부수적 결과라 강변하고, 여자정신대원 일부의 위안부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고 우기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과거 ’사무라이‘의 깍듯한 예절과는 거리가 먼 행위입니다.

우리의 ‘춘향전’과 같이 명절에 맞추어 몇 년에 한 번씩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 그때마다 화제를 모으는 소재가 일본에도 있습니다. ‘추신구라(忠臣藏)’라는 이 작품은 억울한 사유로 폐가처분을 받고 죽음을 당한 성주(城主)의 원수를 천신만고 끝에 2년 뒤 갚고, ‘셋푸쿠(切腹)’의 형으로 장렬하게 세상을 떠난 47인의 낭인(浪人) 실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나 연극을 보는 많은 일본 노인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는 토양에서, 정부의 고관이 우리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니 ‘범죄자’라고 혹평하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정권입니다. ‘사무라이’ 시대에는 유족 존속(尊屬)에 의한 복수(復讐)를 합법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왔습니다. 주군을 위한 순사(殉死) 풍습은 명치천황의 서거 때까지 있었습니다.

일본 패전 후 권총이나 할복자살을 한 군인이나 시민이 있었던 것을 감안해, 연합국 군정은 외국에 ‘하라키리’로 알려진 이 할복이나 복수 전통 등 ‘사무라이’ 무사도의 부정적 전통을 금지하고, ‘추신구라’ 등 이야기도 교과서에서 삭제했습니다. 물론 주권을 회복한 뒤 일본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런 예술작품은 복원시켰습니다.

일본인이 하면 미담(美談)이고, 한국인이 하면 테러리스트 범행이 되는 이중 잣대를 사용하는 일본 지도자들의 그릇된 역사인식이 양국 간의 화해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명치유신을 배경으로 한 1931년 영화 ‘사무라이 닛퐁’의 주제가를 유명한 교수 출신 시인 ‘사이조 야소(西條八十)’가 만들었습니다. 첫 구절이 ‘사람을 베는 것이 사무라이인데, 사랑의 미련은 왜 베지 못하나...’로 시작됩니다. 당시의 히트곡인 이 노래가 지금도 인터넷에 올라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은 어떤 향수(鄕愁)를 그리워하는 걸까요.

이형균 (110.XXX.XXX.49)

무사도에 관한 대선배님의 정곡을 찌르는 분석은 저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일본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것 같은 간결한 정리를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합니다. 항상 교훈적인 글을 쓰시는 대선배님께 무한한 존경심을 표합니다.

답변달기 ▼

2014-04-28 14:24:35

0		0

한승국 (114.XXX.XXX.24)

오늘도 일본을 배우는, 일본인을 알게 하는, 일본인에 대한 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

2014-04-22 11:31:03

0		0

오솔길 (114.XXX.XXX.24)

도움말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

2014-04-22 11:32:45

0		0

UTOPCO (117.XXX.XXX.92)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신 명문입니다. 쭉 읽다보면 우리의 주적이 일본이여야 되는데 왜 우리는 우리 동포를 주적이라고 개 거품 물고 그들 정신을 추종하는 자들이 우리의 주력이 되어 있는지 참 우습습니다.

답변달기 ▼

2014-04-21 19:17:20

1		0

玄武 (115.XXX.XXX.101)

참 고약한 이웃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워서 그런지 우리도
정도의 차이지 닮은 점들이 있습니다.

작은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 힘 못쓰는 것도 한스럽거늘 영구집권하려고
동서로 가른, 탐욕스런 원흉 늙은이가 다시 등용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요.
초원 복 집에서 ‘우리가 남이가’ 망국적 지역감정 조장한 아주 패 죽일 인간 말입니다.
요즘 귀신들은 뭘 먹고 사나 몰라요. 자식이 먼저 죽을지도 모르도록 명을 길게 주다니.

답변달기 ▼

2014-04-21 14:30:33

1		0

정달호 (110.XXX.XXX.102)

오늘 자 선생님의 글 중 후반부 넘어서 난징학살 나오는 대목에
'청일전쟁 시' 는 '중일전쟁 시'의 오타가 아닌가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답변달기 ▼

2014-04-21 12:04:56

0		0

오솔길 (110.XXX.XXX.102)

대사님이 지적하신 것 맞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때 일입니다.

답변달기 ▼

2014-04-21 12:07:00

0		0

libero (110.XXX.XXX.70)

일본 극우파 청년들이 욱일승천기와 함께 나치 깃발을 흔들며 시위하는 모습이 보도되었습니다. 그런 망나니들에 기대어 정권을 잡은 아베, 언젠가 역사가 바른 평가를 내려 주겠지요.

답변달기 ▼

2014-04-21 10:47:00

0		0

오솔길 (110.XXX.XXX.102)

저도 그 사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네 일기' 책을 도서관에서
찢을 때 걱정했던 일입니다. 그 데모 날이 히틀러 생일이라니, 참...

답변달기 ▼

2014-04-21 11:52:35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