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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인큐베이터
신아연 2014년 05월 15일 (목) 01:15:43
서정주 시인의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라고 시작하는 시, <자화상>에는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스승의 날인 오늘 느닷없이 이 시구가 떠오르며 ‘에미는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스승이었다’며 옛적 내 처지를 슬쩍 대입해 읊조려 봅니다.

아버지 없는 집안의 4남매 중 막내, 휘어질 듯 깡마르고 푯대처럼 키만 껑충하달 뿐 존재감 없던 저를 귀히 여기고 보살펴 준 곳은 학교이자 선생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처럼 일하느라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외롭고 우울했던 날들, 그런 저를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꼭 스물 세 해를 선생님들이 따스하게 품어주며 길러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 일이지, 가난한 데다 ‘빨갱이 가족’이기까지 하니 이래저래 치이고 주눅들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나마 기를 펼 수 있게 해 주신 선생님들이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습니다. 가정에서 챙겨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듬어 주고 성장시키는 인큐베이터, 박완서의 소설 제목처럼 ‘꿈꾸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는 곳이 학교라는 것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겐 큰 행운입니다.

1년 내 담임 선생님 얼굴 한번 보러 오지 못하는 어머니, 더 정확히는 촌지 한 번 쥐어줄 수 없는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내내 방과 후 청소를 해야 했던 기억 (그때는 선생님이 왜 나만 맨날 청소를 시키는지 몰랐지만)말고는 선생님들과 얽힌 추억 대부분이 따스하고 더러는 빛나다 못해 황홀한 걸 보면 어쩌면 저는 8할의 은혜를 넘어 총애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담에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를 포함한 2할의 아이들을 편애하면서 나머지 8할에 대해선 냉담하다 못해 학대에 가깝던 선생님들의 이중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지만 그게 진짜 이유였는지 확신은 못합니다.

관악산 자락 유명한 달동네였던 ‘난곡’의 8할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제게는 급우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은 끼니를 걱정하거나 육성회비를 못 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너무나 가난했던 달동네 아이들은 육성회비가 밀리기 일쑤라 돌아가며 교단 앞에 불려 나와 선생님에게 뺨을 맞곤 했습니다. 그 친구들의 상한 자존감과 수치심, 부서진 영혼의 파편이 내 안에 고스란히 박히면서 귀 막고 눈 가리고 싶던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식구들의 저녁 한 끼 수제비를 끓일 밀가루 값 70원을 잃어버리고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가던 급우도 있었고, 끝내 육성회비를 못 내서 학교를 그만둔 친구를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목욕탕 때밀이’가 된 같은 반의 한 아이는 동네 목욕탕에서 나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막무가내로 돌아앉힌 채 등을 밀어주었는데, 돌아앉아 있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 친구에게 눈물을 보일 뻔했던 일이 지금도 안 잊힙니다.

상처로 남아 있는 가슴 저린 단상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과 친구의 뺨을 무시로 갈겨대던 손이 ‘같은 선생님의 손’이라는 것이 몹시도 당황스럽고 죄스럽고, 무엇보다 혼란스러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품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여전히 제게 고마운 분들, 반듯하게 저를 키운 8할이었습니다.

세상은 변했고, 학부모도 학생도 선생님의 존재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언감생심 ‘스승과 제자’간의 공경심은 고사하고 ‘교사와 학생’간의 기본 예의조차 위태로운 지경이니 ‘스승의 날’의 존재 의의에 대해 선생님들의 자조적 한탄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자칫 세상과 사회의 ‘미숙아’에 처해질 아이들은 늘어만 갑니다. 제게 그랬듯이 어린 것들이 본래 모습대로 성장해 갈 수 있는 학교와 선생님이라는 ‘인큐베이터’는 여전히 절실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들은 무력하고 나약한 아이들을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한 사람의 성인으로 새롭게 빚어내는 연금술사이자, 사랑과 관심으로 어린 영혼들과 교감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토양입니다.

어릴 적 저처럼 ‘정서적 생존’을 갈구하는 우리 아이들은 곳곳에 너무나 많습니다. 선생님들의 사명과 역할은 어쩌면 지금이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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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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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영 (220.XXX.XXX.98)
사실 이번에 '이 정도로 나라가 형편이 없나...제 구실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빈 껍데기만 있는건가...'하는 참담한 심정였습니다. 하지만 어제 교육감 선거 결과를 보니 그래도 변화에 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제발 교내 폭력, 암기위주의 교육만이라도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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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5 21:20:29
0 0
윤민중 (112.XXX.XXX.157)
신 선생님의 글을 자주 읽는 사람입니다. 이번 글은 저의 어린시절(1953~1974)과 꽤 유사한 선생의 스승에 대한 감사와 연민의 추억이 감동적입니다. 선생의 글을 빌리자면 저는 "아버지 없고 찌들게 가난하기까지 한 집안의 막내, 초중등학교 내내 어머니가 학교 방문 한번도 못하여 존재감 없던 저를 귀히 여기고 보살펴 준 곳은 학교이자 선생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처럼 일하느라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외롭고 우울했던 날들, 그런 저를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아니 대학원까지 꼭 스므해를 선생님들이 따스하게 품어주며 길러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스승님들 덕으로 현재 대학 선생이 되었습니다. 6-70년대 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곳이 학교와 선생님이라는 ‘인큐베이터’이었는데 갈 수록 그러한 인큐베이터 기능이 거의 작동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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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06:18:49
1 0
남철희 (112.XXX.XXX.157)
누구나 결점은 있습니다.왜 선생님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자처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선생님은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입니다.존경과 감사로 선생님들의 기를 살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선순환이 교육계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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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06:24:59
0 0
김윤옥 (39.XXX.XXX.180)
어렸을 적 페스탈로찌를 배웠을 때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나름의 판단으로 존경하고싶은 선생님과 아닌 선생님을 만났다
그러고 보면 어리다고 전혀 판단 능력이 없거나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 초등학교 2 학년인 손녀가 가끔 선생님께서 말썽쟁이 친구를 심하게 야단 치신다고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 마음에 상처로 남을 체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지게 된다.
급기야 그 말썽쟁이 아이의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 가만있지 않겠다' 고 했다니 이제는 더 이상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선 아니되는 신성한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누구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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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22:28:03
2 0
신아연 (112.XXX.XXX.157)
선생님과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이 결국 학생이니까요. 아무리 어리다 해도, 아니 어릴수록 더 본능적으로 파악이 되는 거겠지요. 이번 글 나가고 몇 분들하고 말씀을 나누면서, '사랑의 매는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맞아보면 안다는 거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이 더 잘 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나서서 교사들을 '응징(?)'하는 행태는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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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06:21:57
1 0
사막여우 (112.XXX.XXX.157)
세상은 원래 이런가요? 불공평하네요.
저는 선생님들에게 사랑 받기는 커녕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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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7 01:35:36
0 0
송봉현 (112.XXX.XXX.157)
귀국하여 활동 중이라니 반갑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용공>이란 용어를 창안하여

특정세력들이 재미 보더니

한 시대가 바뀌고 <종북>이란 말을 만들어

몰아쳐 먹혀들었습니다. 그 말도 이젠

약효가 떨어져 갈겁니다.



유신 불법에 의한 형벌에 대하여 재심청구를 하여

무죄 확정이 나오던데 ...



문제는 분단 상황인데 국력으로나 인구로나 우리가

형제애로 보듬을 수 있는 우월한 상황임에도

이명박정부 때 부터 비틀더니 영판 큰 가슴이 보이지 않네뇨.

금년에도 외국원조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고 과시 하던데

북한의 어려움을 도우면 '퍼주기'로 몰아가는

언론행태도 통일의 길을 옭아매는 퇴행으로 보입니다.

주변국을 돌아보면 평화통일이 급선무인데 통치철학이 있는건지 답답합니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좋아지겠죠.

사랑을 담은 따뜻한 건필을 기원합니다.



송 봉 현 시인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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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6 07:35:11
1 0
이영재 (112.XXX.XXX.157)
글을 읽는데 가슴이 아프네요. 그땐 왜그리 나쁜 선생님이 많았는지...선생님에게 귀염받던 학생이라 그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일들이 이젠 우리시대 아픔의 단상들이었음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글이 참 공감이 가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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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6 07:31:30
0 0
권태익 (112.XXX.XXX.157)
진솔한 글입니다. 비전을 주는 선생님들을 못 만났던 학창시절이 아쉬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LA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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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6 07:30:39
0 0
시드니 맨 (112.XXX.XXX.157)
그렇게 많은 선생님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물론 공부는 잘하셨을거고 또한 성품이 여리고 착하고 등등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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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22: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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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이번 스승의 날은 그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세월호 사건이 주는 교훈으로 인해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되는가 봅니다. 아이들은 죄가 없고 백성은 죄가 없는 법인데 지도자를 잘못 만나고, 보호자를 잘못 만나면 오롯이 피해를 보게 되는 힘없는 존재일 뿐인데, 그럼에도 국가나 미래의 주체는 우리 2세들이고 백성, 민중, 국민일 수 밖에 없지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의식은 그래서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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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6 08:32:20
2 0
블루벨 (203.XXX.XXX.189)
팔할과 이할............. 왜 저하고는 반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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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15:55:42
0 0
이준섭 (203.XXX.XXX.185)
선생님 예찬론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 건필 빌면서

이준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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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15:24:03
0 0
玄武 (115.XXX.XXX.138)
그럼 나는 누가 키웠나?
신 선생님 글이 그렇게 묻습니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참 좋네여~ 그런데 바람이 키워서 그렇게 쉬이 흔들렸는가?
늘그막에 무슨 영광을 보자고 살인자 두환 이를 찬양하다니.
바람이 키운 사람들이 글쟁이 중에 유난히 많은듯합니다.


현제 대표적인 인물이 이문열 작가가 되겠고
우기 때면 제가 즐겨 읊는 시인도..,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신 선생님 글을 읽노라면 숨이 갚아 옵니다.
그래서 한숨 돌리려고 쉰 소리로 시작을 했습니다.^^




특히나 아래 글
(세월호가 세월 속에 가라앉지 않으려면)
저의 속내를 모조리 들어 낸 것 같아서.
더욱이나 숨쉬기가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침잠해 봅니다.
도대체 이렇게 퍼내도 괜찮을까?
작가 자신의 마음속 우물 속으로 얼마나
깊이 잠수해서 건져 올려야 하는가?


이렇게 힘겹게 퍼내시고도
정작 본인은 괜찮은 것일까?
일없이 처다 본 내가 이리 힘이 드는데..,


여기저기 주어들은 숫자 몇 개 늘어놓고, 이어서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본질은 외면하고 물 타기한 댓가로 던져주는 뼈다귀에 영혼을 파는
머저리들이 엄연히 칼럼니스트라고 존재하는 세상이라서가
아니래도, 내 속까지 들춰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글이
얼마나 저를 당황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저도 한번 파 보겠습니다.
언젠가 신 선생님처럼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저는 논두렁 밭두렁이 선생이었기에 좀 늦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논, 밭두렁은 비바람과 태풍에도 어디로 가지 못합니다.
내가 그곳에 소먹이 쑥이 되건, 아니면 민들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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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12:35:38
2 0
신아연 (112.XXX.XXX.157)
선생님의 댓글로 저야말로 정신이 번쩍 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맑고 밝고 바를 수 있나 해서요. 그저 지나간 일일 뿐입니다. 따뜻했건 시렸건, 기뻤건, 슬펐건 한 인간의 역사이자 한 시대의 한 조각 단상입니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 것, 보잘것 없는 몸뚱이하나 이 세상에 있게 한 시간의 겹 속에서 끄집어 내어 한번 볕을 쏘이게 한 기억일 뿐입니다.

글을 쓴다는 빌미로 재미로, 심심해서 한번 씩 그래보는 겁니다.^^ 별 일 아닙니다. 따라서 너무 과분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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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6 08:38:05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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