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서글픈 지하철의 초상
신아연 2014년 05월 28일 (수) 00:30:43
“아주머니, 이거 하나만 팔아 주세요.”

“지난 겨울에 샀잖아요.”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제가 늘 타고 내리는 곳입니다. 한쪽 다리를 절고 사시가 심해 어디를 보는지 몰라 오히려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는 60대 초반 아저씨를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저씨는 한 개에 3천원짜리 옷솔을 팝니다. 옷솔로 손질할 변변한 옷이 없어서인지, 옷솔이 변변치 않아서인지 작년에 산 빨간 옷솔을 옷장 위에 그냥 올려 두었는데 오늘 또 사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나 같이 ‘예쁘고 착한’ 각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젠 얼굴도 기억 못하는 걸 보니 아마도 그때 어떻게든 옷솔을 팔려고 ‘립 서비스’를 했나 봅니다. 지금 생각하니 성희롱입니다.^^

“열차 안에서 팔지 그러세요? “

“원래 못 팔게 되어 있어요. 걸리면 쫓겨 나요.”

“그래도 다들 하잖아요.”

“....................”

연방연방 들어오고 나가는 열차로 부산하기만 한 승강장에서 제 갈길 바쁜 사람을 붙잡고 물건을 파는 게 안쓰럽지만 그렇게밖에 못하는 본인의 사정이 있을 테지요.

“오늘 하나도 못 팔았어요…”

어린애처럼 아저씨는 울상을 짓지만 저라고 별 수 있나요? 원래도 필요 없었던 옷솔을 또 살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지하철에서 이따금 뭘 삽니다. 딱히 그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나름의 방편인데, 물건을 매개로 옆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잠깐이나마 상인들의 ‘애환’도 듣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제가 먼저 물건을 사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관심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몇 번 그런 걸 가지고 오지랖 넓은 착각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상인들의 과장된 말이 아니더라도 지하철 물건은 공통적으로 싸다는 것 말고 특허를 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천태만상 아이디어가 반짝입니다.

미니 봉을 중심으로 마치 우산살처럼 드라이브, 펜치 등을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으면서 봉의 꽁무니에는 불이 들어와 어두운 곳에서도 쓸 수 있게 만든 휴대용 공구를 비롯해서, 돋보기가 필요 없는 ‘실 꿰는 강아지’, 감쪽같이 접히는 야외용 모자, 버튼을 누르면 ‘철커덕’하고 결의 방향이 바뀌는 제가 산 옷솔, 최근에는 작은 스테이플러 크기의 손 재봉틀도 선보였습니다.

러시아워가 지난 할랑한 공간, 예의 스마트 폰에 코 박고 있는 사람들 빼고는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도 메울 겸, 때에 따라 재미있기도 한 지하철 상행위가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방해는커녕 ‘지하철 쇼핑’을 잘만 활용하면 한 칸에 탄 사람들끼리 왁자하니 웃고 떠들며 잠시 잠깐 공동체가 회복되는 기미를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저같이 좀 엉뚱한 사람이 좀 엉뚱한 역할을 시험적으로 해주기만 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귀신같이’ 알고 방송이 나옵니다. ‘옷솔 아저씨’ 말대로 ‘불법 행위’ 운운하는 내용입니다. 기관사나 승무원이 모니터로 확인 했을 수도 있겠지만,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는데도 혹 누군가 전화로 고자질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방송이 나오기 무섭게 서둘러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 상인의 뒷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당사자라도 되는 양 무안하고 무참한 기분이 듭니다.

‘지하철 물건’을 요모조모 살피다 보면 이렇듯 창의적인 상품을 만들면서 소위 ‘대박’의 기대에 부풀었을 제조업자가 생각나 다시금 마음이 짠해집니다. ‘잡상인’의 손에서 헐값에 팔릴 거라면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요.

물건 자체의 운명도 기구하고, 만든 사람도 안됐고, 이리저리 쫓기며 팔러 다니는 사람도 못할 짓이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불쌍한 존재인데 꼭 그렇게 비참한 기분을 들게 해야 할까 싶어 속이 상합니다. 그 사람도 한 집안의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일 텐데 아무리 불법이라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주고 깔봐도 되는가 말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기분이 울적해 있는데 또 방송이 나옵니다.

“지금 어느 칸에서 싸움이 붙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되도록 화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의 승무원 얼굴이 그대로 밴 듯한 어눌한 멘트에 승객들의 웃음이 터졌습니다. 일순 우울했던 마음이 씻깁니다.

싸하고, 아리고, 공연히 눈물이 맵게 징 솟는 지하철의 서글픈 초상입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4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유선경 (115.XXX.XXX.249)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지하철에서의 상행위는 명백히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가 아닐까요? 제가 지불한 지하철 요금에는 단순히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 외에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금액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공간을 침범하는 사람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쩍벌남들이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들을 열차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결코 무안을 주거나 깔보는 행위가 아니지요.
답변달기
2014-06-12 16:51:18
0 0
서소영 (220.XXX.XXX.98)
ㅎㅎ 정말 재미있네요! 서울 가야 경험하는 것이 바로 '뚜벅이'입니다~

자연히 지하철을 애용해야 하는데 정말 신기한 것이 많아 보입니다만 보통 하루에 두 서너 개의 만남을 소화하다 보니 ㅎㅎ 지하철 안에서도 뛰어다녀야 해요. 그래서 자세히는 못 보았어요.

또하나, 이젠 정말 서울은 '남의 도시'였습니다. 서울 구경온 시골 영감의 마음 같더라구요...아침 조간 신문의 기사에 나온 낱말들도 무척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면서 '한국어'가 갑자기 두려워 졌어요!
답변달기
2014-06-05 21:08:35
0 0
김수희 (112.XXX.XXX.157)
그립네요... 마음이 아리기도하구요..
답변달기
2014-06-02 06:18:23
0 0
그미 (112.XXX.XXX.157)
전용대목사님께서 시드니 오셨을때 했던 말씀이 생각나요~ "한국에서 장애자로 살아간다는것은 쉽지않다..." 특히나 장애우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국가에서 철저하게 완벽하리만치 보호해야되지않을까요?
답변달기
2014-05-30 22:14:20
0 0
신홍균 (112.XXX.XXX.157)
안녕하세요? 혹시 NSI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라고 아시나요? 저는 그곳에서 3기 대학생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했었던 신홍균이라고 합니다.

그 기회로 신아연 칼럼을 계속해서 메일로 받아 읽고 있습니다.

항상 신아연님의 칼럼을 잘 읽고 있는데,
이번 신아연 님의 글이 참 공감되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저도 대학생이자 현재 인턴으로서
일주일에 5일 이상은 무조건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어느 샌가부터 어렸을 때는 자주 봤던 '만득이'장난감 잡상인이나
각종 맥가이버칼 등의 잡상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고생하시며 힘들게 사시는 분들인데
그런 분의 생계를 막아버리는 지하철 회사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05-30 22:12:45
0 0
이상두 (112.XXX.XXX.157)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치 그 장면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답변달기
2014-05-30 07:40:04
0 0
남호정 (112.XXX.XXX.157)
연민이 느껴지네요. 우리 애 아빠는 밖에만 나가면 길에서 각종 알람시계 장난감 옷솔 싸구려 벨트같은 걸 늘 사가지고 다니는데, 장사하는 분들이 아주 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과 비슷해서 그렇다고, 잔소리하는 저에게 털어놓더군요
그러다보니 저도 요즘 길이나 도로에서 뭘 잘 산답니다. 할머니들이 종일 앉아 파는 푸성귀 한줌도 사보고요 ..어휴 눈물날려하네요...
답변달기
2014-05-29 17:11:03
1 0
양예슬 (112.XXX.XXX.157)
슬퍼요, 조국의 현실이.... 그냥
답변달기
2014-05-29 16:15:38
0 0
시드니 맨 (112.XXX.XXX.157)
상인의 애환도 듣고 옆사람 하고도 이야기하는...그런 따뜻한 분이셨군요. 국가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책임지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기업을 위해서는 세금을 내리고 규제는 완화하고 국가가 충성을 다하는 모습인데,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살아갈수없는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강한지요? 작가님께서 오랫동안 사셨던 호주는 그걸하기때문에 선진국이잖아요... 보고 느끼고 아시는 작가님은 답답하시겠네요.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05-29 05:15:50
1 0
이영재 (112.XXX.XXX.157)
애환을 신아연씨 특유의 유머로 풀어썼네요.
답변달기
2014-05-28 20:55:33
0 0
길혜주 (112.XXX.XXX.157)
지하철 풍경이 눈앞에 고스란히 보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답변달기
2014-05-28 20:54:43
0 0
김미경 (112.XXX.XXX.157)
마음 따뜻해 지는 글 좋네요.
답변달기
2014-05-28 20:53:28
0 0
고승효 (112.XXX.XXX.157)
다중이 이용하는 장소에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공중도덕과 예의를 지킴으로서 서로간 평화와 질서를 지킬 수가 있지요 게중에는 어느 한사랑에게는 추억이 되고 미담이 되는 행위가 된다고 해서 그것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곧 질서와 평화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최소한 길거리 예절이 일탈되는 상황에 대한 무반응은 소극적 저항이기도 하고 소시민이 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사표현이어야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꿀떡 같아도 지하철에서는 왠만해선 구매 않합니다. 무관심 무반응 저는 지하철이 많이 시민들이 평화, 평온속에 책을 읽으며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답변달기
2014-05-28 20:49:02
1 0
수선화 (112.XXX.XXX.157)
선진국이라고 하면서, 벌어지는 모습은 왜 후진국형일까요? 선진국 맞아요?
답변달기
2014-05-28 20:47:42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