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디자인 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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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디자인 꿈나무

안진의

2014년 06월 16일 (월) 00:53:03

며칠 전 어느 디자인 전람회의 심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을 끈 것은 초등부 학생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이 일상을 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루게 되는 학습화된 주제와 고정화된 표현방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렸을 때는 반공 포스터였던 것이 지금은 통일안보 포스터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너무나 오래된 주제인 데다 그간 많은 작업들이 이루어져서인지 독창적 표현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금연이나 불조심 포스터도 마찬가지이고 오래된 캠페인성 주제의 시각작품들은 진부해져갑니다. 공교육으로서의 주제와 자율적 예술표현의 주제는 분리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시각 작품을 보면 이 시대 아이들의 관심사를 읽어 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많이 나오는 주제는 왕따를 비롯한 학교폭력, 게임과 스마트폰 중독, 불량식품, 성형수술 등이고, 예나 지금이나 로봇을 등장시켜 삶의 편리함을 희망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사람이 지시하지 않아도 아예 기분을 알아채고 행동해주는 로봇과 같이 말입니다.

아이들은 아예 발명가가 되어 상상 이상의 즐거움을 줍니다. 동생이 장난감을 빨면 환경호르몬이 나와 몸에 안 좋으니까 입에 대면 쓴맛이 나는 장난감을 디자인한다거나, 위험한 횡단보도에는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애벌레 모양 차단막이 만들어진다거나, 가방에 자동 우산장치가 내착되어 엄마가 오지 않아도 비를 맞지 않게 해준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쓴 약을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포장디자인을 재밌게 한다거나, 골절 등으로 깁스를 할 때 갑갑하고 삭막해 보이지 않도록 아름답게 디자인한다거나, 몸에 열이 나면 입는 해열 조끼와 해열 모자도 개발합니다. 뜨거운 컵라면을 먹을 때 혀를 데지 않도록 컵 선풍기를 만든다거나,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녹는 것까지도 먹을 수 있도록 깔때기 모양 받침을 만든다는 것도 있습니다.

비가 올 때 운동화가 젖지 않도록 운동화 비옷을 제작한다거나, 운전을 할 때 쓰는 내비게이션 안경, 검은색 벼루가 아니라 다양한 컬러와 패턴으로 즐겁게 작업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벼루, 음료수 캔의 모양이 원통이 아니라 하트모양이어서 사랑스런 디자인도 있습니다. 각 티슈통의 경우 사용 후 남은 양이 얼마나 되는지 측면을 투명 비닐로 제작하여 실용성을 높이는 것도 있습니다.

디자인 꿈나무들의 희망과 도전의 일기를 보는 기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회의 심사에서 늘 벽에 부딪히는 것은 과연 아이들만의 실력인지, 염려와 걱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평가의 항목들은 대개 창의성, 실용성, 독창성, 심미성 등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약속은 진정성이라는 측면입니다. 모방과 표절, 본인이 작업한 것이 아닌 것을 출품한다면 그것은 좋은 디자이너의 자질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의 감성과 인성이 모두 담깁니다. 디자인도 생명과 같아서 실제로 우리가 좋은 디자인을 보면서 감흥을 받는 것은 그 디자인이 작가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가 되어 물건을 만드는 것은 사용자의 경험과 욕구를 반영하고 사용자와 소통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용자와 소통을 하는 데 진정성이 없다면 디자인은 사용자와 거짓 대화를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디자인은 사람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성취하는 기쁨을 갖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모와 선생님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진정성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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