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오마리 구름따라
     
깨어진 삽
오마리 2014년 07월 11일 (금) 07:39:48
며칠 전 삽질을 하던 중 13년 동안 써오던 삽날이 마침내 쪼개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삽 가운데가 옆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작년에는 더욱 깊게 파였지만 버리지를 못했습니다.
어떤 삽은 크기와 무게 때문에 영 내 손과 몸에 맞질 않고 힘들었는데 우연히 샀던 이 삽만큼 편한 것이 없었습니다. 마치 내 수족처럼 부리던 것을 버리려니 웬일인지 허무하고 쓸쓸하여 올해도 계속 그 삽으로 정원 일을 했던 것입니다. 금년에는 뜻하지 않게 성치 않게 된 왼쪽 다리 때문에 정원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른쪽 다리로 삽질을 해왔는데 결국 이 삽이 완전히 갈라져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슴에 휭 하고 바람이 불어 사진을 찍어두기로 했습니다.

   

이 쪼개져버린 삽으로 몇 십만 삽질을 했는지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원이 없던 덩그런 집으로 세 번의 이사와 세 번의 정원 디자인을 하고 내 손으로 꽃나무와 화초들을 심었습니다. 그러니 이 삽은 나의 캐나다 생활의 표상과 같습니다. 정원 일을 함으로써 유일하게 정신적 위안을 받았으니 상당한 의미가 있지요. 캐나다 이주 후 일 년 만에 암에 걸려 수술과 치료 후유증으로 생긴 손가락 장애를 이겨내는 동안 깊어진 우울증을 조금씩 걷어 내게 된 것은 정원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일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다사했던 가정사로 우울증이 한층 심하여질 때 꽃들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정원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 힐링 장소였습니다. 유년기와 평창동 집 지은 후 꽃모종 삽이나 만졌던 내가 경험이 전혀 없는 삽질도 어려웠고 흙 한 포대를 들 수 없어 낑낑대야 했던 정원 일은 막노동이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처럼 키우고 정성을 다하면 피어나는 꽃들이 가족이나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보상해주었으니 내 몸에 꼭 맞는 삽이 더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아파 면장갑을 낀 그 위에 커다란 고무장갑을 덧끼고 그렇게 13년 동안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매해 이 삽과 더불어 정원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정원 일도 고달파서 작년 같지 않습니다. 서너 시간 정원 일을 하고 나면 그 다음 날까지 끙끙 앓는 것이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쩌면 나와 함께 고락을 같이해왔던 이 삽도 내 몸을 알고 ‘주인이여 이제 고만 쉬시오’ 라는 뜻으로 깨졌는지도 모릅니다. 곧 정원과의 작별을 할 때가 다가오기에 삽이 미리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제 내가 정원에 대해선 상당히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꽃들과 나무들의 생태, 토질과 물 그리고 정원 디자인(landscape design)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생겼으니까요. 내 전공 용어와 영어 단어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오히려 꽃들의 이름과 정원일 용어들은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하긴 13년간 정원에 매달려 살았으면 그 또한 정원 전문가라고도 할 만하지 않나, 좀 더 내가 젊었더라면 차라리 정원 디자인 직업인으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이제 만으로 33세가 된 막내아들을 만났습니다. 미국 국적과 캐나다 국적을 가진 막내아들이 마땅한 직장도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모습이 어미로서는 정말 딱하고 속이 상하여 제안을 하려고 만났던 것입니다. 어려서 미국에 홀로 떼어놓을 수가 없어 캐나다로 데려와 같이 거주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데려다 놓았더니 미군에 들어가 복무를 하자마자 캐나다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장가를 갈 나이도 되었는데 일정한 직장이 없이 지금까지 캐나다 이주 후 20년을 떠돌고 있습니다. 잠깐 잠깐 다니던 직장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언제나 시니컬하고 불만투성이인 아들이 걱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며, 내 마음에 드는 직장,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장, 인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다 전문적인 것은 공부한 게 없으니 직장 잡기가 결코 쉽지 않지요. 내 지인들의 아이들은 모두 문제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지라 나는 지인들이 부럽기가 그지없지만 이 또한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막내아들에게 제안을 했던 것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꼭 학문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학비를 다시 대줄 테니 기술학교를 가서 현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40이 되었을 때를 대비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내 말이 막내아들에게는 영 먹히지가 않았습니다. 앞으로 7년 세월 어영부영 지내다보면 40이 금방 될 테고 40이 넘으면 직장 잡기도 더욱 어려워질 텐데 막내아들은 무슨 자신이 넘쳐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세상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 보입니다. 놀기를 좋아하고 부모나 타인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이 형과 동생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아서 가는 길도 그렇게 비슷하게 가는지, 큰 아들처럼 40이 되어서도 밥 걱정하고 살까봐 막내만큼은 30대 초반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깨달아 주었으면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내아들과 말싸움만 하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명문대학을 가라든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라고 윽박지르거나 강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저렇게 태평한 생각으로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세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 소시민으로 살더라도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며 살라는 내 교육 방법이 이 시대와 맞지 않았는지 자문해봅니다. 다른 극성스러운 엄마들처럼 명문학교를 보내기 위해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과 싸우는 일은 나 자신부터 힘들어 할 수도 없었으니 아이들이 저렇게 된 것도 내 책임인가 싶어 요즘은 시름이 깊어집니다.

이젠 오직 네 밥벌이는 해야 한다, 결혼을 한다면 네 자식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는 아빠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법을 어기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직장도 가릴 필요 없고 어떤 일이라도 수치스러워 할 필요 없으니 한 곳에서 오래 경험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식당의 주방장이 되는 것도 주방에서 허드렛일부터 10년 이상 중노동을 참고 견뎌야 주방장이 되는 것이고 그 어떤 직업 세계에서도 10년 이상 같은 일을 하지 않고서는 전문가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요즘의 젊은이들은 우리 시대와 달리 이기적이지만 영민하여서 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나 빵 가게를 개업하려고 해도 해외 유학을 가서 전문성을 키웁니다. 세상이 예전과 달라 평범한 생각으로 도전했다가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막내아들은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숨겨진 꿈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살기가 어려워진 무서운 시대입니다. 삶의 의미가 모두 물질적인 것으로 집중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물질적인 것이 아니면 대화나 정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여유롭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습니다. 이곳 캐나다도 노인층과 이민자들의 빈곤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고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미국도 빈곤층이 급증하여 영양실조된 아이들, 집이 없어 부모와 자동차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해 이를 잃고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치아의 염증이 머리로 퍼져 죽은 아이도 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복잡하고 스피디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한 우물을 10여 년은 파야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리입니다. 흙을 파다가 완전히 깨어져버린 정든 삽과 작별을 하며 새삼 다시 한 번 느낀 이 깨달음을 5분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막내아들에게 전해줄 길은 없을까요. 무슨 말이든 들으려 하지 않는 막내아들과는 이렇게 용도폐기 처분 상태인 삽에 대한 대화조차도 나눌 수 없어 서운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 더 이상 태평하게 지낼 시간이 없음을 어서 깨닫고 한 우물을 파면서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만 해준다면 내 서운함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결단과 결정은 아들의 몫입니다. 그저 훗날 깨어진 삽의 사진이나 아들에게 보낼까 합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7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이동익 (24.XXX.XXX.229)
일본 리크루트사의 YouTube에 떠도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 했나?"라는 이름으로 8만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의 목표인 골인지점 향해 가듯? 인생도 정해진 목표, 정해진 틀(마라톤 코스)을 꼭 따라야 하는가 하고 의문을 던지며 인생의목표는(살아가는 방법은) 인간의 수 만큼 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일깨워? 주는 내용 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오마리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4-07-23 12:58:03
0 0
고승효 (24.XXX.XXX.229)
소말이아 여인이 내전을 피해 길을 떠났습니다.

머리에는 생활필수품을 이어 한 손으로 잡고

등에는 핏덩이 어린아이를 업고 또 한 손으로는 다섯살 난 아이를 잡고 피난을 시작했습니다.

멀고먼 사막을 걸어 가다 보니 다섯살 난 아이가 픽 쓰러집니다.

잠시 망설이던 여인은 다섯살 난 아이를 두고 그냥 갈길을 갑니다.

체념, 포기 일까요 살려는 의지 일까요

몇년 전 타임지에 묘사된 이 사실을 읽고 나서도 저는 아직 아프리카 구호금을 한번도 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다섯살 난 아이를 여인이 버리듯 아프리카를 버리고 살고 있는지 가끔씩 가슴답답하게 져미는 순간을 가집니다.

내 가족을 위해 내가 지금 해 놓고 어느날 문득 다가설 죽음을 맞이해도 조금은 덜 걱정스러울 것이 무엇인지가 나의 최우선 관심사입니다.
답변달기
2014-07-20 10:46:49
0 0
박연철 (24.XXX.XXX.229)
잘 읽었습니다. 정든 삽 13년, 삼으로서는 그 사명과 수명을 다하였다고 보여지고, 오마리님 또한 오랜 삽에 대한 예우를 다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아드님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좋은 미래가 열리기를 빕니다.
답변달기
2014-07-20 10:45:15
0 0
김경한 (24.XXX.XXX.229)
가슴이 뭉클합니다

세상이, 자식이,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많은 지혜를 어찌 강요할수 있겠습니까

가끔 오마리 님의 글을 보면

사람냄새가 넘쳐서 한번쯤은 답장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모두 감추고 포장하고 연극하는 세상에서

다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큰 용기이고 두꺼운 삶의 지혜이지요

정원일도 계속하시고

막내아들도 자주 만나십시요

지성을 들이면서 내 할 도리를 다하다가 보낸 세월은 결코

후회스럽지 않는 법이니까요.

서울에서 독자 드림
답변달기
2014-07-20 10:43:46
0 0
김영수 (24.XXX.XXX.229)
망가진 삽 이야기보다 엄마의 마음이 가슴에 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식 일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답변달기
2014-07-14 10:45:05
0 0
김두호 (24.XXX.XXX.229)
모처럼 여운이 남는 글을 접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드님에게 그가 스스로 깨닫고 맞이할 좋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답변달기
2014-07-14 10:44:28
0 0
libero (39.XXX.XXX.108)
마리님의 생애를 말해 주는 깨어진 삽!
누구에게든 훌륭한 교훈, 기념물이 되겠네요.
답변달기
2014-07-12 10:47:16
0 0
오마리 (24.XXX.XXX.229)
감사합니다. 선생님
교훈이란 단어를 쓰시니 좀 부끄럽습니다. 그정도는 아니지만
추억의 한 장은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답변달기
2014-07-14 10:36:11
0 0
차덕희 (121.XXX.XXX.221)
잘 읽었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마리님의 글은 진솔해서 가까운 이웃의 정서로 나를 비춰보게 합니다.
답변달기
2014-07-11 17:44:28
0 1
오마리 (24.XXX.XXX.229)
반갑습니다. 차덕희님.
건강하시고 더욱 자유칼럼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건안하시옵길...
답변달기
2014-07-14 10:34:48
0 0
사마 (94.XXX.XXX.162)
자식이 걱정되지 않는 부모가 어디있겠습니까. 반면에 부모의 바람대로 사는 자식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나쁜짓 하고 사는 자식이 아니면 어버이의 눈으로 볼때 다소 사회적 적응이 떨어진다 싶어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요.

자식이 전문적인 일을 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하여 무슨 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머지않아 어떤 생각을 새롭게 갖게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배우자나 친구를 만나 생활을 일신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 자신도 예전에 "한심"하고 "구제불능"이란 녀석이란 말을 들으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겨우 밥을 먹고 살면서 가끔은 "모범"적 이란 말도 듣습니다. 내 친구 아들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참으로 걱정되는 나사가 몇 개 씩 빠진 녀석이었는데 여자친구 만나고 결혼하고 나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정말 모범적으로 삽니다.

사람은 자율이든 타율이든 그렇게 바뀔 때도 있습니다. 안바뀌면 어떻습니까. 남보기에 다소 사회적 적응력이 약해도 자신은 즐겁게 살 수도 있습니다. 악행 즉, 사회에 적극적인 해악만 저지르지 않고 산다면 부모 입장에서 관조해 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때론 부모의 관심과 걱정이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주저하게 만들 수도 있고 자식의 판단을 흐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너무 잘 알지않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부모가 동의하지 않거나 충돌할까봐 얘기를 안하는 수도 많이 있습니다. 그냥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면서 자식과 연결된 감정(emotion)의 끈도 차츰 느슨하게 해 놓는 것이 어떨까요.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이 제 마음에 와 닿아서 저도 두서없이 몇 자 적어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4-07-11 16:01:55
0 0
오마리 (24.XXX.XXX.229)
전 그렇게 자식에게 관심이 많고 관여하는 엄마도 아니니 자식에게 이러저러 말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닙니다. 다만 그러다 홈리스가 될가봐, 그러다 정말 아주 빈곤층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갈까봐 걱정인 것입니다. 호사스런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습니다.
염려허셔서 주신 댓글 오늘 감사하게 읽었씁니다.
답변달기
2014-07-14 10:33:45
0 0
사마 (94.XXX.XXX.215)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4-07-15 17:30:30
0 0
상아 (125.XXX.XXX.139)
저희 막내도 33세인데 전공을 발휘하는 직장이 아닌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어 늘 마음에 걸린답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받은 월급으로 중고 자가용도 사고 부모님들 생신 때는 잊지 않고 선물이며 용돈을 챙겨주는 효심이 깊은 녀석인지라 더욱 안스럽습니다.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사귀던 여친이 있었는데 뚜렷한 직장도 없는데다 집안 재력도 별 볼 일 없는 탓에 헤어졌으니까요~
차라리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도 여당 당대표의 지구당 사무국장 시절에 한 자리 부탁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답니다.
그래도 저희 막내는 전공과는 상관없는 직장이지만 일하고 있는게 대견하죠?
하지만 문제는 냉정하게 계산하는 아가씨들이 결혼하려 들겠느냐는 걱정이 앞섭니다.
부디, 마리님의 막내가 부러진 삽을 보면서 느슨한 삶의태도를 다잡고 치열하게 살았음 좋겠습니다! 멀리서나마 저도 마음을 보태겠습니다!!
답변달기
2014-07-11 10:20:50
0 1
오마리 (24.XXX.XXX.229)
뚜렷한 직장이 아니어서 마음이 안스럽다는 말씀 깊은 공감이 갑니다. 저는 직장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며 스스로 차도 사고 또 부모님 생신을 잊지 않고 챙기고 용돈까지 드린다니 그 이상 바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효심을 가진 젊은이를 요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전 상아님이 부럽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 그런 청년 세상 살긴 쉽지않아 걱정은 돼지만 그래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답변달기
2014-07-11 12:38:51
0 0
한희주 (1.XXX.XXX.225)
노인이든, 자녀 양육에 허리가 휘는 중년이든, 젊은이든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노후준비가 안 된 노년의 삶도 애잖하지만, 취업전쟁을 치루어 내야 할 젊은이의 앞날이 더 안쓰럽습니다. 취업전선에서 도태되면 결혼도 포기한 채, 알바나 건설현장의 막노동자로 연명해야 하는 청년들이 수도 없다 합니다. 둘째 아드님도 삶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깨닫고 분발할 때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가 좀 앞당겨졌으면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가꾸어 놓으신 정원이 참 아름답습니다. 마리 선생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드립니다.
답변달기
2014-07-11 16:11:42
0 0
오마리 (24.XXX.XXX.229)
우리의 시대도 쉽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노력 또 노력하며 인내해야만 했던 시대였는데 지금 20 30대의 상황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떤 직장이라도 한군데서 참고 성실히 해야먄 그나마 삶을 유지 할 수 있기에 그것이 걱정인 것이지요. 성인인 자식들 이젠 어미의 말이 닿지 않으니 저도 걱정을 그만하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셔서...
눈이 건강해지셨길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4-07-14 10:31:05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