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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땅 네팔'
유능화 2014년 08월 07일 (목) 01:37:07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네팔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28몀의 팀원들이 여름휴가 일정을 의료봉사 일정에 맞추어 히말라야 산그늘로 오게 된 것입니다. 벽돌로 지은 국제공항 청사는 자연친화적이기는 하지만 네팔의 빈약한 실정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언제 보아도 약간 씁쓸합니다. 이번 사역지는 덩더리 근처로 네팔 서쪽 끝이면서 인도와 접해있는 국경지역입니다.

진료를 하게 된 곳은 학교인데 마침 학생들이 학교 지붕 위 옥상에서 시험을 치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네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웠어도 지붕 위 옥상에서 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는데 네팔에서는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일인 모양입니다. 신기한 광경이기도 했지만 네팔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주요 진찰 대상자는 HIV 감염자들입니다. HIV는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약자인데 쉽게 말해 에이즈 바이러스입니다.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가 간염 환자가 아니듯이 HIV 감염자는 에이즈 환자는 아닙니다. 다만 치료가 안 되는 경우 종국에는 에이즈로 변하게 됩니다. HIV 감염자는 차트에 빨간 십자가 표시를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평생을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야만 합니다. 네팔에서는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서 많은 네팔인들이 인도로 갑니다. 거기서 살면서 성병을 얻은 후 네팔로 돌아와 부부관계를 가지니 부녀자는 물론 태어나는 신생아들까지 에이즈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HIV에 감염된 아이들은 평생 ART라는 약을 먹게 됩니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기가 들어 며칠 동안 약을 먹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그네들은 평생 그 약을 먹어야 하고 조금이라고 게을리하게 되면 약의 용량을 올려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나마 네팔 정부는 워낙 가난해서 WHO(세게 보건 기구)의 도움을 받아서 ART를 나눠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HIV 감염자들을 진찰할 때 느끼는 감정은 바로 ‘컴패션(compassion, 憐愍)’ 그 자체입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오는 HIV에 감염된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을 대하면 나도 몰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기도 모르게 수직 감염된 아이들. 자칫 잘못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는 이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절로 발동되어 좀 더 세세하게 진찰하고 싶고, 필요한 약도 더 주고 싶어집니다.

임시 진료소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의 옆은 넓다란 잔디밭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신 나게 축구를 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축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스포츠인가 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어린이들도 축구를 하는 동안 걱정 근심을 잊고 즐거움에 젖어듭니다. HIV에 감염된 어린이들까지도 즐겁게 만드니 축구공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네팔로 가는 기내에서 2030년까지는 에이즈가 근절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천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는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으로 탑승했던 에이즈 전문가 100명이 사망했다는 슬픈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러저래 지난 한 주간은 에이즈를 잊을 수 없는 주간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미래가 어떤지도 모르고 신 나게 뛰어놀던 네팔 아이들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공을 찰 때마다 해피 바이러스가 묻어 나와 HIV를 격퇴하고 더 나아가서는 에이즈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판타지를 꿈꾸어 봅니다.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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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분쟁, 민간항공기의 격추, 숱한 생명을 건질 의료 전문가 100명의 덧없는 희생... 참 기가 막힌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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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11: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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