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욕하면서 배운다고
신아연 2014년 08월 25일 (월) 00:10:16
‘도깨비 감투’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만화를 좋아하던 나는 ‘도깨비 감투’ 만화책을 읽고는 현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진짜 그런 것을 한 번 가져봤으면 하고 조바심 나게 열망한 적이 있다.

도깨비 감투를 쓰고 투명인간이 되어 맹랑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는 유유히 사라질 때면 영문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악동처럼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짜릿했고, 지나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한대 치거나 남의 물건을 ‘슬쩍’ 해도 도무지 들킬 일이 없으니 그야말로 도깨비 감투만 있으면 겁 없이 멋대로 행동하는 데 하등 제동 걸릴 일이 없을 거라는 유치한 발상에도 신이 났다.

요상한 것은 어차피 상상일 뿐인데도 어린 마음에도 그랬고 만화 줄거리도 그랬듯이 그런 물건을 손에 넣는다면 선행에 쓰기보다 남을 해코지하거나 재미 삼아 골려 줄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남다른 힘을 얻으면 못된 쪽으로 기우는 맘보가 참 고약하다 싶기도 했다.

세계 제일의 인터넷 왕국이라는 21세기 한국 사회에는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던 ‘도깨비 감투’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어쩌다 굴러들어와 특정인의 소유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셀 수없이 많은 투명 감투들이 인터넷 사이트 곳곳마다 종횡무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익명성이라는 도깨비 감투를 악용해 남을 악의적으로 해코지하고 상처를 낼 수 있는 음습한 사이버 공간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기가 서리서리 뿜어져 나오는 사이버 공간은 음해와 비방, 명예훼손 등으로 뒤엉킨 투명인간들의 입김으로 혼탁하다.

사이버 공간을 돌아다니는 도깨비 감투들은, 마치 굶주린 사자 앞의 먹잇감이 이리저리 살점을 뜯기며 갈갈이 해체될 때까지 희롱당하다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삼켜지고 말듯이, 올라온 글의 내용이나 본 뜻과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그 글이 한 줄 한 줄 의미를 상실할 때까지 시비에 시비를 걸며 냉소적 이빨을 들이댈 뿐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애교와 장난기 어린 감투 대신 현대의 감투들은 언어폭력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도깨비 감투를 언제까지 악용만 하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곤욕을 치르고 마는 이야기 속의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감투를 벗어서 얌전히 본래의 자리에 돌려놓을 일이다.

지난 번 칼럼 ‘포털 변소, 싸젖힌 댓글’과 ‘나는야, 조선족 사토라레’가 나간 후 10년도 더 전에 썼던 이 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간 ‘익명제’를 ‘실명제’로 전환시켜 정체가 노출될 수 있도록 감투에 ‘구멍’을 냈지만 이에도 아랑곳없이 폭력의 수위는 높아만 갑니다.

글 쓰는 후배 하나도 ‘댓글 테러’를 당했다며 의미 둘 가치가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허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왜 이렇게 난폭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을까 다시 곰곰 생각해 봅니다. 뭐 하나 되는 일도 없고, 할 일도 없이 무료한 세칭 ‘찌질이’들이 그런 댓글을 쓰고 다니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주변의 위로를 뒤집어도 생각해 봅니다.

자기 자신과 현실에 좌절하고 낙망한 사람들이 흘러드는 곳이 그 마당이라면, 그 ‘퇴적 공간’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아우성을 ‘단순 찌질이들의 악다구니’로 치부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놓고 해코지는 못하고 시궁창 쥐새끼처럼 남의 발 뒷굼치나 갉죽거리는 족속들에게 차라리 측은지심을 가질 망정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몸서리나는 댓글은 어느 단편 소설 제목과 같이 소외되고 천대받으며 점점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모래톱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가 사분오열, 오리무중, 암중모색을 거듭하는 동안 그네들은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리고 밀린 퇴적층이 되어 댓글로나마 ‘악’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면 참으로 가련한 일입니다.

어쩌다 보니 세 번 연속 인터넷 악성 댓글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요 몇 달 새 일도 안 구해지고 글도 안 써지고.., 저 역시 도무지 되는 일이 없고 할 일도 없는 '찌질한 화상'이라 갑자기 악플러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나 봅니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이러다 남의 글에 악성 댓글이나 '싸고' 돌아다니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그미 (112.XXX.XXX.157)
세상이 너무도 악하네요. 착한사람은 바보가되는... 이상한 나라 .
답변달기
2014-08-27 07:34:22
0 0
백문경 (112.XXX.XXX.157)
신아연씨, 마음에 평강을 빌어요. 요즘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으시는 것같아 참 안타깝네요. 한국이 제 아무리 발전했다곤하나 근본적인 민도의 변화없이는 선진국되긴 어렵지요.
답변달기
2014-08-25 23:16:37
1 0
이정민 (112.XXX.XXX.157)
욕 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배우면서 욕 하기도 하지요.

어린 아이들이 말 배울 때 아무 생각 없이

듣는대로 말하고, 보는대로 따라하지요.



욕 하면서 배운다는 말,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몰라요.



자기 글에 대해 책임 질 줄 아는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말은 한번 뱉으면 쏟아진 물과 같다고 하니 글 보다 말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글은 수정할 시간이 있고, 오해와 편견에 대한 해명의 글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사이버 공간에서 한 말은 파장을 일으켜 걷잡을 수가 없지요.



악플에 시달려 목숨까지 포기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 모두 그만 할 때도 되었어요.



제발 건전한 사회, 건전한 글로 밝고 아름답게 살자구요.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더도말고 덜도 말고 보름달 처럼

둥근 마음으로



환하게 웃자고요.
답변달기
2014-08-25 22:14:28
1 0
시드니 맨 (112.XXX.XXX.157)
조국의 현실이 "찌질이"을 양산하는 정책이라면.... 실질적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아가야하는 정책으로 바뀌어가야할것 같네요. 정치인들의 허공에 메아리치는 구호말구요. 힘들지만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답변달기
2014-08-25 21:25:15
1 0
사막여우 (112.XXX.XXX.157)
헉. 저에게 도깨비 감투 하루만, 단 하루만 플리즈........ 꼭 할일이 있어서요.
답변달기
2014-08-25 21:24:29
0 0
주영조 (112.XXX.XXX.167)
생각이 다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청난 댓가를 치르야 합니다
십자군전쟁이나 조선시대의 지리한 당파싸움도 생각(신앙이나, 제사)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백년을 두고 싸운것이라 생각합니다
도깨비비감투를 써면 선행이 아닌 몽니를 부린다는 대목은 공감합니다
재미있습니다
답변달기
2014-08-25 14:39:45
1 0
신아연 (112.XXX.XXX.157)
대화나 토론이라고 시작해놓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를 조종하고 주입하고..., 그게 인간이지요. 그러려니 합니다, 저는.
답변달기
2014-08-26 10:06:33
0 0
신아연 (112.XXX.XXX.157)
언제나 삶의 열정과 소명과 책임감에 뜨겁고도 뜨겁게 사시는 인내천님께 무한한 존경을 표할 뿐입니다.^^
답변달기
2014-08-26 10:07:43
0 0
차덕희 (121.XXX.XXX.220)
ㅎㅎㅎ 도깨비 감투!.
참으로 매혹당한 상상 속의 물건이였지요.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얽힌 실타래 풀듯,물이 자연스레 흐르는 듯한데 일이 없으시다니요.유감입니다.
위의 글을 쓸때쯤에 번역서인 철학책을 읽었는데 어찌나 부자연 스러웠는지 책 산것을 후회했지요.
적어도 오십이상의 나이에서 번역해야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새삼 떠오르네요.
말이 씨가 되어 나를 후려칠까 고운 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갑오생 아주머니예요.댓글을 달때 아부는 싫고 나와 다른 성향이여도 나의 성향을 인지시키고자 성의를 보이지요.
도깨비 감투 있다고 상상해요!.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꼭 善한 일에만 쓴다는 단서를 붙여서!.
답변달기
2014-08-25 02:02:17
0 0
신아연 (112.XXX.XXX.157)
글이 밥이 되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글로 생업을 삼는다는 자체가 무모한 시도라고 주위에서 저를 철딱서니 없다 하지요.^^ 그래도 어쩌나요, 배운 도둑질이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저어함, 선생님의 큰 미덕을 저도 배우겠습니다.
답변달기
2014-08-26 10:10:31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