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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고객님"
신아연 2007년 09월 17일 (월) 10:46:40

'사랑합니다. 고객님'

지난해 2년 만에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였습니다.

114 안내전화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화번호 좀 물어보려는데 웬 뜬금없는 사랑타령?'

생뚱맞고 의아해서 혹여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귀가 다 의심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상냥하고 친절해도 그렇지 어떻게 생면부지의 사람한테 '사랑한다'는 첫인사가 거북살스러움 없이 술술 나올 수 있을까 싶어서였지요.

어떤 짓궂은 사람은 안내원의 ‘사랑한다’는 멘트에 ‘나도 사랑한다’고 대꾸했더니 기겁을 하더라나요. 결국 ‘사랑한다’는 말은 기계적인 멘트에 불과하다는 걸 안내원 스스로 증명한 꼴일 수 밖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사람을 무슨 수로 다 사랑하겠습니까.

하기야 듣기 거북하기로 말하자면 '고객'이라는 호칭도 만만치 않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전화번호를 안내 받는 일 정도 가지고 '고객씩으로' 대접받는다는 게 낯 간지럽고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말입니다.

114 안내 직원들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예전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구부리며 층간 안내를 하던 안내양들의 과장스럽고 인위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옆 사람과 숨결이 엉킬까 봐서 고개 조절까지 신경써야 하는 좁아터진 사각의 공간 안에서 방송도 아닌 육성으로 전하는 간드러진 안내 멘트가 여간 민망하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하기야 이번 한국 방문 중에 가장 도드라진 일상의 변화는 바로 그 '고객님'에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들 빼고 모르는 사람들한테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바로 '고객님'이었으니까요.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국민 고객 시대'가 된 듯 합니다. 어째서 정감 있는 '손님'이란 말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을까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저씨, 아줌마'는 이미 저주받은(?) 호칭이 된지 오래이고, 그렇다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언니 아니면, 이모로 불리는 건 불쾌하기까지 하던 차에, 성별이나 나이 개념이 없는 중성적이면서도 중후함이 물씬 풍기는 '고객'이라는 새 호칭을 마다할 자가 그 누가 있을까 싶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제 한국은 어물전에서 꽁치 한 마리를 사도 '나는야, 고객'이며, 딩동! 하고 현관 벨이 울리면 '고객님'으로 시작되는 택배 사원의 환한 미소를 만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렵, 바야흐로 '전국민의 고객화'의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필이면 한 방송국에서는 때맞춰 고발성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고객 지상주의'의 위선과 가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일상화된 비인간적이며 인격모독에 가까운 사례를 추적한 그 프로그램은 '고객'의 갖은 비위를 맞추다 못해 억지 소리를 하는 '고객들로부터' 신체적, 언어적 폭력까지 감수해야 하는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과 종업원들의 피폐해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했습니다.

종업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며, 혹은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을 주는 행동이 화면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고객은 왕’을 지나쳐 '고객은 폭군'이라고 해야 할지요.

한국 사회에서 번드르르하게 회자되는 '고객'이라는, 어찌 보면 입술에 붙은 말 마디에 불과한 알량한 거품 호칭 이면에 인간됨의 기본 가치조차 무시되는 거대한 횡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할밖에는 요.


진정한 고객주의란 질량화, 수량화할 수 없는, '생명 부여받은 자들마다 평등하게 부여된 동등한 인격'의 측면을 기본 가치로 하지 않는 이상 의미 자체를 상실하는 개념이 아닐까요.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우하는 인간관계의 황금 비율이 한 사회의 문화와 가치의 기초로 다져지지 않은 한 어떠한 입바른 외침도 자칫 고통스런 결과를 낳을 수 있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기야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덕목이 국민들의 배냇 정서화되어 있는 사회라면 구태여 '고객님, 우리 고객님'을 외칠 필요조차 없었을 테지만요.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블로그 http://biog.naver.com/ayoun63 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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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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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hyunoo (123.XXX.XXX.231)
잘보신것같고 좀 사기당하는 것같은 느낌이듭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는 전화받는사람은
그런데 이런 경우 고객님 , 아버님, 아저씨 언니등등 명령령받는 언어로 대접하는 사람들은 어떤 단어들을 써야 옳은 것일까요?
대안은 공격당할까봐 예기안하고 무조건 안된것만 파헤쳐서 고ㅇ표하고 그런것이 저널리스트들의 성격이랄까 그렇게 비차는데요 , 대안의 방향이랄까 그런거을 비추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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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23: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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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11.XXX.XXX.35)
사랑이 밑받침되지 않는 비난은 민망합니다. 외국에 사시는 분이 "한국" "한국 사회"를 연발해가며 질타하시는데 그 속에서 사랑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습니다. 후진국을 비난하는 선진국 여행자처럼 날 선 목소리 거두시고 외국 생활 오래하신 분답게 그 나라 얘기를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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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21: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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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신 (222.XXX.XXX.237)
의례적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군요. 구태여 비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랑한다는 말도 뜻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이란 말엔 여러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나ㅣ까요...뜻을 새겨서 듣고 자꾸 칭찬하는 태도, 남을 세워주는 태도를 갖는 모습이 아릅답지요. 한국인의 단점은 남을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간다고 잘못생각하고 있지요. 원래 그런뜻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았겠지만 듣기가 좋지않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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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7 20: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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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ju (71.XXX.XXX.30)
섬세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는 신선한 글 많이 올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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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7 11:58:1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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