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가족 잃은 사람들의 한가위
신아연 2014년 09월 05일 (금) 01:12:38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름 붙은 날’ 글 당번이 되면 습관처럼 옛 글을 찾아보게 됩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태풍이 한차례 지나가지만, 고국은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어 갈 때이지요. 계절이 거꾸로 돌아가는 호주는 한국과는 반대로 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이에는 아랑곳없이 제 마음은 슬그머니 한국의 가을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어찌 된 노릇인지 제 속에는 ‘거꾸로 가는 또 하나의 시계'가 있어 이민 햇수가 늘어갈수록 고국을 향해 내달리는 마음에 점점 속도가 붙어갑니다.

이곳 호주에서도 해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줄기 서늘한 구름을 거느리고 쪽빛 밤하늘에 휘영청 떠오르는 쟁반 같이 둥근 달은 공해 없이 맑은 하늘 탓인지, 계수나무 옥토끼가 너무나도 선명해서 차라리 서러운 감회를 불러일으킵니다.

‘고향 앞으로’를 부르짖으며 길을 나서기 무섭게 주차장을 방불케 하듯 도로를 꽉꽉 메우는 차량 행렬, 가지 수 많은 제수 장만과 친지들 치다꺼리로 골치가 지끈대는 명절 증후군, 빠듯한 휴가 일정 탓에 피곤만 가증된다는 투덜거림 등등, 모두가 함께하고 싶은 그리운 고국의 모습입니다.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찾아올 가슴 한편의 아릿함과 애틋함을 생각하면 여럿이 모여서 옥시글거릴 수 있다는 것만도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7년 전 추석을 맞으며 ‘호주의 보름달’이란 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더군요.

이민 이후 내면에 장착된 ‘거꾸로 시계’가 연유야 어찌 되었건 작동을 멈추고 고국의 추석을 이태째 맞고 있습니다. 이제는 차라리 ‘호주의 보름달’이 그립다는 투정 섞인 감정 사치를 부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호주 동포사회에서는 추석의 의미가 한국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초연한 척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의 상실, 엄마의 부재가 명절을 맞으며 덧난 상처처럼 도드라진다면 정말 슬프고 고통스런 일일 테니까요.

최근에 가족을 잃어 본 사람들은 압니다.

'이름 붙은 날'이란 떠나간 빈자리를 아프게 기억해야 하는 시간, '머리'로 떠나보낸 과거가 실은 남은 자의 '가슴'에 붙박혀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명절이 다시 기다려지려면, 적어도 고문 같은 기억을 벗고 무덤덤하게 맞아지려면 아주 오래오래 아파야 한다는 것을 최근에 가족을 잃어 본 사람들은 압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마치 내전 중인 듯 너무나 참혹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잇따라 겪었습니다. 유독 여리고 어린, 창창히 젊은 죽음이 많았기에 남은 자들은 지치고 무력하고 분노하고 우울한 채 매일매일 상실과 맞닥뜨려왔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피붙이와 내일 거짓말처럼 이별하면서 조급했던 우리의 성취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에 망연자실했습니다. 대명천지에 어린 것들 하나 지켜주지 못했고, 젊은 목숨 저렇게 스러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이나 말지,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비루하고 용렬한 싸움박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은 홀연히 제 갈 길을 갔던가 봅니다. 세상은 이렇게도 불공평하건만 세월은 아랑곳없이 공평하다는 것이 오히려 서럽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조차 사그라지는 듯한 허망함에 몸서리를 치는 동안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이제 초가을에 다다랐습니다.

올해 추석은 예년과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처연히 높은 하늘 너머와 무연한 달빛 아래에서 어린 원혼들을 달래며 애곡해야 합니다. 저처럼 호주의 보름달이 그립다는 따위의 자기 연민은 말할 것도 없고, 명절 후유증이 어쩌네 하는 ‘포시라운’ 소리는 입 시늉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일가붙이 무탈한 것에 고마워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족 잃은 이웃에 무심한 상처라도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연처럼 여여하고 숙연하게 추석을 맞을 일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은 우리, 자연에(게)서조차 위로받지 못한다면 너무 비참할 테니까요.

“자연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말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비밀을 알지 못하며, 인간은 자연의 품 안에 살면서도 자연의 이방인”이라고 한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서로의 이방인일지라도 자연의 이방인은 되지 않도록, 자연마저 우리를 내치지 않도록 올 한가위에는 달님에게 우리의 생채기를 싸매 달라고 빌어야겠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7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김윤옥 (39.XXX.XXX.180)
경제,경제... 하면서 가슴아픈이들을 애써 외면하는 높으신 사람들도 한 번 쯤 역지 사지해 보는 한가위 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분간 선거도 없어서 더 이상 국민 눈치 볼 필요가 없다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손 잡아주신 그 뜻을 정말 몰라서 저럴까요?
답변달기
2014-09-09 23:49:51
0 0
신아연 (112.XXX.XXX.157)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참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뭘 더 바라고 경제 타령하다 나라가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요...
답변달기
2014-09-10 08:18:26
0 0
그미 (112.XXX.XXX.157)
작가님께서 오랫동안계셨던 이곳 호주에서도 추석바람이부네요. 오늘 이스트우드에 나가보니까 호텔주차장에서 달 축제한다고 스톨을 약 20개정도 만들어놓고 야외 무대도 만들고있던데, 중국사람들을 겨냥한거라고 보여지더라구요. 한국은 추수를해서 풍성한 계절인데, 꼬까옷입고 어른들을 찾아뵙고, 산소에도 둘러보는 최고의명절. 아무래도 대단하겠죠? 여기서 오래살다보니 명절다운 명절은 잊어버린지 오래네요. 그런데 작가님 지적대로 올해는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고 사람의 생명이 귀한대접을 받지못하는 서글픈 나라, 한이맺힌 사람들... 그들을 놔두고 깔깔대며 송편빚고, 윷놀이 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추석이네요.
답변달기
2014-09-06 21:45:32
1 0
시드니 맨 (112.XXX.XXX.157)
무엇으로도 원래 자리로 되돌릴 수 없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추석을 보내야겠습니다.신작가님도 가족과 떨어져있는 시간동안 특히나 이런 명절에 많이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답변달기
2014-09-06 03:12:19
1 0
신아연 (112.XXX.XXX.157)
맞습니다. 명절은 아잇적에나 즐겁지요. 그나마 요즘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평소에도 넘치게 가지니 특별히 설빔, 추석빔 기다릴 일도 없고, 모처럼 기름진 음식 배터지게 먹을 기대도 없지만요.

말씀하신대로 어른들이야 돈 들 일만 줄줄이지요. 잠깐 가족들 모인다는 것 외에.

이래저래 미안하고 우울한 명절입니다. 탈한양 할 기분도 안 나구요...
답변달기
2014-09-05 23:17:50
1 0
수선화 (112.XXX.XXX.157)
즐겁게 맞이해야할 명절 추석.. 서러운 사람이 너무도 많겠네요
답변달기
2014-09-05 19:59:41
1 0
신아연 (112.XXX.XXX.157)
슬픈 사람들에게 명절은 오히려 재앙이지요.
답변달기
2014-09-05 23:14:37
1 0
김종우 (220.XXX.XXX.168)
그렇군요. 아무래도 금년 한가위 보름달은 예년과 같지 않을 듯합니다.
하기야 달이 잘못될 리는 없습니다. 호주에서 바라보는 달과 한국에서 바라보는 달이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바라보는 우리네 마음이 왠지 휑하니 뚫려 있는 것이지요.
"온 달이 피 같이 되며"(계 6:12)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해도 괜스레 그 말씀이 가슴에 핏방울로 맺힙니다. 많은 아픈 가슴들을 무엇으로 위로하며 무엇으로 보듬어줄 수 있을까요?
올리신 글이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09-05 16:38:16
1 0
신아연 (112.XXX.XXX.157)
네... 성경대로 피 같은 달이 뜨겠군요. 적어도 우리 마음에는 피같은 달이 떠올라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마음이 마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달이야 한국이든 호주이든 같은 달이라 해도...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09-05 23:14:06
1 0
이영재 (123.XXX.XXX.160)
글이 참 좋네요.
이번 추석은 확실히 다르게 느꼈집니다.
38년만의 여름추석이라는 것 외에도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을 겪고 맞는 지라 흥이나고 즐거운 명절은 웬지 죄스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답변달기
2014-09-05 10:44:34
1 0
신아연 (112.XXX.XXX.157)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세월호 추모제단과 노란 리본 시청 광장에 팔도에서 올라온 추석 농산물이 겹을 이뤄 진열된 것을 보면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못난이'라고 속으로 뇌며 예의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답변달기
2014-09-05 23:12:09
1 0
방기웅 (211.XXX.XXX.27)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빌어야 되겠지요 ! 공감하며 읽었읍니다.
답변달기
2014-09-05 10:06:11
0 0
신아연 (112.XXX.XXX.157)
국민 합동제라도 지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살아있는 것이 송구한 요즘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09-05 23:08:16
1 0
최석근 (58.XXX.XXX.187)
옳은신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명절 숙연하게 지내겠습니다.
선생님도 의미있는 한가위 보내시길 빕니다.
답변달기
2014-09-05 09:52:47
1 0
신아연 (112.XXX.XXX.157)
고맙습니다. 저도 친정붙이와 지인들을 만납니다. 주변에 가슴 아픈 분들이 너무 많아 송구한 명절입니다.
답변달기
2014-09-05 23:07:18
1 0
이용웅 (112.XXX.XXX.157)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한국의 며느리들에게 요즘 '가짜깁스'가 유행이라더군요. 팔아픈척하면서 명절준비에 열외하고픈 불편한 진실의 세계가 한국이기도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09-05 09:34:35
1 0
신아연 (112.XXX.XXX.157)
저도 신문에서 보고 어이없어 했습니다. 웃자고 만든 물건일텐데 의외로 잘 팔렸다니 더욱 어이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4-09-05 23:06:23
1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