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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깨달았더라면
오마리 2014년 09월 16일 (화) 00:48:15
얼마 전 토론토에 다녀왔습니다.
여름 가을의 토론토는 아름답습니다, 박물관과 토론토 대학, 병원 등 오페라하우스를 따라 온타리오 호수까지 남북으로 뻗어 있는 유니버시티 로드는 토론토의 상징입니다. 맑고 파란 하늘과 도로 중앙에 심어진 화초들이 주변의 건물과 잘 어우러진 이곳은 내가 토론토에 갈 때마다 좋아해서 늘 찾는 길입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 사이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걸음새는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상쾌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이 몰려왔습니다. 예전엔 그런 감정이 생기리라고 단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로 나는 잠깐동안 황망한 기분에 잠겼으며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서 이미 사라진 사람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금년 2월 내 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한 분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오키나와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무렵 듣게 되었습니다. 내 나이 19세 때 시작된 인연이니 40여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계신 지인이 그분이 떠나셨는데 알고 있느냐는 이메일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머지않아 돌아가실 것이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소식을 듣고선 가슴이 먹먹해지고 내 머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요양소 발코니에 앉아 어두운 태평양 바다로 떨어지는 빗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폰에 저장된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며 오직 나만이 아는 그분이 받은 냉대와 모멸의 삶, 거칠고 슬픈 질곡의 한 세상을 떠올렸습니다. 다행히 성공한 효자 아들 덕분에 말년에는 편안한 삶으로 젊어서의 고생을 보상받으셨고 극진한 정성으로 간호하며 임종을 지키는 아들 손자 옆에서 큰 고통 없이 눈을 감으셨으니 그래도 행복하게 생의 마침표를 찍으셨습니다.

거리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여름날의 토론토 거리에서 그분, 이혼 전 시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은 무슨 심경의 변화이며 이것은 과장된 감정이 아니고 진정 나의 진심인가? 미운 정이 든다더니 정말 쌓이고 쌓여온 미운 정 때문인가? 그러나 오래전 이미 미움은 소멸되었거늘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이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운 정이었던 것입니다. 밤사이 조용히 내린 흰 눈처럼 나도 모르게 소복이 쌓여왔던 고운 정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목 놓아 울었고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어서 가슴 아파한 적은 있었지만 이미 남이 된 세상 떠난 전 시어머니가 그리워질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분의 운명과 인생이 한 사람 한 여성으로서 너무 가여워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깊은 연민과 동정은 했었으나 절절하게 보고 싶어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서로 세상에서 가장 미워했던 두 사람이 오히려 이혼 후 극적으로 부둥켜안고 화해하며 울었던 공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미 남남이 된 사이로 때늦은 감이 있었지만 한국 방문 때마다 뵙고 그분이 걸어온 한평생의 가슴 시린 넋두리를 몇 시간이고 들어드리며 함께 살았던 지난 시절의 얘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습니다. 그런 따뜻했던 기억과 마지막 만남에서 무수한 상처를 일시에 치유해준 한마디“세상에 에미밖에 없더구나.”가 그런 그리움을 불러왔을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영화구경도 가고 박물관 미술관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찻집에서 함께 자식의 흉도 보며 친 모녀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상적인 고부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소망은 그냥 꿈이었는지 이제 내가 시어머니가 되었지만 늘 꿈꿔왔던 고부관계는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 주변에도 아름다운 고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척과 지인들이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어쩌면 아시아 사람들 특유의 고부관계는 숙명적인 비극이 아닌가 합니다.

딸을 잃은 후 고부간에도 모녀와 같은 감정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신념도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시’자 소리만 들어도 끔찍하다며 아우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는 나를 슬프게 합니다. ‘웰컴 투 시월드‘라는 한국 방송을 보면서 참 한국적인 방송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시월드'라고 잘도 용어를 만들어내는지. 그러나 그런 말이 오히려 고부간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고부간의 갈등을 들춰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조목조목 서로 반박하는 모양새나 말투가 과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가는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왜냐면 오히려 그런 방송이 더 고부간의 거리감을 크게 만드는 것 같아 불쾌해졌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가 소중하면 상대방의 부모도 소중하고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요? 꼭 혈연이어야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타인에 대해서는 항상 거리를 유지하고 깊은 유대를 갖기를 꺼리는 배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유난히 혈연에 집착하고 입양을 싫어하는 동양인의 정서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 나를 낳아준 부모, 나와 피를 나눈 형제만을 내 가족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습니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가까이서 항상 관심과 사랑, 신뢰를 가지고 살아가는 관계도 가족이며 혈연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나는 지금 그리움 그 이상으로 그분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남편 귀국 후 미국에 홀로 남아 있었던 6년 동안 낳자마자 보낸 막내아들을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 살림을 맡아 해주셨던 것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감사함이 그분이 떠나신 후에야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내가 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소리쳐도 오직 공허한 메아리만 흩어질 뿐입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을 사십 대에 깨달았더라면, 내 젊음과 건강이 희생되었다고 억울해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분이 깨닫기까지 더 많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면 모두가 행복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내 삶의 방향도 달라졌을 테고 이 나이에 토론토의 거리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기다림과 희생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묘약은 없을까요? 있다면 나의 사십 대처럼 지금 이 시간을 방황하며 살고 있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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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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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24.XXX.XXX.229)
존경하는 오마리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야 아차 잘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헤겔은 지혜의 상징 " 부엉이는 황혼녁 에 날기 시작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고마움으로 승화한 그 선한 마음으로 베푼 보시는 세세생생 좋은 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늘 좋은 글 잘 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독자 김 장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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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2 21: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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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호박 (110.XXX.XXX.147)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지혜가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수많은 서적 속에서도 항상 가장 옳다고 여기는 것도
세태가 다르면 또 변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도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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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10: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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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119.XXX.XXX.67)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어 메마른 마음들을 적셔주시기 바랍니다. 한 여인이 자기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못하고 컸다고 믿고 부모를 원망하며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는 누군가의 작난을 믿어버린 것이지요. 감사나눔운동에 참여하며 마음이 열리어가던 어느날 친척을 만나 자기가 어렸을 때 큰 화상을 입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왜 흉터가 하나도 없는가 반문하자 "너의 부모가 여자가 흉터가 있으면 안된다고 전국의 명의를 찾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느냐"며 질책했습니다.이에 부모의 지극한 사랑도 모르고 원망만하고 살아온 것을 깨닫고 지금은 효녀가 되고 감사불씨, 행복전도사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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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18: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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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j56 (110.XXX.XXX.190)
젊은 시절 시어머님과 시누이 사이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사건으로
마음 속 시어머님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전근으로 멀리 떨어져 살아 보니 관계가 좋아졌었답니다.
아마도 항상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더라면
서로 존재의 감사함을 잊고 미워하며 살았으리라 상상해 본답니다.
이혼이란 악 조건이 오히려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에미밖에 없었더라" 라는 귀한 마음을
들으신 것 오히려 보상이 되었고 진심을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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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9 13: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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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3.XXX.XXX.229)
우리 마음 속은 언제나 갈등 으로 끓는 활화산 같은 거 같습니다. 잠시 쉬고 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게 영원히 휴화산으로 변하기는 오랜 세월이 걸리군요.
언제나 속을 끓이고 사는 그 속내를 누가 얼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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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16: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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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1.XXX.XXX.225)
'삶도 글쓰기도 어두운 밤 산길을 홀로 가는 것' 이라던 이청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둡고 무서운 밤 산길행은 장애 많고 의지 없는 우리 삶의 모습이요, 그 삶을 베끼는 소설 쓰기 또한 막막한 밤 산길을 홀로 걷는 것과 맞먹는 것이라 하였지요. 젊어서 깨닫지 못 해 방황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지요? 부모자식 간도 고부 간도 모두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리고 부림 당하는 관계에서 벗어날 때, 좋은 관계는 지속되니까요. 저도 호된 시집살이를 하였지만 맺힌 매듭을 풀지 못하고 시어머니는 이승을 떠났습니다. 가슴 시린 선생님의 이야기 가슴 깊이 새기면서 좋은 시어머니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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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9 0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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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3.XXX.XXX.229)
한희주 선생님
하늘이 흐린 아드리아 바다를 낀 도시의 발코니에서 이 답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제 제 여정도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끔 짚었던 지팡이를 밀라노에서 버리고 와서 후회 한 적도 많았는데 그래도 머리병은 가벼워지고 수면도 좋아져서 치유의 목적은 조금 이룬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도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이청준 작가님의 글, 인상적입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주신 댓글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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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16: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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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익 (210.XXX.XXX.193)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의 글을 애독하는 독자로서 느낌을 몇자 올릴까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을때 마다 마음이 정화 된답니다.
가끔씩 이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흐트러지는 감정들이 차분하게 다잡아 지지요. 무슨 연유일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가을 이어서? ^*^
그것은 선생님 개인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을 수 도 있는(그렇지만 어떤 사람에게도 일상 일어날 수 있는)일들 까지도 진솔하게 함께하여 주시는 데서 기인하지 않나 나름 생각 한답니다.

요즘 메마른 마음을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저마다 치유의 숲을 찾아가거나 명상을 하는 등 저마다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만 병든 마음의 최고의 치유제는 인간 사이의 진솔함이 처음과 끝임을 느꼈습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좋을글 많이 쓰시길 기원합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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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13: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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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3.XXX.XXX.229)
반갑습니다. 주신 댓글이 너무 과찬이신 것 같아 좀 얼굴을 붉혔습니다. 전 칼럼에 글을 크기로 했던 처음부터
결심했던 것은 솔직히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 들을 욕이 무서워서 겉치례 같은 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글은 제게 힐링 이 되기보다 오히려 찜찜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름답게 글을 쓰는 재주도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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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16: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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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co (117.XXX.XXX.117)
40 중반에 문득 거울속에 왜 저분이 여기 계시지? 했습니다. 제 얼굴이 제가 보았던 아버님의 40대 모습 그대로 거울에 투영되었던거지요. 제 처가 어느날 저에게 불평하는 듯 고집 피우는 모습이 어쩌면 지갑시(지 아버지의 사투리)닮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후자는 제 아들 이야기지요.
내가 저랬나? 생각하다가 "아 그렇구나, 삶을 살면서 아이들을 보면서 내 인생을 복습하고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예습하는구나" 점차 확신합니다.
어차피 그 디엔에이는 분명히 존재하니, 그래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은 어떻게 하셨지? 회상하면서 좋은 일은 반복되고 나뻤던 결과는 수정하면서 살면 좀 더 복받쳐 오르는 회한의 눈물은 덜 흘리지 않을까요?
저도 분명히 자신 없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보다 만나 헤어진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어느 계기에 빛바랜 사진 한장 속의 추억의 헤어진 애인 선배 친구 후배들을 보면 물 미끄럼틀 속에서 끝도 없이 추락하는 듯한 무지의 공포의 구렁텅이를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지요. 너무 무섭습니다.
파노라마 총천연색의 나뻣던 색은 지워지며 좋은 추억만을 가지고 " tears in Heaven"을 부르지요. 그때 분명히 만나 뵐수 있을테지까요.저도 제 아버님을 그 때 꼭 뵙고 그 말씀을 꼭 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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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16: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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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3.XXX.XXX.229)
Tears in heaven 이란 노랠 한동안 자주 듣고 좋아도 하며 슬퍼한 적도 있었습니다 . 그 내용이 아름답고도
처연해서지요.
세월 앞에선 누구나 겸허해지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서 또 내 부모들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는 게 사람의 헌 평생.
주신 댓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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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16: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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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 (110.XXX.XXX.177)
아름 다움 마음을 나누고 싶어도 나눌수 없었던 인간관계가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풍경을 보니 캐나다의 자연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힐링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않은 나이 이시니
아름답고 행복한 앞날을 맞이 하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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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15: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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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3.XXX.XXX.229)
검사합니다
이제 캐나다는 깊은 가을이 되었습니다 길고 긴 겨울을 견디면 튤립이 피는 오월이 온다는
기대로 눈과 추위를 이겨야 헐 것입니다..
견디는 만큼 봄의 환희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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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0 16: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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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거사 (175.XXX.XXX.174)
여성은 아니지만 우리 여성 세계의 한 단면을 보면서 가슴이 아려옵니다.
인간은 무엇이며, 타인과 함께 사는 것은 무엇이며, 친부모 시부모는
무엇이 다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이란 것, 가까이 있는 듯하면서도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연륜일까요?
이 모든 걸 녹여내는 것이. 아니면 정성과 인내를 겪은 후의 평정심일까요?
많은 걸 생각나게 하는 깊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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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2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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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78.XXX.XXX.233)
감수성이 예민하신 거사님,
보통 한국의 남정네들이 느끼지 않는 것조차 느끼며 사시는 것 같습니다.
많이 헤아려 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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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06: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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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근 (112.XXX.XXX.20)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년이면 60인 기업체 사장입니다.
"기다림과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진리다"라는 말씀 참으로 와 닿습니다.
좋은 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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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11: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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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78.XXX.XXX.233)
통기타 세대가 어느덧 육순의 나이를 지났습니다.
그래도 현대교육을 충분히 받았다고 자부하는 세대인데도 받은 교육만큼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살아보니 그렇습니다.
주신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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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06: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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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82)
진솔한 글입니다.
미움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나이가 있나봅니다.
뜨거운 열정이 삭아 스러져 드는 연령이 되어야 아는 폭넓은 이해심이 반가운 손님으로 내 안에 편히 자리잡고 있는 듯 싶습니다.
감정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섬세히 묘사해 주셔서 나를 작게나마 비춰보는 거울이 됨니다.
앞으로라도 덜 얼룩이 지려고 애쓸 마음이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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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9: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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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78.XXX.XXX.233)
차덕희 선생님
또 감사합니다. 항상 글을 올릴 때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은 적이 많은데 주신 댓글에 잠시 위안을 갖게 됩니다.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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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7 06: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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