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 인원 476명, 구조 172명, 사망 294명, 실종 10명. 그 마지막 10명의 실종자를 찾아 수중을 헤맨 지도 벌써 두 달입니다. 그러나 지난 7월 18일 이후 현황판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진도군 팽목항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을 포기하고 바다에 넋을 빼앗긴 듯 끝없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명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던 광화문 일대에서는 오늘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해자 가족들과 지지자들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별법 제정에 지혜를 모아야 할 국회는 줏대 없이 주위 눈치만 보느라 끝 모를 표류 상태입니다. 특히 유족의 뜻을 앞세웠던 야당은 두 차례 여당과 이루어 낸 합의안이 번번이 유족들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자중지란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암초 위에 걸터앉아 난파된 모양새입니다. 이제 여당은 협의는커녕 맞서 싸울 대상조차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특별법에 앞서 상임위를 통과한 민생 법안만이라도 우선 처리하자던 움직임조차 엉거주춤 정지된 상태입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지금 고장 난 벽시계처럼 세월호 침몰 시각에 묶인 채 꼼짝 못 하고 멈춰 서 있습니다. 불행한 날짜의 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된 탓이겠지요. 아니면 너무 무리한 요구 탓일까요. 최근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훼손되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습니다. 무분별하게 내걸린 현수막, 거기에 불만을 쏟아낸 사람들의 비뚤어진 소행. 단식이라는 피해자 가족과 지지자들이 선택한 과격한 투쟁 방식을 비아냥거리듯 폭식 행사도 벌어졌습니다. 뜻밖에 세월호특별법 제정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현수막이 아니라 민심이 찢어지고 여론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달에는 참극을 당한 단원고의 소재지 안산에서조차 세월호 현수막들이 잘려나갔습니다. 경찰에 붙들린 사람들은 “우리도 서명운동하고 촛불시위도 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쁜 영세 상인들에게 가라앉은 경기, 세월호에 몰입된 현 상황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는 지난 14일 여당이 우선 처리를 요구하는 민생 법안을 “서민들에게만 세금을 많이 내라는 것,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의료비 폭등 우려가 큰 의료 민영화를 하려는 것”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런 거짓 민생 법안에 앞서 진짜 민생 법안인 ‘유족이 원하는’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요 대학교를 돌며 국민 간담회를 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취한 자세로는 ‘나가도 너무 나간’ 느낌입니다. 이런 정도면 하나의 정치집단 수준의 활동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온 국민의 동정과 위로를 받던 이들이 맞나, 의아해집니다. 그런 요구와 주장이 과연 다수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더 큰 사회 분란을 불러오지는 않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의 당초 취지는 단순히 사건의 진상 조사, 피해자 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세월호 침몰과 같은 미개하고 황당한 사고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논의의 초점은 책임 규명과 피해 보상에 있는 듯합니다. 그마저도 당내 추인, 피해자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해 파기된 상태지만 피해 당사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입법 절차가 합당한 것인지, 또 그런 절차를 거쳐 합의된 법안이 다수 국민이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수준일지도 의문입니다.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놓은 초안에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위원회 구성, 희생자 전원 의사상자 대우, 유족에 대한 생활․의료지원, 피해 학교 소재지 안산시의 교육특별구 지정, 사고 발생지 진도 군민 생활 지원 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진상규명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몰아주어야 한다는 게 피해자 가족들의 주장입니다. 수사권은 범죄 혐의 유무를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기소권은 범죄 혐의에 대한 처벌 수준을 판단하고 유죄 판결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권한들을 한 손에 틀어쥐게 될 경우 발생할 수도 있는 위법성, 부당성에 대해 야당은 눈을 감고, 여당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법치를 주장하는 이들의 비판입니다.

최근 인터넷에는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안이라며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 생활지원 및 의료 지원, 정신건강 치료를 위한 트라우마센터 설치 운영, 자녀에 대한 교육 지원, 단원고 교육 정상화 지원 등의 내용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또 희생자 추모공원과 추모비 건립, 국가 추념일 지정, 피해 학생의 대학 입학 특례전형과 수업료 경감, 유가족의 공무원 시험 가산점 부여, TV 수신료와 전기․수도 요금 등 공공요금 감면, 각종 세금 감면, 교육비 지원 등 출처불명의 법안 내용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일부에서는 ‘유족 평생 보장법’이라는 비아냥과 비난이 일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번지면 여야는 특별법 제정에 앞서 피해자 가족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을 이해․납득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세월호특별법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더욱 심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특별법이라면 차라리 만들지 않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뒤집힌 배의 선수(船首) 밑 부분이 바다 위에 동동 뜬 섬뜩한 광경과 함께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45도 이상 기울어진 뱃전에서 소방호스를 던져 학생들을 건져 올리며 구조활동을 펼쳤던 파란 바지의 구조자 김동수 씨의 방송 인터뷰 장면입니다. “그 광경을 안 본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아저씨,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기다려주세요' 라고 했는데…” 하며 그는 오열했습니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배에 남겨진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인터뷰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울었을 겁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비겁하게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 말고는 온 국민이 일심으로 조난자들의 생환을 염원했습니다. 참극이 벌어진 후에도 목숨을 바쳐 친구를 구한 학생, 교사, 선원들의 영웅담을 전해 들으며 애통과 감동의 눈물을 함께 흘렸습니다. 그러던 우리 사이에서 지금은 파열음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온 국민이 슬픔을 함께하고 위로하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이제 서로에 대한 못마땅한 눈빛이 갈수록 사나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적, 국민적 재난 앞에서조차 마음이 합쳐지지 못하다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그만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비극의 현장 팽목항에서 '깊은 슬픔을 넘어 분노하라'며 분란을 조장하는 전단을 돌리던 음험한 정당, 사건만 나면 달려 나가 깃발을 흔들고 촛불을 켜고 거리를 누비던 무리들, 우리 사회에 불만과 증오의 씨앗을 퍼뜨리고 다니는 소수의 장난에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월호 사고 직후 우리나라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일본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66, 전 아사히신문 주필) 씨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이 이런 나라였나.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 누구보다 한국인들 스스로가 가장 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기회를 준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의 손으로 사회를 재건할 수밖에 없다. … 3년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절망한 일본에 한국인들은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었다. 우리는 지금 답례를 하고 싶다. 한국이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