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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임철순 2007년 09월 19일 (수) 10:36:03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나이 50이 넘거나 직장에서 물러난 뒤 카메라를 친구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은퇴한 고위 공직자, 유수한 기업의 CEO가 사진 전시회를 하거나 자신의 작품으로 달력을 만들어 돌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골프나 등산에 목숨 건 것 같던 사람이 이 두 가지를 졸업하고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경우도 보았는데, 카메라를 메고 산으로 들로 다니다 보면 등산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왜 사진을 찍는가, 그런 사람들마다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나는 왜…그런 것과 비슷한 질문입니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남짓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여러 사진전에 입선해 주위 사람들은 물론 자신도 놀라고 있습니다.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라는 이메일을 보냈더니 “무슨 시험문제 같다야” 하면서도 성실하게 답을 써 보냈더군요. 다음은 그의 답안지입니다.

1.사진을 배우게 된 동기: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사진을 잘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음. 취미로 등산 여행을 자주 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머리 속에 담아 두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내재된 예술적 기질이 튀어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쩝! 지 재능이 대단한 줄 아나 본데. 그렇다고 해 두지).

2.나는 무엇을 찍고 싶은가:생업에 열중하는 사람들 모습(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더라).

3.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뭐가 좋은가:1)사물이나 현상을 나만의 시각으로 순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 2)아름다운 경치를 자주 접할 수 있음 3)목표가 뚜렷해짐(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꿈) 4)여러 명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같은 대상을 찍어도 각각 다른 결과를 얻는 묘미가 있음 5)하루 종일 좋은 사진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 6)번거로운 일상과 불필요한 잡념, 무의미한 대화 등등에서 벗어날 수 있음 7)젊은 동호인들과 어울리니 몸과 마음이 늙을 틈이 없음(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삶의 활력소가 됨) 8)다음에는 뭘 찍을까 하는 설레임이 항상 기분을 좋게 함 9)찍어온 사진이 의도한 대로 표현되거나 생각지도 않은 좋은 사진이 나왔을 경우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질문은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였습니다. 사실은 이게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그의 답은 이렇습니다. 1)내가 살아온 인생의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어차피 여행을 자주 다니는데 기념사진을 남겨야지) 2)사진작가 자격을 얻기 위해(입문 후에 생긴 욕심이지만) 3)여생을 걸고 도전해도 끝을 볼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4)아름다움은 처음 발견한 자의 몫이기 때문에.

반쯤은 장난 삼아 이메일로 심문을 했다가 답장을 받고 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 만큼 그의 답은 진지했고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아름다움은 처음 발견한 자의 몫이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 무엇이든 한 가지에 정통하면 그 도(道)가 무엇에든 두루 다 통하고, 무엇이든 한 가지를 골똘히 생각하면 삶의 철학이 정리되는 법이지. 그 친구의 삶은 물론 나와의 우정이 더 든든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고교 동창회 사이트의 홈페이지에도 비슷한 질문을 올려 보았습니다. “친구 여러분, 나는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왜 나이가 들수록 사진 촬영을 좋아할까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토론 좀 해 보자고 그랬습니다.

1)카메라를 들면 안전하다(나는 안 찍히니까):나는 안심하고 피사체를 관찰하는 사람. 그러니까 의사(pseudo) 신(god)이 되는 거지. 카메라를 통해 내 삶은 수동에서 능동으로 바뀌는 거야. 2)그까이 거 조금 있으면 죽을 목숨, 이런 거 저런 거 기록이나 해 두자:죽으면 썩을 삭신 아껴서 무엇하리? 내 기록이 역사와 민족을 위한 자료가 된다면 더욱더 좋고. 3)뭐든지 찍어 두면 돈이 될지 모르잖아?:노후에 돈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어? 엽기사건의 현장을 찍어서 팔아 먹어 볼까나? 파파라치가 될까나? 4)골프보다 돈 덜 들고(진짠가?) 등산보다 안 심심하고 술 덜 마시고:일거삼득 쯤 되는 거 아니야? 5)무엇이든 내 손 안에 넣고 싶어:곰작마랏! 너희는 모두 체포됐다. 카메라에 찍힌 것은 무엇이든 ‘동작 그만’이야. 모든 게 정지하는 거지. 6)우리 학교에 유명한 사진작가 선생님들이 있었어:근묵자흑(近墨者黑). 먹 가까이 있으면 검어진다고 여러 명이 물든 거야. 7)카메라에는 하느님이 들어 있지. OOO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잖아? 하느님의 오묘한 역사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실제 모습과 촬영된 모습, 두 겹으로 음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8)무엇이든 취미를 가져 봐. 여생이 즐겁지:특히 누드 사진 찍을 기회도 있을 거고 이쁜 여자들과도 만날 수 있고 사진 가르쳐 준다며 주물럭 주물럭도 하고, 작업 걸어서 진도가 잘 나가면…으흐흐흐.

이렇게 여덟 가지를 써 올렸더니 와글와글, 재미있는 덧글 댓글 덫글이 여럿 붙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남들이 못 본 것을 혼자서 찾아내는 기쁨을 이야기했고, 자기가 느낀 것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본능을 거론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치과의사인 친구는 첫째 쉽다(누르기만 하면 되거등), 둘째 편하다(디지털 덕에 찍어도 돈 안 들고 싫으면 안 뽑으면 되고 마구 지울 수 있고), 셋째 그래도 창작의 쾌감은 있는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학교수인 친구는 첫째 뷰 파인더를 통한 PEEP SHOW와 호기심, 둘째 습관성 중독증. 무의식 중에 그냥 누른다, 셋째 그 동안 먹고 사느라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귀해 보인다, 이렇게 분석을 했습니다.

2004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사진을 찍어온 친구는 골프를 연 40회 이상 치다가 지겨워져 연 150회 정도 안 가본 곳 없이 등산을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답니다. “야생화도 찍고 지나가는 아지매도 찍고…. ㅋㅋ. 어쨌든 움직여야 건수가 생기고 재미가 붙지, 앉아 있으면 8번 할 수 있는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이 “맞아. 니는 8번 때문에 사진 찍으러 다니는 거 맞아” 그러면서 놀렸는데, 8번은 앞에서 내가 말한 주물럭 주물럭 으흐흐흐, 바로 그겁니다.

나는 또 어느 술자리에서 사진이야기를 했다가 재미있는 분석을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세상을 나누어 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나누어서 본다,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는 틀을 새로 만든다는 말인 것 같고 좀더 자세히 본다는 말인 것도 같았습니다. 무심하게 전경(全景)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부분이라도 자세히 사물과 풍경을 응시하는 것, 그게 세상을 나누어 보는 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나도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것 말고도 사진을 찍는 이유는 더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어쨌든 사진을 찍는 여러분,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십시오. 많이 보고 많이 남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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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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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ddulnal (168.XXX.XXX.66)
dma=음,,,좀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 같네요.
그런데 과연 "아름다움은 처음 발견한 자의 몫"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름다움은 느끼는 자마다의 몫"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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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09:47:16
0 0
이용백 (211.XXX.XXX.130)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다가 보니 사진을 쉽게 쉽게 찍어대는 버릇이 생기더군요. 그전에는 필름값이 아까워 한장 한장 심혈을 기울였더랬는데 필름값이 안드니 설렁설렁... 작년엔 단풍든 설악산을 300여장 찍어 왔는데 건질만한 사진이 단 한장도 없어서 심란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 무언가 남길 수 있다는 착각때문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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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0 09:00:03
0 0
옵저버 (211.XXX.XXX.13)
사진을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 삼는 소수를 제외하면 대개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삶의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나이든 이들은 나이든 이들대로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 삶에 충실하고 되도록 적게 남기고 사라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발 아무 때나 사진기 좀 들이대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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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22:56:57
0 0
노재천 (59.XXX.XXX.143)
모처럼 컬럼을 끝가지 앍었네요. 언제부터인가 1편만읽고 말앗는데
추석도 얼마남지않아 마음이 동했나봅니다.
사진에대한 여러글 재미있었습니다. 과거 20년전 사진찍는다고 쏘다니다 이제는 멈쳤는데 새삼스럽습니다.돌아가는 세상이 희안하네요. 사진처럼 정확히 밖혀 나오는 세상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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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19:27:14
0 0
우태성 (211.XXX.XXX.141)
구수한 얘기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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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13:36:3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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