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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의 세습 VS 권력(權力)의 세습
박상도 2014년 10월 03일 (금) 04:20:38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창덕궁 앞에 역문관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장안에 이름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주를 보던 곳입니다. 이 역문관의 주인인 류충엽 씨가 쓴 <제왕격 사주 굶어죽는 팔자>에 ‘사주유전’이라는 글귀가 나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딸의 사주를 보여주었는데 그녀가 살아온 삶의 신산을 알고 있었던 류충엽 씨는 속으로 그녀의 딸만이라도 ‘사주가 좋았으면’하고 바라며 사주를 풀어봤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제는 그만 부귀영화를 누려도 좋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식이네 손주네 하며 작명을 요청하며 내미는 사주는 왜 그리도 하나같이 좋은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사주가 유전되는 이유는 종자 때문일까요? 부모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리며 살 수 있다면, ‘부자는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나왔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주유전’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너무도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갖게 되고 못 가진 자는 더 궁핍해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자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맞나 보구나!”하는 한탄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도 개인의 능력에 의해 계층 간 이동이 수월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기에는 사회의 계층간 이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부두에서 하역 작업을 했던 노동자가 굴지의 재벌이 되었고 호떡을 구워 팔던 청년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우리를 이만큼 살게 해준 앞선 세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가 이분들의 세대에서 끝이 난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21세기 자본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부의 불평등은 돈이 돈을 버는 속도 즉,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거의 항상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에 허덕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가 부를 쌓게 되면 신 계급사회인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며, 이 세습자본주의는 능력주의 가치를 훼손해 건강한 자본주의를 좀먹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을 오늘날에는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마라’로 바꿔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탐욕스럽게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일침입니다만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경제적 살인에 해당하는 아픔을 겪은 우리에게는 뜨끔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최근 한국 노년층의 자살이 4배나 급증한 것도 경제적 살인을 방치한 결과입니다. 현 정권이 ‘경제 민주화’와 ‘민생’을 외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서민들 가계의 주름살이 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풀리고 경제가 원만히 돌아가게 된다면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좀 나아질까요? 사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지난 몇 년 간 우리 경제는 완만하게나마 성장해 나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몇 년째 서민경제 활성화를 외치는데도 서민경제에 찬바람만 분다면 정부의 힘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정부의 의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혹시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생각들이 정부의 의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거대 자본의 힘이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영주의 아들은 영주가 되었고 농노의 자식은 농노였으며 왕의 자식들은 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는 하늘이 정해준 당연한 결과로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권력과 신분의 세습을 용납하는 곳은 지구상에 몇 곳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권력의 세습은 악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부의 세습은 당연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한 꺼풀만 뒤집어 보면 거대한 부는 그 자체가 거대한 권력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아들은 자동으로 대통령이 될 수 없지만 재벌의 자손은 재벌이 됩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만 재벌은 회사가 존재하는 한 종신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권력에 대해서는 수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견제장치를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금력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피케티는 글로벌 자본세와 최대 80퍼센트에 이르는 누진적 소득세를 통해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적인 접근만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달콤함에 젖어 있는 가진 자들의 저항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피케티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역사는 지금도 전진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만, 미래의 어떤 날에 우리 후손들이 “옛날에는 부가 세습되던 말도 안 되는 시대가 있었대.” “야, 그때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거지?”하며 우리를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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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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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대 (211.XXX.XXX.12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건강하고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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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09: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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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14.XXX.XXX.133)
옛 선조들이 말씀하기를 富는 삼 대를 잘이어 갈 때 만이 후손이 富를 누리며 지내겠지만 현대는 기업으로 인해 富가 세습되어지는 것은 지당한 일로 보여집니다 .
富의 세습엔 관심과 흥미가 없지만 기업에 속한 자들을 생각하고 일자리가 늘어나서 많은 자들이 일하는 만큼 잘사는 법을 습득했으면 좋겠습니다 .
예전에 부모 말씀이 생각납니다.
"가난하다고 절망하여 버는 것 다 지출말고 굳은 땅에 물이 고이듯 알뜰살뜰 검소하게 평생 살면 분명 가난을 극복하고 잘 살게 된다"정말로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권력 세습에 가장 불쾌하고 기막힌 자는 바로 북의 金氏 일가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
권력만큼은 절대 세습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
지방자치제로 인하여 간혹 원로의원이 사심으로 지역구를 자신의 텃밭으로 착각하고 자식을 후보자로내고 계승 안주하려는 볼상 사나운 일도 있지만
민심은 천심이라 세습은 끝장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누구나 富와 권력을 누리고싶은만큼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는 분명 이루지 않을까요 ?...
박 상도 아나운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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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7 17: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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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례 (211.XXX.XXX.222)
선생님의 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세월 많이 진일보한 측면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제도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양극화의 문제와 교육문제가 그 중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의 분배는 결국 어떤 정책을 입안하느냐의 문제입니다.즉 국가정책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제도인 것이죠.
기업에 대한 특혜나 조세문제를 다수(국민)의 입장으로 채택한다면 북유럽처럼 수평적인 사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경제성장에 목 멜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입니까.
이제는 천천히 국민이 피로하지 않게,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50대인 저의 삶을 보더라도 결혼22년 동안 전업주부로 3년6개월 빼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2명의 자식 학원비에 노후 준비도 못하며 제대로 나의 삶을 누리지도 못하고 허덕허덕 살고 있습니다.
미대를 지망하는 딸은 학교(공굥육)에서 어떠한 조언이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이 미대입시 전형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학생이 학원 찾아가 배우고 그 결과를 가지고 대학들은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막힌 나라입니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아이들도 부모도 평생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굴레입니다.
경제문제(농민문제)와 교육제도를 바꾸는데 행동을 해야 할 때라 봅니다. 차기 대선때는 정책을 엄격히 검증하여 경제와 교육제도를 바꾸는 정책이 출마자들이 채택하도록 국민들의 압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백마디 말보다 단 한번의 행동이라도 국민들의 뜻을 모으고 선거로 바꿔낼 수 있어야 합니다.
피케티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 선생님의 칼럼이 반가워 의견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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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1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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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근본적인 문제, 혈연에 집착하는 것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 집착이 세습을 지키는 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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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4 21: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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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이런 글을 읽고 댓글을 아니 달 수 없다고 하나 봅니다. 제 블로그에도 옮겨 가겠습니다. 방을 하나 더 들여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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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3 13: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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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123.XXX.XXX.160)
오랜만에 유충엽씨가 생각나네요. ^^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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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3 10: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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