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박상도 맞장구
     
머나먼 교육
박상도 2014년 10월 29일 (수) 00:59:01
몇 해 전,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가 당시의 학교 분위기를 설명하며 이런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요즘은 엄마들이 학생 대신 수강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아.”

“애들은 뭐하고 엄마들이 나서서 수강 신청을 하니?”

“엄마들이 수업을 다 꿰고 있어서 그래. 어느 교수는 학점을 잘 주고 어느 교수 강의는 꼭 들어야 하고 등등을 말이지."

그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긴 말이었는데, 얼마 전 방송사 기자로 있는 친구가 “요즘 엄마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수습기자들이 경찰서에 상주하면서 업무를 배우잖니? 그런데 어떤 친구는 엄마가 경찰서로 출퇴근을 시켜준단다. 그런 친구들이 제대로 기자 노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한탄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한 자녀가 야근을 하면 회사로 전화를 해서, ”왜 늦게 귀가시키느냐?”, 출장이나 연수를 가야 하면 “우리집 아이는 밖에서는 못 잔다.” 등등 도를 넘는 부모의 행동 때문에 급기야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입사원 부모들이 회사로 전화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고 하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부모의 오지랖은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도 너무 한다 싶긴 해도 여기까지는 그냥 얼굴을 찌푸리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자식 사랑이 공정해야 하는 입시 경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교사와 공모한 가짜 스펙으로 자식을 유명 한의대학에 합격시킨 어머니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남 지역에서는 다 이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갖고 이럽니까?”라고 항변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이렇게 썩었는데 왜 나만 갖고 문제를 삼느냐는 것이겠지요.

강남에는 꽤 많은 입시 컨설팅업체가 영업중입니다. 에듀푸어라는 신조어를 양산한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엔 특목중, 특목고, 대학 입시 수시전형 등등 약간의 교육열만 있어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관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디어디 컨설팅 업체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면 온갖 스펙에 대한 소개와 스펙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대학 입시를 정시모집으로 돌파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컨설팅 업체가 제안하는 스펙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경시대회는 과목별로 얼마나 많은지, 듣도 보도 못한 봉사 단체와 각종 봉사상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정부 부처의 장관 명의 또는 지자체장 명의로 수여되는 표창장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스펙에 대한 소문은 또 얼마나 무성한지 소설을 써도 동네 별로 열 권씩은 나올 겁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생각에 입시생을 둔 부모들은 가슴만 졸입니다.

초•중•고등학생이 참가하는 각종 경시대회 및 봉사대회를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곳을 보면 죄다 정부 부처 또는 산하기관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나랏일도 바쁠 텐데 아이들 스펙에 왜 그리 관심을 갖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교육이 백년지대계이니 너도 나도 관심을 갖고 인재를 선발해서 상을 주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모든 대회가 일부 교육관련 업체의 돈벌이 또는 영향력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할거면 제대로 해서 가짜 스펙을 양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작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명백한 출제오류에 대한 수정요구조차도 전임 한국 교육과정평가원장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묵살당하지 않았습니까? 교육과정 평가원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잔여 임기를 채우기 위해 전임 원장이 소송을 불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이런 분들이 우리 교육을 주무르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의의 재수생과 불합격생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고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전임 원장은 책임지기는커녕 유감표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이 또 언제 공직에 나오게 될지 두렵습니다.

언론 역시 교육 문제를 놓고 자신의 잣대에 맞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통합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한 언론사는 현 정권의 숨은 속내가 드러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얘기를 하고 또 다른 언론사는 질 좋은 교과서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에 보수 성향의 교육부 장관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합니다. 교육은 정치가 아닌데 정치논리가 앞섭니다. 무상급식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만의 싸움입니다. 정작 학부모들에게 시급한 것은 무상급식보다는 공교육이 살아나서 사교육비 부담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엉뚱한 데 공력을 낭비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학원비도 모자라 스펙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지경이 됐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 사회의 희망은 젊은 청춘들입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절대 물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젊은이들이 정의와 이상을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남이 발표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상을 받고 대신 써준 글짓기로 상을 받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한의대에 진학한 그 젊은이 같은 가련한 청춘이 많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언뜻 언뜻 들려오는 사건 소식을 접하다 보면 자꾸 회의가 밀려옵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외우다시피 공부했던 민태원 선생의 청춘예찬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상(理想)! 빛나는 귀중(貴重)한 이상! 그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特權)이다. 그들은 순진(純眞)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罪惡)에 병들지 아니하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遠大)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自信)과 용기(勇氣)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理想)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은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4·19로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선배의 뜻을 이어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젊은이들, 기성세대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그 젊은이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살다보니 세상이 그다지 녹록하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자녀들에게는 청춘의 꿈을 심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우리의 자녀들이 다들 엄마들의 치마 속에 숨어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7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김종우 (121.XXX.XXX.56)
백번 옳으신 말씀, 누가 우리 자식들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탄식이 나옵니다. 내 배 불리기 위한 교육에 우리나라의 장래를 걸어야 하다니 ----!!!
답변달기
2014-11-01 15:43:09
0 1
YK (14.XXX.XXX.143)
글 잘 읽었습니다 .
교육이 결국 이상하게 극성스런 엄마들 때문에 자녀를 교육하는 것인지 엄마가 학교를 다니는 것인지 착란 일으킨지 오래전 부터 입니다 .
89년부터 강남에서 자녀의 초등학교~고등학교 교육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부당한 점이 많아 전업주부로 안주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전직 교사로 퇴직했지만 이력서를 적어 학교장께 보낸 후 사흘 만에 연락이 와서 면담 후 바로 명예 교사직을(전교생 중 학교 부적응 아이들 모집 즉 담임이 도저히 다루지 못하는 문제아 35명을 5년간 미술,음악,독서지도 )수행했습니다.

5년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부당한 점이란 부모가 가장 문제가 있고 문제 부모의 촌지가 교사의 올바른 교육관을 무너트림과 동시에 학생을 편해하는 즉 교사의 자질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 예로 93년, 99년 졸업 때쯤 임원 대표인 아들이 임원들과 함께 담임 감사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의 엄마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
아들에게 전화를 바꿔줬더니 " 아니 아들이 아니라 어머님께 할 말이 있다고 ..."바꿔 달라고 했지만 아들은 즉시 " 제가 학생 임원 대표지 엄마가 아니라면서 ..." 아주 정확하고 똑똑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
자녀가 성장하기 위해 학교 교육을 받는데 부모가 나설 이유는 오직 따듯한 사랑으로 격려해주고 아프고 힘들 때 감싸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

필자께서 지적한 문제가 된 오늘날 교육은 이미 오래 전 부터 흘러왔다고 봅니다 .
현실 교육에 문제가 많더라도 부모들이 흔들리지 말고 바르게 자리를 지키고 살아간다면 슬하의 자녀 교육은 어떤 문제가 닥쳐도 잘 헤쳐가리라 믿습니다 .

.
답변달기
2014-10-31 13:45:48
0 0
비술시 (117.XXX.XXX.28)
베이비 붐 세대인 우리들이 물질 만능주의 세상으로 가게 했으며 거기에서 내 자식들은 도태시키지 않기 위해 이미 살아 버린 협잡하기 이를데 없는 내 경험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형상이지요. 자유 분방한 것을 접하며 올바른 인성과 풍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하는 시기에 이 강요로 애를 물질주의 세상에 딱 맞는 기계로 키우는 것이지요. 누구 욕할 것도 없이 산업화 시기를 겪으며 40년의 긴 기간을 온통 물질주의로 쓸면서 사회를 변화시킨 우리 잘못이지요. 이제라도 느끼면 아직 2~30년 들은 더 살수 있으니 그 기간동안 우리 스스로 회복시키는 노력을 사회 곳곳에서 해야 되겠지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예수 공자 석가모니 무함마드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될 우리 성장기의 그 훌륭한 학자들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다 정치를 한답시고 그 공간을 거치면서 개 돼지로 팽개쳐졌지요.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작금의 대한민국의 여러 상황을 보면 누군가 나서야 됩니다.
답변달기
2014-10-30 13:51:14
0 0
한탄강 (118.XXX.XXX.253)
미국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예체능계 대학을 지원하는 경우 실기 시범을 보여주고 학교에서는 그것을 심사해야하는데 대여섯군데를 복수 지원하는 입장에서 모두 실기 면접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더구나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여섯시간 걸립니다. 비행기타고 가서 여러 날 숙박하며 또 여러 학교에서 실기 시험을 치룰 수가 없지요.

그래서 portfolio라는 이름의 작품의 실물 혹은 사본을 제출합니다. 무용과 지망생은 무용한 것을 비디오로 찍고 미술 지망생은 그림 그린 것을 보내고 기악을 하려는 학생은 자기가 연주한 것을 CD에 녹음하여 보내는 형식입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이렇게 실제 대면 혹은 실연 심사를 하지않고 그 포트폴리오로 대신 심사합니다. 그러나 극성의 도가 지나친 일부 비양심적인 우리나라 학부형들은 미술 개인교사가 직접 그리거나 혹은 음악 선생이 직접 연주한 것 혹은 지망생 본인이 손을 댔지만 사실상 미술 혹은 음악 선생이 직접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정도의 작품을 포트폴리오로 보냅니다. 그런 작품들은 우수하게 보이니 합격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도 언젠가는 탄로가 나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줄 날이 올것입니다. 한인 학부모등이 자식이 다니는 학교 교사들에게 보석 혹은 현금 선물을 하여 문제가 된 일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답변달기
2014-10-30 02:25:50
0 0
유봉 (14.XXX.XXX.45)
자라나는 새싹들이 사회의 졸부 학부형들에 의해 전개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절망하게되는 현실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몇 십년이 지나야 정의로운 사회가 될까요?
답변달기
2014-10-29 11:53:49
0 0
꽃남 (175.XXX.XXX.124)
이 글은 우리 나라 엄마들이 꼭 읽어야 합니다. 아빠들도 엄마들한테 쥐여사는 세상에 아이들인들 오죽하겠습니까! 아빠도 엄마에게 잘 할 수 없는 말 용감하게 대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4-10-29 09:11:19
0 0
신아연 (112.XXX.XXX.157)
저는 언제나(는 아니지만ㅎㅎ) 남들에게 묻기 전에 제게 먼저 묻습니다. 너는 할 수 있냐고. 그것이 인본주의 뿐 아니라 모든 참 종교에서 가르치는 황금률이지요. 나한테 싫은 건 남한테도 싫은 것이라는.

박상도님, 부디 자녀들을 '청춘답게' 키워 주십시오. 그렇게 하고 있는 줄 잘 압니다만. (저는 그리하려는 몸부림을 심하게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가슴 뭉클하면서 가슴 아린 글 잘 읽었습니다.
답변달기
2014-10-29 07:44:04
1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