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쾌락적응
유능화 2014년 11월 17일 (월) 06:19:17
인간은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병원균이 침입하면 면역체계가 작동하여 몸을 방어하듯, 슬픔이나 공포를 경험하는 순간 여기에 적응하고 그로 인한 고통과 충격을 완화함으로써 우리의 심리적 건강을 지켜주는 면역체계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누군가가 호랑이에게 물려갔을 때, 슬픔에만 잠겨 있다면 인류는 생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심리적 면역체계는 슬픔을 완화해서 생산적인 쪽으로 다시 에너지를 돌릴 수 있도록 해주는 생존의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심리적 면역체계가 나쁜 일만이 아니라 좋은 일에 대해서도 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내 집이 생기고, 처음으로 승진하고, 첫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는 그 기쁨에 취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며칠, 몇 주, 몇 달이 흐르면서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것에 적응하고 맙니다. 이제는 그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어서 눈앞의 성취가 시들해지고, 다시 비슷한 정도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해져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찾아 나섭니다.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 47, 미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것을 ‘쾌락적응’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얻으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고, 무언가를 잃으면 영원히 불행할 것처럼 생각하는 신화가 작동하는 것은 사람의 이런 '쾌락적응'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 번의 요란한 잔치보다는 여러 번의 괜찮은 식사가 좋고, 결합된 경험보다는 분리된 경험, 즉 좋아하는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서 보기보다는 매주 한 편씩 보는 편이 정서적 혜택이 더 크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습관은 만족을 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돈도 덜 듭니다. 왜냐하면 긍정적 경험을 음미할 때 제일 좋은 것은 짧은 첫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든, 안마 의자에 30분을 앉아 있든, 맛있는 레몬 케이크를 한 조각 먹든 우리는 1분, 1시간, 1주일이 지날 때마다 쾌락 적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동일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휴지기가 있다면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소비를 작은 규모로 나누고 시간 간격을 두어 분할한다면 그런 ‘첫 순간’을 많이 만들 수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기쁨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한 연구자는 영국의 모든 소득 수준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돈이 적게 드는 호사(피크닉을 가거나, 비싼 커피 한 잔, 또는 좋아하는 DVD를 구매하는 등)를 자주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승진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새 차를 사면 기분이 좋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 기분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승진과 새 차와 새 아파트 구입 같은 큰 사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소한 일상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의 삶입니다. '쾌락적응'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훨씬 경제적이고 많은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기쁨만이 기쁨이 아니죠. 작은 기쁨의 합(合)이 큰 기쁨보다 큽니다. 대박의 기쁨만을 추구하다가는 쪽박의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는데, 오늘은 유난히 커피가 더 맛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행복과 커피를 마시는 행복이 어우러져 행복의 합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쾌락적응 현상’을 알면 알수록 우리네 삶이 좀 더 단순하고 힘이 덜 들 것을 확신합니다.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꼰남 (175.XXX.XXX.124)
맞습니다. 대박 치려다 쪽박 차는 거 많이 봤습니다. 소박한 게 더 알차고요. 큰 행운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일생을 더 윤기있게 만들어주지요.
답변달기
2014-11-17 09:12:38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