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나이 지긋한 현장기자를 보았으면
허찬국 2007년 09월 27일 (목) 01:43:05

얼마 전 ‘자유칼럼’이 미국 뉴욕의 금융가 사람들은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뉴욕타임스보다는 월 스트리트 저널을 즐겨본다고 소개한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RB) 이코노미스트였던 필자도 사무실에서 월 스트리트 저널을 주로 보았고 뉴욕타임스(이하 타임스)는 집으로 배달되는 주말 판을 보았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 신문의 주말판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타임스 주말판은 상당히 읽을거리가 풍부합니다. 자연과학 현상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면 제가 어릴 적에 이렇게 재미있게 쓰인 과학교과서를 접했더라면 소년기에 꿈꾼 대로 과학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타임스를 읽습니다. 그때마다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엉뚱하게도 그들 이름에 익숙해지게 된 것은 신문기사 필명이 아니라 미국에 살던 시절 많이 보았던 미국 공영방송 PBS 프로그램을 통한 것입니다.

그 기자들 가운데 한사람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The Lexus and the Olive Tree)와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입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이후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90년대 타임스의 워싱턴 지국장이었던 기자였습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PBS의 금요일 저녁 시사 프로그램인 ’워싱턴위크‘(Washington Week)에서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한 주간 워싱턴에서 벌어진 주요 이슈들을 4~5명의 전문기자들과 사회자가 한 시간 가량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프리드만이 여러 해 고정 출연했습니다.

당시 출연자 절반 정도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유명 일간지의 워싱턴 특파원 베테랑 기자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앉아 진지하게 설명하던 숱이 많고 검은 머리와 콧수염을 기른 프리드만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렇게 10여 년 가까이 보았기 때문에 그 이후 그의 책을 읽노라면 어떤 부분은 그의 육성으로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당시 즐겨보던 그 프로그램의 사회자는 폴 듀크라는 원로 언론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2005년 78세로 타계할 때까지 20년가량 그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폴 듀크가 그랬듯이 지금 50대 중반인 프리드만도 별일이 없다면 앞으로 20년 넘게 더 현역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한 사람의 기자는 대법원담당 기자인 린다 그린하우스 (Linda Greenhouse)입니다. 이 여기자 역시 PBS의 주간 시사 프로그램과 저녁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얼굴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의 주된 진행자들도 역시 1975년 이후 뉴스의 진행을 맡아온 동네아저씨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5분 정도로 뉴스보도를 마치고 나머지 시간은 주요 인터뷰나 몇 가지 이슈에 대한 심층보도나 대담으로 진행됩니다.

판례 중심 사법체계인 미국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대개 큰 뉴스가 됩니다. 대법원 담당 기자였던 그린하우스는 대법원 주요 판결이 있을 때면 그 뉴스프로그램 또는 주간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판결의 배경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린하우스는 1978년 이후 지금까지 대법원을 취재한다고 합니다. 예일대 로스쿨 출신으로 그 동안 대법원 관련 책도 발간했으며 1998년에는 보도부분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타임스에서 그녀의 기사를 볼 때면 얼굴의 절반쯤 차지하는 큰 안경을 쓴 단발머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10, 20년 후에도 그녀가 쓴 기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대법원 판사들도 종신직이어서 30년가량 재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사실도 생각나는군요.

미국도 젊고 역동적인 국가입니다. 이런 미국사회의 구석구석은 발랄한 젊은이들과 함께 경험과 고뇌가 축적된 중후한 중장년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에 온 이후 일 때문에 기자들을 종종 만납니다. 한국기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예외 없이 젊다는 것입니다. 나이 40 줄만 되어도 현장취재 기사가 아니라 칼럼을 쓰는 것이 관행인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이와 능력이 비례하지 않지만 한 분야를 바라보는 오랜 관찰과 고민은 체계적 교육의 최종학위보다 더 갚진 통찰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대학원시절 경제학 공부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경제현상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절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경제 이슈에 대한 이해보다는 공무원들의 고시 기수나 인맥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더 중요한 실력으로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언론 분야만이 아니겠지요. 저의 전공분야에서도 젊은 박사들이 언변을 이용하여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긴 시간을 통해 숙성된 전문성으로 이어지는 풍토가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 빨리 성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대기만성형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문에서 19년간 미국 CBS 저녁 뉴스 앵커를 맡았다가 1981년 은퇴했던 월터 크롱카이트가 90이 넘어 현역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읽었습니다.

경험이 축적되고 전문성으로 알찬 원로기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거나, 그들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이 일종의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로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관행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치를 누리고 싶습니다. 제도와 관행 때문에 우리의 전문가들이 무모하게 늙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아쉽기 때문입니다.

 허찬국(許贊國):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경제연구본부 본부장. 198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Barbar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급준비은행 조사부와 연방지급준비제도 이사회(FRB) 국제부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국내에서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과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과 금융감독원 거시금융감독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진경영 (222.XXX.XXX.193)
저는 사회복지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설장으로 지금 3년째 종사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영역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오래도록 종사해서 노하우를 갖고 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함에도 자기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급여가 적어서, 적성에 맞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입니다. 열정을 갖고 일하는 모든 분들이 한 분야에서 건강한
답변달기
2007-09-27 12:26:20
0 0
이석봉 (123.XXX.XXX.58)
언론인 출신이고, 현재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으로 구구절절이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도 현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늙어서도 글을 쓰고 싶어 사업하는 역설을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하나는 기자에, 하나는 조직에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들은 공부하지 않습니다. 조직은 기자를 키우지 않습니다.남탓하기에 앞서 기자들의 자기 고민이 먼저 있을 필요를 느낍니다.
답변달기
2007-09-27 09:48:19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