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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대형 교회
신아연 2014년 12월 24일 (수) 07:00:16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년 만에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두 번 모두 성탄절 즈음에 말입니다. 과자나 떡을 얻어먹으려고 일부러 날을 잡은 건 아닙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집에서 걸어 3분 거리에 교회가 있었던 겁니다. 제가 사는 곳은 서울대학교 밑, 일명 ‘고시촌’입니다. 교회 이름도 이와 유사하게 ‘대학촌 교회’인데 마침 올해가 창립 40주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내 발로 찾아간 건 아니고, 4년 전 서울대에 교환 학생으로 왔던 저의 둘째 아들을 유난히 챙겨주신 종교학과 교수 한 분이 그 교회에 다니는 인연으로 그리되었습니다.

관악산 끝자락 등성이를 뒷마당 삼아 인근 주택과 담을 나눠 아담하고 소박하게 자리 잡은 교회, 일가 같은 교인들이 좁다란 공간에 어깨를 부딪치며 예배를 드리는 곳에 저도 끼었습니다.

초등학생 예닐곱 명이 맨 앞줄에 앉아 시내에 자갈 구르는 소리로 ‘아기예수’를 찬송하고 그 뒷줄에는 청년도 있고, 나 같은 중년도 있고, 장년들도 계시고, 노년의 모습도 두루 섞여 있었습니다. ‘큰 교회’ 분위기에만 젖어 있다가 두레상 앞에 옹기종기 모인 한 가족처럼 정겹기 그지없는 광경이 생소하기조차 했습니다. 예수님이 두 팔에 보듬기 딱 좋은 크기와 따뜻한 정서를 가진 교회입니다.

지인을 따라 이른바 강남의 대형 교회라는 곳엘 간 적이 있었습니다. 호화찬란한 외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초동 ‘사랑의 교회’를 예로 들면 그만이지 더 말해 봤자 숨만 가쁠 뿐입니다. 다른 강남 교회들은 “둘째가라” 해서 미안하지만요.

외관은 그렇다 치고 교회에서 목사 얼굴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목사 얼굴 보는 것은 고사하고 예배당에 들어가지도 못해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스크린 '중계'를 '시청'했습니다. 목사 얼굴 볼 수 있는 곳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1시간 전에 와서 줄을 서야 한다니, 조조 상영 극장도 아니고 매주 할 짓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불경스런 말이지만 어차피 같은 예수님 만나러 가면서 내 돈(헌금) 내고 문전박대당하는 짓을 왜 사서 한답니까. 내 보기엔 아마 예수님도 문전박대당하지 싶습니다. 목사들 퍼런 서슬에, '삐까뻔쩍' 교회 외관에, 먼지 묻혀 돌아다닌 더러운 맨발로 어딜 감히 들어가신단 말입니까. 더구나 목사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닌다니 예수님도 그네들 얼굴 한 번 못 봤을 겁니다. ‘예수 빼고’ 다 있을 것 같은 게 강남 뿐 아니라 이 나라 대형 교회들에 대한 제 꼬인 심사입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주체 못할 정도로 넘쳐 납니다. 회사로 치면 대기업을 동경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할까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중소기업 사원 앞에서 뻐기고 싶은 것처럼 대형 교회 신자인 것이 남들한테 말할 때 훨씬 ‘폼’나기 때문이겠지요.

‘대학촌 교회’도 처음에는 서울대 생이 주로 다녔지만 요즘 서울대 생은 강남으로 간답니다. ‘개천 용’이 거의 사라진 후 서울대 생의 거개가 강남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현상일 테지만 신림동에 사는 학생들도 강남 쪽 교회로 ‘빠진다’는 것이지요. 지난 40년간 '대학촌 교회'가 서울대 기독 학생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을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요즘 유행하는 ‘갑질’에 교회가 선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들이 함께 여행을 갈 때도 '큰 교회'에서 경비를 대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갑을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늬앙스의 말을 ‘작은 교회’ 목사를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유 없이’ 싫다면 실은 ‘이유가 있는’ 거라고 하지요. ‘투사(投射)’라는 것 말입니다. 어떤 개인이, 어떤 조직이, 어떤 부류가 ‘죽도록’ 밉고 못마땅하다면 바로 그러한 요소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상대에게서 발견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불편해지는 거라네요.

‘땅콩 회항’으로 재벌에 대한 증오심에 겨워하면서도 ‘조현아 땅콩’이 동이 나는 걸 보면 내심으론 재벌이 부럽고 질투난다는 것 아닌가요? 나도 재벌이 되고 싶으니까 재벌이 그렇게 밉고 그 미운 재벌이 욕을 당하니 ‘땅콩’ 씹는 맛처럼 고소한 거지요. 마찬가지로 대형 교회를 욕하면서도 대형 교회를 다니고 싶은 한국 기독교인의 심리를 대형 교회 목사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부풀려 나가는 데 거침이 없는 거겠지요.

또다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다 했으니 적어도 성탄절 하루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갑질’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옹졸한 생각을 품습니다. 교회 규모에 관계없이 예수님 계신 곳이 ‘갑’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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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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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경 (112.XXX.XXX.157)
샬롬~~~
예수님이 안계시는 "예수교회"가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거짓 지도자들이 엄청난 수의 무리와 금력을 내세워
세상권력과 결탁해 사회악을 부추기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지요.
어느때보다도 선량한 성도님들께서 신앙생활하시기 쉽지 않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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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6 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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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222.XXX.XXX.75)
정말 님의 말씀처럼 "꼬인 심사"로 글을 쓰신 것 같습니다... 글의 대부분은 동의할 수 있습니다만 대형교회에서 1시간을 먼저 와야한다는 말씀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대개 예배와 예배 사이가 30분 정도의 시차가 있을 뿐인데 1시간이라뇨? 그건 맞지 않습니다. 비판을 하더라도 전체적인 기조가 맞다고 할지라도 거짓이나 비틀림이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확대,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님은 글을 왜 쓰시는지요? 자기 연민입니까? 푸념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정보를 전해주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감동입니까? 님의 글을 읽으며 대개 느끼는 감정이 '자기 연민' 내지 '푸념'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제 생각일 뿐일까요? 좀 더 건설적인 글쓰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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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0 1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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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1시간 기다린 것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니 다른 교회의 경우는 모르겠습니다. 가령 2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부 예배가 끝나기 전부터 미리 와서 줄을 서다보니 1시간이 소요됩디다. 저는 기자 출신이라 뭐든 한번 경험해 보고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어쨌든 그 사실이 제 글의 포인트는 아니니까요.

왜 글을 쓰냐고 물으셨으니,

저는 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제가 드러낸 내면이 타인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좀 기분이 좋은 일이고, 그렇지 못해도 하는 수 없는 일이지요. 님처럼 공감하지 못하겠다 하시면 받아들여야지요. 님은 님의 생각이 있고 저는 저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제가 님에게 공감을 강요할 수는 없지요. 제 글이 자기 연민이나 푸념으로 보였다면 님에겐 그게 진심일테니까요.


다만 제게 주어진 공간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 말에는 제 글이 온통 사회적 '책임'이 될 필요도 없고, 통째로 '사적인' 영역이 되지 않도록 항상 유의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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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1 09: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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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39.XXX.XXX.180)
지난 봄 교회에서 젊은이를 세우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달라기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
홍보출판부에서 ( 노인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갑론을박 끝에 없던 일이 되었다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기엔 아직 어려움이 많은 모양입니다.

.............. 제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언제 부턴가 세상의 길 위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왜 그래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서로 편 가르기를 하는데 모든 힘을 쏟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독인들도 거의 그런 모습입니다.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되었는지 지금이라도 돌아보고 새로워 져야 하겠습니다.
지난 해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기관을 이용해 불법 선거를 했고 그로 해서 국론이 분열된 상태에서 일부 기독교단체나 교회가 불법에 눈감고 두둔할 때 느껴야하는 참담한 심정은 믿지 않는 이들 앞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회들에서는 교회 세습, 재정비리, 호화 건축등 그 자체에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젊은이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예수님을 떠나는 일도 많습니다.

주님은 분명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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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8 23: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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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모르면 알면 되지만,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자괴감느낄 일입니다. 올리신 글에 저 역시 옷깃을 다시금 매만집니다.

얼마나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 내가 내 눈을 똑바로 볼 수 있는가, 저는 그것을 기준 삼습니다.

지난 한 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김윤옥님 같은 분으로 인해 지탱되고 있다는 것, 얼마나 존경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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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1 09: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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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네, 저도 보내주신 옛 성탄 캐럴 들으며 지금과는 다른 감회와 추억에 잠겼습니다. 저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성탄절이었지만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매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 이땅에 오신 것, 불의와 불평등을 아파하셨기에...그러나 어디까지나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래서 여지껏 우리를 봐 주고 계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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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11: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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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94.XXX.XXX.76)
신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사항들도 모두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갑질'이라는 말을 꼭 사용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인용부호를 사용하여 그 언어의 용법과 의미를 새삼 일깨워 주신 것이지만 몇 달 전 한글날에 즈음하여 이곳 토론장에서 멋있고 품격있는 한글을 사용하자고 이곳 필진과 독자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다짐을 했었습니다.

'갑질'이라는 말을 우리가 쓰지 않던 시절에는 같은 내용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얼마전 보도를 보면 국립국어원에서는 그간 비어, 속어 등으로 사용되던 몇가지 언어를 표준어로 편입시켰다고 합니다. 예컨대, '꼬시다' '개기다' 등등 그런 것들이라는데 언젠가는 '갑질'도 표준어로 인정될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표준어가 되었다고 하여 우리가 그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중의 한 예가 요즘 방송 드라마 등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표준어랍시고 자주 사용하는 것 같은데 듣기에 아주 불편합니다. '개기다'가 표준어가 되었다고 하여 우리가 어린(혹은 젊은) 아이들한테나 웃사람에게 "오늘 좀 개겨도 되겠습니까?"하는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갑질'이라는 언어가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상황을 아주 적합하게 전달하는 의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갑질'이라는 신조어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아주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신조어들이 넘쳐 납니다. 통신기기의 발달로 인해 축약형이나 생략형 등도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요즘의 경향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장년 세대라도 그에 동화되기 보다는 그래도 약간은 고전스러운 말을 꿋꿋이 사용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생각에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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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19: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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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실은 저도 같은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솔직히는 제목에 '낚이게'하려는 '수작'으로 '갑질'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글의 내용상 어떻게 갑질했다는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제 글을 '널리'익히게 하려는 다분히 고의성 짙은 꼼수였는데, 선생님께서 지적을 해 주셨군요.

우리 세대도 옛말을 많이 잃었듯이, 지금 세대는 우리 세대의 말을 발칙하게 뒤틀고 자르고 변형하고 변용하는, 말 그대로 언어도단을 행하고 있지요. 참으로 아픈 마음이지만, 쓰나미를 막을 수 없듯이 아픈 마음으로 지켜 볼 뿐입니다.

제 표현이 거기에 일조한 것이라면 반성하겠습니다. 수단을 잘 이용하여 목적되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욕심에 그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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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11: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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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94.XXX.XXX.166)
언어의 사용이라는 것이 마법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면, 수년전 저는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널널하다'라는 표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조어의 사용에 대하여 어느 정도 불편한 심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공항에서 탑승수속을 하면서 복도 쪽에 있는 자리를 달라고 했더니 모두 예약이 되어있어 않된다는 얘기를 듣고 약간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항공사 직원이 "오늘은 (복도 쪽 좌석은 없지만) 그래도 좌석이 (꽉 차지 않고) 널널해서 아마 편하게 가실 수는 있을 거예요."하였습니다.

제가 '널널하다'는 용법을 처음으로 직접 접한 경험이었습니다. 약 0.5초 간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그대로 자리를 떴지요. 약간 신기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언어를 나를 상대로 누군가가 사용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며칠 후 부터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널널하다'란 말을 제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널널하다'라는 표현을 하면 상대방들이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았고 저 자신도 그 말을 쓰다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몇 차례 그 말을 사용하다가 드디어는 우리 집사람한테 크게 핀잔을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좋은 말들을 다 놔두고 왜 그렇게 이상한 말을 사용해요?"

'빈자리가 많다', '좌석이 여유가 있다' 등등 그런 말을 사용하면 좋았을 것을 굳이 '널널해서...'라고 말할 이유나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행어나 신조어 같은 것은 진드기 같아서 입에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갑질'이란 말도 한 번 입에 붙으면 잘 안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평등관계의 부정적 측면을 아주 절묘하게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조어도 '질'이라는 말이 따라 붙기 때문에 언어를 순화시키고 격조있는 언어를 권장하자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에서 의견을 개진한 것입니다. 좀 고리타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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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8 03: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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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다시한번 보내주신 귀한 의견 감사합니다. 저 역시 잘못된 한글 사용에 불쾌함을 표현하고 또 옳바른 사용에 대해 신경을 쓰는 편인데도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다시금 반성하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딜레마에 빠지게 되네요...

이미 입에 붙어버린 것들, - 얼마간, 혹은 오랜 기간의 고뇌의 기간을 두었다 해도 - 그래서 무심코 사용해 버리는 것들, 마치 적군의 손에 넘어간 아군처럼, 그런 것들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의견, 생각해 보게 하는 경험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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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06: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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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일 (119.XXX.XXX.112)
분명한 것은..
성경 말씀이 잘못 되었거나, 그들이 죄를 짓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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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23: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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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더욱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에 찌든, 돈에 사족을 못 쓰는 현대 사회에 예수가 발 붙일 곳은 없다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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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8: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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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인 (112.XXX.XXX.157)
정말로 공감합니다 저도 교회 장로이지만 예수님은 이미 저 멀리 계시고

인간들 특히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부목사들은 존재가 없지요)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우스게 소리지만 실지로 강남의 대형교회에서는 평신도를 병신도라고 지들끼리

부른답니다 종교귀족들이 대형교회마다 지들만의 그룹을 만들고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갑질만 하다가는 여기 유럽 교회 같이 한국교회도

곧 노인네 몇명만 남을게 훤히 보입니다.

돈 썩은 냄새가 나는 교회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 교회로,

내 밥그릇 챙기기만 열심인 교회서 남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교회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몇자 올립니다

올해도 수고하신 모든 필진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특히 임철순 고문께

내년에도 더욱 수고 하시길 바라면서...

웨일즈에서

최명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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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23: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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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14.XXX.XXX.141)
큰 재목은 큰 그릇을 만들고 작은 재목은 작은 그릇을 만들듯이 대형교회 역시 굵직한 일을 하고 작은 교회는 작은 일을 하는 것 아닐까요 ?
그러나 반세기 넘도록 분단된 한국을 통일을 위해선 정치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능성이 있을 때 대형교회가 큰 힘을 발휘하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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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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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대형교회에 통일 사명을 기대해 볼까요? 님의 말씀처럼요? 그럼 저도 앞으로 그렇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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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8: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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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168.XXX.XXX.130)
치열한 고민이 보기좋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와 작은교회의 비교를 통한
제도권교회에 대한 비판은 이미 우리사회의
식상한 주제가 되어버렸고, 네티즌들은 이에
무반응적으로 호응하는데 열의를 보이는 면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표출하기 위한 칼럼니스트의
혜안이 부족한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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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6: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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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교회의 문제에 대해 제가 무슨 입이라도 뻥긋하겠습니까?

잘난 목회자 잘난 교회들이 즐비하니...

더구나 저는 크리스마스 교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실 뿐, 교회 건물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만은 제가 압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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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8: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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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12.XXX.XXX.157)
신아연님!

성탄을 맞아 우리 낮아집시다.

그리고 내 방을 내 놓을 마음으로 가난해져 봅시다.

얼마나 낮아져야 ‘아기예수’를 만날 수 있을 까요.



(조선일보 A32 2014년12월24일 수요일 오피니언)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 목사님의 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 몇 주 전 금요 철야 기도회 때 나환자가 고침 받는 설교를 했는데 TV 방송을 통해 본 한센인들이 문제를 삼아“한센병이나 피부 질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지 왜 나병이라는 표현을 적나라하게 사용했느냐”는 것이었다.

“목사가 강단에서 성경이야기도 자유롭게 못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낮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저녁 늦게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성탄 트리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예수님은 천상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탄생하지 않으셨던가” 다음 날 따귀라도 맞을 각오를 하고 한센인협회를 찾아가 사과를 하려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오히려 그분들이 고마워하며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분들도 설교를 자세히 들어보니 고의적인 내용은 없었고, 처음 들을 때 어쩐지 상처가 되고 섭섭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렇게 찾아와주니 정말 고맙다면서 진심으로 환대해주어 그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눈가에 눈물이 고이도록 가슴 뜨거운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나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한센병이나 피부 질환이라는 용어를 쓰겠다고 약속했다는 기사를 읽고 지금까지 나도 성경에 나오는 대로 문둥병 환자라는 말을 했던 것에 대해 조심하게 된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말 대신 ‘조현병’으로 하라는 기사를 며칠 전에 보았다. 일반인들이 입에 배인 말로 하는 것을, 듣는 입장에서는 큰 상처가 된다.

소강석 목사님이 즉시 사과를 하러 간 것이 소통이고 낮은 자의 자세라는 것도 다시 깨닫는 성탄의 메시지다.



신아연 칼럼에서 말하는 갑질하는 대형교회의 이야기가 이번 성탄절을 맞아 더 낮아져서 아기 예수님을 슬프시게 하지 않기 바란다.

아무 곳에도 아기 예수를 맞이할 방이 없다며 돌려보낼 때 말구유라도 자리를 내어 준 낮은 자의 자리로 모두 돌아가야 할 것이다.

어느 학생이 성탄절을 맞아 연극을 하면서 빈 방이 없다고 모두 돌려보내는 대목에서 각본에도 없는 말을 했다.

‘여기 내 방이 있습니다.라고 하여 모두 울면서 연극을 보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성탄의 기쁨을 찬양이나 카드나, 문자로만 주고받지 말고 낮아지는 자세를 배우는 성탄이 되어 마음에 쌓인 상처들을 깨끗이 치유받기 바란다.


‘여기 내 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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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3: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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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아, 감동입니다.


네, 더 낮아질 것도 없지만 그래도 또 한번 낮아지겠습니다.



예수님 계실 곳 없으면 고시촌 이 작은 제 원룸이라도 내 놓겠습니다.



낮아져야 그분의 치유가 임하겠지요.



낮은 곳에서 그분이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성탄절, 소리없이 빛도 없이 가장 천한 방법으로 오신 그분이 가장 높임을 받아 마땅하지만



교회의 돈 위세가 대단합니다.



사랑의 교회 앞을 지날 때면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마지 못해 '집들이'는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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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8: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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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112.XXX.XXX.157)
‘예수 빼고’ 다 있을 것 같은 게 강남 뿐 아니라 이 나라 대형 교회들......옳은 지적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부끄럽기도 하구요.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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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2: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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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초 (112.XXX.XXX.157)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장식된 도시에는 아기예수 오실곳이 묘연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마른 가난한 심령들을 찾아주실것을 기도합니다
대형교회라해서 다 문제될것은 없지요 다만 교회다운 교회...하나님이 원하는 교회에서 변질되어가는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이른바 교회의 세속화가 주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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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0: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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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123.XXX.XXX.160)
한국 개신교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겠습니까만은, 울 사회의 병폐가 오롯이 다 보여지는 곳이 그곳이 아닐까 합니다.
모쪼록 낮은데로 임하신 예수님의 삶과 행동을 입이 아닌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종교로 거듭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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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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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맞습니다. 하지만 병이 너무 깊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스스로 병든 것도 모르고 있으니.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는데, 도무지 죽으려고 안 하니, 죽기는커녕 오만무도하기가 점입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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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9: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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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나 (1.XXX.XXX.254)
일부 다른 의견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신아연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갑'을 욕하지만, '갑'을 추종하는 아이러니한 국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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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0: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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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갑과 을이 존재하되, 음양의 조화처럼 서로가 서로를 상대화하고 필요로 하는 상생의 구조를 가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변질되어 사회 전체가 뒤틀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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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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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식 (112.XXX.XXX.157)
동감입니다. 그 분은 결코 틀에 가두어 지내신 분이 아닌데 ㅎㅎ

뭐 다 미국식 자본주의 영향이겠지요^^

미국에 유학도 가지 않고, 박사학위를 따는 목회자를 보고 의아스럽게 생각하였는데, 웬걸 무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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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09: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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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근 (58.XXX.XXX.187)
저는 우리 사회에 갑질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즉 잘사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거지요.
그리고 못사는 사람들은 서로를 싫어 합니다.
서로에게서 얻어 갈게 없습니다.
올 한해 재미있고 의미있는 글을 써주신 신아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디 예수님과 함께하는 성탄절 보내시고 새해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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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0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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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잘 살면 갑질하고, 을질 당하는 사람끼리는 또 서로를 멸시하고...

돈이 '지*'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줄 세우니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본가가 바라는 바겠지요. 소비자 (그들은 사람을 이렇게 부르지요)를 고물처럼, 밥풀떼기처럼 다 떼어놓는 것, '인간적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해서 외롭기 그지없어진 나머지 물건을 사게해서 순간적이고 가짜 위안을 얻게 하려고. 그것이 반복되게 하려고.

부족한 제 글을 격려해 주시고 공감해 주신 것에 큰 감사를 드리며,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 맞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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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9: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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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신아연 님! 메리 크리스마스! 만나야 내 예쁜 내년도 주간 들꽃 캘린더 <사계절 우리 들꽃 7집>을 드릴텐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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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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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어떻게 그 예쁜 들꽃 캘런더를 받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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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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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세속화 신앙, 세속보다 더욱 세속적인 신앙. 그것이 한국 교회의 신앙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번에 시드니에서 제 아들이 다녀갔는데 참 신앙심이 깊은 아이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교회는 당최 안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교회만 가면 마음이 탁 꺽인다고. 실망스럽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차라리 그냥 각자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자기 성전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실험에 덜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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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0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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