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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추위
안진의 2015년 01월 15일 (목) 01:22:14
“나는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도 채 오기 전에 봄꿈을 꾸는 적이 종종 있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나 추위를 두려워하는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런데 계절의 추위도 큰 걱정이려니와 그보다도 진짜 추위는 나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추위입니다.”

1961년 1월 19일, 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겨울을 뛰어넘어>라는 박수근의 글과 그림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는 글과 함께 신축(辛丑)년 소띠 해에 맞춰, 그의 산골 고향에서 봤음직한, 뚝심 좋고 다부진 모습의 소 한 마리를 그렸습니다. 아니 새겼습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화강암의 질감이 느껴지는 바탕에 단순하고 소박한 필선으로 모든 형태들을 새기듯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박수근의 호가 미석(美石)이라는 것도 잘 어울립니다. 옛 석탑, 석불, 석물 조각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기법을 연구하며 조형화하려 했다는 그의 시도가 여실히 느껴집니다.

작품의 울퉁불퉁한 바탕은 흐트러짐이지만 필선은 단정하여 대비의 힘이 느껴지는데, 간결하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하는 것은 자잘한 돌밭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 덕분입니다. 또한 그의 단순한 선과 형태는 확장성을 갖습니다. 평면적으로 그려졌지만 우리의 마음속엔 어느덧 동그란 얼굴에는 어머니의 주름과 인자한 미소가, 네모진 손에는 거칠지만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 질박한 바탕 위에는 하얀 꽃봉오리가 봉긋하게 피어난 목련이 있고, 하트 모양의 어린잎이 달린 피나무 그림이 드물게 있긴 합니다. 하지만 꽃이나 열매가 달린 나무를 보긴 어렵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벌거벗은 고목이 등장합니다. 늘 겨울나무입니다.

잎도 꽃도 없는 겨울나무들이 쓸쓸함이 아닌 희망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고맙게도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裸木)>덕분입니다. 박완서는 한때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파는 점원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박수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박수근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썼던 소설 나목에서, 그의 작품을 보며 이렇게 적습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화가의 작품 속에 고목은 주저앉는 현실이 아닌, 앞으로의 싹을 틔울, 봄날을 기다리는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바람에 마른 가지들이 부딪치듯 흩어지는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의연하게 봄을 믿고 기다리는 생명을 머금은 나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나목이 듬성듬성 서 있는 곳, 박수근의 고향은 험한 산길을 지나,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강원도 양구입니다. 문화유산이나 풍요로운 농토를 찾기 쉽지 않은 곳, 그저 전적비와 전투비가 드문드문 자리했던 곳, 휴전선의 최북단에 위치한, 전란의 상처 많은 적막한 곳입니다.

그 황량한 양구의 들판에 들어선 박수근 미술관을 찾은 날, 그가 얼마나 한파를 지긋지긋해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만큼, 매서운 겨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박수근 미술관은 그런 한파 속 맞바람을 피해가듯, 긴 돌담을 에둘러 돌아 정문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좁은 회랑을 통해 들어선 전시실에서는 아내 복순 씨에게 보내는 청혼의 편지가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빨래터에 같이 간 신붓감을 직접 보기 위해 점심을 가져간다는 핑계로 가서,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청혼의 글을 남깁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의 청혼 편지 속에 충만한 것은 정신적 행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편지를 쓰는 동안 화가에게 정신적 추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화가는 그렇게 꿈을 꿉니다. 그 꿈은 봄처럼 따듯합니다. 희망의 꿈을 꾸는 동안은 춥지 않을 것입니다.

살갗을 에는 매서운 겨울, 마음만큼은 아지랑이 피는 봄을 생각하며, 추위에 떨지 않기를 다짐하는 화가의 바람을 봅니다. 추위를 몹시도 싫어하는 저 역시, 박수근의 나목처럼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고, 물질보다 정신의 가난을 두려워하며 삶에 정진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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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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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에 없는 또 한 가지가 추위란 거 알게 해 주셨군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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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6 10:34:10
0 0
인내천 (220.XXX.XXX.217)
수중에 돈이 있으면 굶어도 배고프지 않고 헐벗어도 춥지 않고 무시 당해도 속 상하지 않습니다
뻐스비 500원이 부족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본 사람은 500원의 위력을 실감합니다,그래서 저는 정신의 풍요함에 앞서 물질의 풍요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물질이 풍성한데도 반비례해서 정신적 가난이 지속된다면 그 사람의 물질적 토대는 그야말로 무가치한 쓰레기에 불과하겠죠?
그런데 시방 우리나라는 물질도 1%에게 집중되어 있고 정신도 피페할대로 피페해 있으니 어디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의 법무부 벽에 새겨저 있다는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시킨다!"는 슬로건이 정답이 아닌가 합니다
계속해서 박근혜정권은 경제경제 부르짖는데 경제가 우리 사회를 지탱시키는게 아니라 바로 사회정의가 아닌가 합니다! 안 교수님께선 애둘러 정신의 가난이라고 그리셨는데 그 정신적 가난이란 불의를 보고도 못 본척하고, 이웃이 슬퍼해도 함께 울어주지 않고,단식하며 진상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햄버거나 먹어치우며 조롱하는,부정선거의 정황이 너무도 명징한데도 촛불을 들지 않는 나약함 이 모든게 정신적 가난이고 사회불의가 아닐까요?
올 겨울이 유난히 추운 것은 기온이 내려가서가 아니고 옷이 엷어서가 아니고 12명이 죽었는데도 70만 100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우린 304명이나 생죽음 당했는데도 한산한 거리 때문입니다!
사회구조적 불의에 대한 공분이 없는 사회는 여름에도 춥습니다.
에구~ 추워라! 분노하지 않는 개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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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6 07: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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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121.XXX.XXX.54)
쉽고 매끄러운 문장 덕분에 읽는 내내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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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5 17:04:28
0 0
차덕희 (121.XXX.XXX.97)
추위가 심해 박완서님의 책읽기를 하고 있는데,최근에 읽은 나목을 접하니 반가운데요.
삶이 곤궁했던 이야기는 읽었지만 정신의 풍성함을 누린 예술가의 삶이 사후에 빛을 볼때에는 안타깝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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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5 07: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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