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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기의 마라톤
안진의 2015년 02월 24일 (화) 00:34:17
테이블 위에는 파란 하늘이 그려진 책 한 권이 놓여있습니다. 한국자생식물원 김창열 원장의 전국일주 마라톤 기행입니다. 그는 찬바람이 시작되던, 2013년 11월 1일 부터 75일간 1,508.8km를 달렸습니다. 평창의 식물원에서 출발하여 동해안에서 남해안으로, 이어서 서해안에서 다시 임진각으로, 그리고 평창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동안 마라톤과 이 땅의 꽃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오대산 자락 한 뼘 양지에 둥지를 틀고, 꽃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자생식물이 돈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설악산의 에델바이스, 즉 솜다리 씨앗을 채취해서 대량재배에 성공합니다. 1980년대 초 에델바이스를 넣은 액자는 설악산의 관광기념품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을 때였습니다.

저도 학창시절 에델바이스 노래를 흥얼거렸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얼마나 아름다운 꽃일지 궁금했지만, 실제 에델바이스를 직접 본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 식물원에서였습니다. 그 덕분에 스위스까지 가지 않고, 설악산 벼랑 끝에 위험천만 매달릴 필요도 없이, 쉽게 우리의 에델바이스, 솜다리 꽃을 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그는 나아가 천연기념물 섬백리향을 증식하고,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서식한다는 벌개미취 군락을 곳곳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흔히 외래종을 식재하던 골프장 조경지와 전국의 초등학교에 우리 꽃을 심는 등, 우리의 멸종위기와 희귀자생, 그리고 특산식물 등을 재배하고 보존하는, 우리 꽃을 지키는 꽃지기입니다.

어느 날 그는 우리가 흔히 보는 민들레의 대부분이 서양 민들레인데, 잎 받침이 위로 향한 모양이면 토종이고 아래로 쳐져있으면 외래종이라며, 어디선가 날아든 꽃씨로 외래종 민들레가 식물원에 꽃을 피우면, 가차 없이 뽑아버리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켜내는 식물원이 다름 아닌 우리 꽃 식물원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있지만 자신은 미칠 수 있으니까 청춘이라고, 젊은 날부터 그는 우리 꽃에 미쳐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의 성쇠는 강건함 만이라며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는 42.195km 마라톤 풀코스를 100회 이상 완주한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60대의 나이에, 한 겨울 전국을 달린다는 것은 혀를 내두를 만큼 독하지 않고는 해내기 어려운 정신력입니다.

동상에 걸려 하마터면 발가락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를 만큼, 혹독한 추위 속에 지쳐 뛰면서, 그는 유독 어머니 생각을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내 눈꺼풀에는 늘 어머니가 매달려 있습니다. 검고 깡마른 얼굴보다는 하도 일을 많이 해서 거칠어진 손마디가 마치 갈퀴 같은 손, 그 손이 늘 내 눈가를 맴돌고 눈물이 됩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힘없는 눈꺼풀에 어머니가 매달려 있다니, 그가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했을지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는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라며, 파랑의 중심에는 희망과 꿈이 있는 것 같아 좋다고 하였는데, 생각해보면 그의 파랑은 그 어머니의 파랗게 멍든 가슴이 씻어낸, 희망의 파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자로서 태어나 일하며 자식들 부양하느라 살기가 어찌나 힘들었는지,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겠다고, 젊은 날, 손수 남자 수의를 준비하셨다는 그의 어머니입니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해준 분, 그가 “행동의 가치는 끝까지 이루는 데 있다.”고 되새기며, 완주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늘에서 도운 분은, 세파 속에 그를 키워낸 어머니일 것입니다.

이제 눈꺼풀에 매달린 어머니를 고이 그의 눈 안에 넣어, 더 큰 강건함과 현명함으로, 이 땅의 우리 꽃지기로 더 묵묵히 달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땅, 우리 꽃에 대한 애정으로, 북녘땅도 달리고 싶다던 그의 꿈대로, 임진각 자유의 다리가 북한을 달리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 언젠가는 힘차게 달릴 수 있길 바랍니다. 더불어 그곳의 야생화도 우리가 함께 마주하는 기쁜 날이 오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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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몰라 (221.XXX.XXX.200)
잘 읽었습니다. 안교수님 글은 늘 따뜻함이 배어있어 좋습니다. 늘 좋은 글 부탁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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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2 13: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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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야 (222.XXX.XXX.164)
김창열 님 같은 분이 역사을 새로 쓰는 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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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4 17: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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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58.XXX.XXX.56)
키 큰 꽃은 하늘만 쳐다보는 줄 알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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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4 10: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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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김창열 님의 눈꺼풀에 매달린 어머님도 자식에 대한 사무침으로 한평생을 청춘으로 사시지 않으샸나 싶군요. 60대의 나이로 한겨울 75일간 1,508.8km를 완주한 님의 한국자생식물원 그래서 재개원에 관심과 기대가 더 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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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4 09: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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