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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의 향연, 블로그 아고라
신아연 2015년 04월 07일 (화) 04:38:28
‘다음 아고라’ 등 포털여론 광장 말고 ‘블로그 아고라’라는 ‘덧글 향연장’을 아시는지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예술활동이 이루어지던 아고라 광장처럼, ‘블로그 아고라’는 온라인 버전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이라고 할까요? 비록 술은 없지만 블로그 포스팅을 주제로 펼치는 덧글 대화 공간을 의미하는, 제가 만든 말입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제가 여성중앙 4월호에 쓴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에 대한 글을 며칠 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남의 가정을 깬 불륜녀로 유명세까지 톡톡히 치르며 ‘동양의 악녀’로 불리기도 한 요코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Newyear’의 덧글이 올라왔습니다. 거기에 제가 “잘 한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좀 봐주자”라는 식으로 답글을 올리자 ‘dada’라는 아이디를 가진 독자가 곧 등장했습니다.

“Newyear와 천우 신아연 님, 두 사람의 대화에서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고 시비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부정확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나로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내 머릿속에서 어떤 가치 판단을 하여 시비를 가리는 마음장치는 과거에 입력된 어떤 지식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판단하도록 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위험한 것은 과거의 잘못 입력된 정보가 현재의 내가 진실을 눈앞에 보고 만지면서도 그것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합니다. 어제까지 참 진리로 철석같이 믿던 것도 오늘은 거짓으로 인식되고,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거짓으로 여겨오던 것들이 오늘은 참 진리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 무엇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인식한 그 순간의 그의 생각일뿐 아닐까요?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일부일처제가 시행된 것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지금도 지구상 모든 나라가 일부일처제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즉 예술은 예술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예술인의 삶 또한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삶을 일반인과 같은 잣대로 보는 것은 감성을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Newyear 님과 신아연 님 두 분의 의견이 다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이성적으로는 Newyear 님의 말이 맞고, 감성적으로는 신아연 님의 말이 맞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것은 옳고 그르고를 따질 일은 아니지만요.

이는 마치 ‘이성적인 사상을 펼친 맹자가 옳으냐? 감성적인 사상을 펼친 장자가 옳으냐?’를 따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두 분의 사상 모두를 진리로 아우르며 존중하고 있지요. 그것은 사람이 이성과 감성의 복합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결혼은 서로의 결핍을 메우는 화학적 결합이었다고 봅니다. 지식과 정에 목말랐던 존 레논은 지적인 동양 여성 요코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성적 지식 너머의 감성적 갈증을 느꼈던 요코는 존 레논의 예술세계를 접하면서 서로 구분될 수 없는 결합을 한 것이겠지요.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있기에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와 예술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이끄는 것은 아닐까요?”

이 같은 다다의 열띤 변론에 대해 ‘밀라노’가 “dada 님의 명쾌한 글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했습니다. 특히 ‘사람은 과거의 나로 현재를 살아간다’는 말씀은 제 삶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지혜입니다. 아, 이런 것을 지혜라고 하는구나!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꾸벅 꾸벅 꾸벅 ^^” 하며 감탄을 쏟아내자, ‘소나무’ 라는 분이 “ dada님의 논쟁과 시비를 조정하는 지혜에 감탄했죠. ‘정리는 이렇게하는 거구나’ 하고서.”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이에 ‘코뿔소’라는 독자는 “저는 ‘이 세상에 진실이라는 게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일까? 다만 각자의 진실만이 존재한다는 생각과 함께 레논과 요코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덧글로 외연을 확장시켰습니다.

제 블로그를 예로 들어서 좀 ‘거시기’합니다만, 어떤가요? 이쯤되면 개인 블로그가 이른바 ‘인문적 담론과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나요? '요코'뿐만 아니라 제가 던진 다른 사안에 대한 ‘한라봉’, ‘유리구두’의 고준담론도 다다의 그것과 함께 ‘진검승부’를 방불케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사유의 능력’에 있습니다. '블로그 아고라'로 인해 저는 요즘 새로운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유의 훈련을 통해 본래적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 블로그를 포함하여 은하계의 별처럼, 한강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블로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다, 한라봉, 유리구두 등 균형과 절제, 중용적 통찰력을 가진 깊고도 높은 수준 의 시민들이 담론의 리더가 되어 ‘사람 살리는 인문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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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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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9.XXX.XXX.41)
편도 나무에게
.........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했노라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그러자 편도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

아연님의 지적 유희가 즐거운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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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0 16: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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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211.XXX.XXX.2)
신아연님 블로그에 쓴 저의 댓글을 본문으로 올려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본문으로 올린 의도를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했습니다. 여기에 다른 분들이 올린 댓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평소 저의 생각을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신아연님은 왜 이 글을 여기에 올렸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미 신 작가가 여기에 밝힌 바와 같이 우리들이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언제나 되물어야할 중요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필요 없겠지만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내가 이해해야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평소에 내가 대상을 인식하는 틀이 옳은 방식인가를 한번쯤 짚고 넘어가자는 것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으며 그 틀을 통해 인식의 지도를 그리는데, 이 인식의 틀이 다르기 때문에 인식의 지도에 그려진 좌표의 위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인식을 상대방에게 말했을 때 상대방이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지요.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 “지난번에 내가 말했지 않느냐”느니 하면서 핏대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지요. 이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식의 차이로 인해 크고 작은 오해가 일어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나 공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판단의 범주 안에서만 생각해보지요. 동일한 사안을 놓고 볼 때 이성적으로 보는 시각과 감성적으로 보는 시각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신 작가님의 글 원문 예를 들면,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삶을 이성적으로 본다면 불륜을 저지른 형편없는 저질 인간들의 삶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감성적으로 본다면 인류역사에 남을 예술인들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삶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그 사이에 수많은 의견들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객체의 몫이지만 공동체의 몫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그 사람들이 “어떻다”라고 판단하는 인식은 지금의 ‘나’라는 객체가 본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나’라는 사람도 지금은 그렇게 인식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이렇게 인식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타자 인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이 옳다고, 그것만이 진리라고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다름을 인정하려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구상에는 오늘도 크고 작은 살육전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시각이 하나의 관점에만 고착되어 있다면, 그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대상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여름 한철만 살다가는 풀벌레들이 눈 내리는 겨울을 상상하지 못하여 겨울이라는 계절이 아예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있지만 정작 그 객체는 이런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좀 더 열린 사고를 가지고 다른 시각, 즉 타자의 시각으로도 대상을 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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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09: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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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다시 글을 올려 주셨네요. 제가 글을 쓴 의도까지 정확히 짚어주셨으니 저하고 다다님은 제대로 소통된 거네요.^^

이번 글은 다다님의 글을 제가 대신 올린 것 뿐이니 저 역시 큰 배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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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11: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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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220.XXX.XXX.115)
인식의 틀에 관한 dada님의 글이 참 좋네요.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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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10:48:48
1 0
유리구두 (218.XXX.XXX.155)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군요.
특히 다양한 시각에서 대상을 볼 수 있는 인식의 틀, 절대 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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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10: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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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강 (59.XXX.XXX.196)
신아연님 블로그를 애독하는 사람인데 댓글 수준이 엄청나네요.
댓글을 본글에 올리는 방식도 매우 독특하네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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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20: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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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좋은 댓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독자들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다만 밥상만 차릴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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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11: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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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112.XXX.XXX.157)
신아연님!



아주 멋진 향연입니다.

덧글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재미있습니다.



모처럼 지성인들의 대화에 흠뻑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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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22: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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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실은 덧글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여론을 환기시키고 공론화 할 수 있는데, 참으로 좋은 도구, 유용한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인문적 사유의 부재, 자기 생각의 부재 탓이 아닐까요?


제 블로그의 '댓글거사들'이 모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블로그 댓글을 칼럼에 그대로 인용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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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08: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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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112.XXX.XXX.157)
재미있으면서도 생각들을 나눌수있는 새로운 장이 되겠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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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22: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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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잘 단 댓글 하나가 원글 필자를 꼼짝 못하게 할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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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08: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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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 길기백 (112.XXX.XXX.213)
귀한 말씀 잘 읽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합니다. 어제까지 참 진리로 철석같이 믿던 것도 오늘은 거짓으로 인식되고,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거짓으로 여겨오던 것들이 오늘은 참 진리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 무엇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인식한 그 순간의 그의 생각일뿐 아닐까요?"

가장 경계해야 할 관념 인식 편견 선입관의 벽을 Open-mind로 항상 뛰어 넘을 수 있어야 새로운 경계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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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11: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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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끊임없는 자기 점검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말이 과연 내 것인가, 내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왔을까를 계속 반성하고 검열하는 자세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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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08: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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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220.XXX.XXX.195)
잘 읽었습니다.

서로의 사고와 지식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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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10: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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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존중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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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08: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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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58.XXX.XXX.58)
귀하의 글에선 낚시바늘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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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09: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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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무슨 뜻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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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08: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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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day (220.XXX.XXX.98)
보통 낚시라 함은 기자나 작가가 작성한 글이 제목만 거창하고 실제로는 실속 없는 기사거나 제목과는 상관없어 독자가 낚기어 호기심에 읽어 본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뜻입니다. 즉 신 작가님의 글에서 그런 세속적인 냄새가 난다는 뜻이겠지요. 제 개인 생각으로는 반반입니다. 맞는 이야기지만 의연중에 작가님의 개인적인 광고가 엿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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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8:32:03
0 0
신아연 (112.XXX.XXX.157)
아, 예, 그런 뜻이야 저도 알지요.

저도 이따금 그런 짓 합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남의 말을 길게 인용하여 내 글을 덜 쓰는 수고는 덜었지만요.

저는 '다다'의 덧글을 소개하기 위해 다소 테크니컬하게 글을 썼습니다.

다다님의 '사고의 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블로그의 댓글로만
두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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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8: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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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25)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진리와 진실은 거짓일 것입니다. 만약에 진리와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변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변한 것은 필자님의 마음이 변한 것이겠지요. 진리나 진실의 본체는 파란 하늘 같은 것. 흐리거나 어둡거나 하더라도 그대로인 것 아닐까요. 반대로 그게 원래 어둡거나 흐린 것인지도 모르는... 너무 시시비비 하며 사시는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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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08:50:03
1 0
신아연 (112.XXX.XXX.157)
존재에 관한 글이 아니라 인식의 틀을 말씀드리고 있는 건데요.물론 존재와 인식의 상호 작용으로 사물은 해석되는 거지만요.. 글의 성격상 인용된 '다다'님이 답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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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08: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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