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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이다
박대문 2015년 04월 10일 (금) 00:33:10
겨울이 깊어 갈수록 따사로운 봄 햇살의 그리움은 커져만 갑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숭숭 뚫린 빈 하늘에 차가운 바람이 윙윙거리면 몸도 마음도 함께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이른 봄부터 줄곧 산과 들을 누비며 꽃 사진을 찍는 꽃쟁이들에게 겨울은 참으로 지루한 계절이기에 누구보다도 간절히 봄날을 기다립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땅을 뚫고서 삐죽삐죽 돋아나는 새싹의 신비로움과 연약한 꽃대를 밀어 올려 야리야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른 봄 야생초의 고운 모습이 더없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자 봄을 기다리는 꽃 사랑 마음은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한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아 보입니다. 오래전부터 식물에 많은 관심이 있던 차에 우연한 계기로 식물분류기사가 된 이후 저도 어느새 꽃 사랑에 빠져 틈만 나면 열심히 산과 들을 헤매는 꽃쟁이가 되었습니다.

올해도 계절의 순환은 변함이 없어 어김없이 봄이 왔습니다. 꽃인 듯 아닌 듯 피어나는 미미한 꽃에서부터 제법 우리 눈에 띄는 곱고 볼륨 있는 꽃까지 다양한 이른 봄꽃들이 산과 들에 피어납니다. 긴 겨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야생화를 새해에 다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설렘과 즐거움이며 가슴 떨리는 사랑의 만남입니다. 다시 피어난 첫 꽃에 지나온 나의 이야기 들려주고 그 꽃이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를 상상도 해봅니다. 올봄에도 다시 꽃과의 상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꽃 앞에서 행복감에 젖어 있노라면, 자문자답하듯 꽃과의 대화가 오가기도 합니다. 내 살아 있음의 확인이기도 하면서 고난의 풍찬노숙과 같은 역경에서 꿋꿋이 살아 남아준 야생화와의 애틋한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복수초, 바람꽃, 노루귀, 앉은부채 등은 이른 봄에 피는 꽃입니다. 지난해의 잔흔이 적멸의 침잠에 푹 잠긴 듯 침묵과 고요만이 무겁게 내리 앉은 산골짜기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겨울 잔설과 얼음이 군데군데 널려 있어 희미한 봄기운조차 찾아보기 힘들 때 피어납니다. 겨우내 꽃 구경을 하지 못한 꽃쟁이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이른 봄꽃이 피어날 때쯤에는 꽃 주변은 삭막해 보이지만 땅속 곳곳에서는 새싹이 움트고 있습니다. 조금 늑장 부린 꽃대도 한창 솟아오르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이른 봄꽃 특히 풀꽃 사진을 찍으면서는 여간 조심하더라도 수많은 새싹과 꽃대를 부지불식간에 밟고 훼손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희소한 이른 봄꽃이 피는 특정 장소가 해를 거듭할수록 명소가 되어 소위 꽃을 사랑한다는 꽃쟁이가 일시에 몰려들고 북새통을 이루어 자생지가 심히 훼손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소위 작품사진을 찍는다는 사진작가를 비롯한 사진동호회원들이 꽃을 혹사하는 일이 눈에 띄게 많아졌으며 안타까운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금강송 작품사진 한 점을 위해 주변의 다른 금강송을 잘라내 버린 사건은 언론에 보도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눈 속 꽃 사진을 찍기 위해 눈을 가져와 뿌리는 행위, 꽃을 꺾어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찍고 나서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도록 꺾거나 뭉개버리는 일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못된 짓은 물론이거니와 별생각 없이 꽃을 혹사하는 일도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한정된 특정 장소에서 무리를 지어 사진을 찍거나 하나의 멋진 모델을 두고 여럿이서 빙 둘러 사진을 찍는 행태들입니다. 또한, 삼각대를 들이대고 요리 조리로 빙빙 돌며 만족한 사진이 나올 때까지 줄곧 찍어대는 행위, 아예 좋은 모델 앞에 돗자리 깔고 앉아 주변을 뭉개는 일은 분명 잘못된 꽃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풍도의 바람꽃, 동강의 동강할미꽃 등 이른 봄꽃 서식지에는 휴일에 사람들이 북적대 장사진을 이루고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는 볼썽사나운 일들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절벽에 핀 동강할미꽃을 찍기 위해 사다리나 밧줄을 가져와 바위에 걸고 법석을 떤다고 하니 그 극성스러움도 분명 잘못된 꽃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이른 봄철, 먼저 발견한 한 송이 꽃을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에 삼각대 들이대고 반사경, 물뿌리개, 손전등 등 장비를 갖추어 자리 깔고 비비 뭉개는 극성을 볼 적마다 망가지는 새싹과 꽃들의 아픈 비명이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남보다 먼저, 오직 나만의 멋진 꽃 사진 한 점을 위한 이와 같은 짓은 탐욕과 군림이며 독점욕이지 꽃 사랑이 아닙니다.

이른 봄철, 풀꽃 사진만이라도 삼각대 사용이나 접사를 자제하고 불가피한 경우 외발 받침대(mono pod)를 사용하거나 줌렌즈로 찍었으면 합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잎이 어느 정도 자란 4월 중순 이후의 봄꽃은 주변에 식물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라서 조심하면 새싹이나 꽃대를 밟는 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꽃들이 무성하게 자란 5월 이후라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삼각대 없이 사진을 찍거나 즐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식물분류용 사진을 주로 찍는 저의 경우에는 이른 봄에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득이한 경우 삼각대 받침대 중 하나만을 펴서 사용합니다. 좀 더 흔들림 없는 선명한 사진을 가까이서 찍고 싶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꽃 주위의 다른 식물이나 나뭇가지를 거의 그대로 둔 채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식물의 꽃에만 집착하는 사진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식물 전체를 주로 찍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식물의 꽃은 동물의 생식기관과 같습니다. 그 생식기관에 렌즈를 들이대고 작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같은 생물 종의 한 개체에 대한 민망함과 미안함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마음은 삭막한 현대 도시인의 메마른 감성을 일깨워 주는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소한 부주의나 무의식적인 잘못된 꽃 사랑으로 야생화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꽃을 사랑한다고 해서 멋진 작품사진을 위한 연출이나 희귀 야생초를 캐가는 일은 야생초를 바로 죽이는 일입니다. 그 야생초가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캐 가고 싶을 정도로 귀한 종이 되기 전에 주변에 널리 퍼져 있을 것입니다. 아무 데서나 살 수 없고 그곳에서만 살 수 있기에 귀한 꽃이 된 것입니다. 요즈음 눈에 띄는 꽃쟁이들의 야생화에 대한 탐욕과 군림과 자기만의 만족은 잘못된 사랑입니다. 거제도 대금산의 진달래꽃 축제를 훼손 방지를 위해 당분간 중지한다는 소식이 신선하게 들립니다. 꽃 사랑은 꽃의 존재를 아끼고 귀중히 여겨 정성과 배려를 다 하는 사랑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꽃이 사진보다 아름답지 사진이 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 차갑고 삭막한 겨울 끝자락, 이른 봄에 수줍은 듯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을 처음 상면했을 때의 기쁨과 행복감 그리고 애잔함에 정신이 아뜩해지며 혼이 흔들리는 만남과 같은, 이것이 바로 꽃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탐욕과 소유와 군림이 아닌 진실한 꽃 사랑이란 어떠한 사랑일까? 한 편의 시로 대신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꽃 사랑 -

호젓한 산길, 곱게 핀 꽃 한 송이

꽃을 좋아하는 이, 탐을 낸다. 꺾어 들고 싶어 한다.

꽃을 사랑하는 이, 혼을 본다. 차마 꺾지 못한다.

혼이 흔들리는 만남,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2015.4.5.)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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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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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boo (117.XXX.XXX.122)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장 먹세그려~

그 꽃을 꺾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으면
혼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에 쥐
가 나겠네요.

사랑이란 독점하기보다 주는 것이 훨씬
어려운가 봅니다. <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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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2 09:23:57
0 0
풀지기 (1.XXX.XXX.136)
Bamboo 셩님! 꽃을 알면 따도 되는 거, 안 되는 거 알게 됩니다. 진달래 꽃가지 산 놓고 한잔 하는데, 꽃 띄워 한잔 하고 화전 부쳐 즐기는데 누가 말려요. 그게 사는 맛이고 멋인데.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가지 하나 꺾기로 재생 불가 상태로 되지 않아요. 지속 가능한 재생의 터가 무너져서는 안 되는 거죠. 산나물도 적당히 채취하시고 꽃도 즐기시되 한 포기에 한 송이 피우는 희소한 꽃이나 식물을 채취하여 멸실 위기에 처하게 하는 게 문제죠. 초토화하지 않는다면 식물과 동물, 사람이 공생하는 것이 자연 순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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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19:51:49
0 0
꽃남 (112.XXX.XXX.25)
드디어 선생님 글이 상단으로 독립해 나오게 됐군요. 반갑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들꽃 사진을 찍는 저로서 지난 3월 23일자 조선일보 김민철 기자의 <꽃이야기> 기사와 오늘 자유칼럼 선생님의 글을 가슴으로 읽었습니다. 제 닉에서 그 감사함의 크기를 짐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공유하며 각성과 주의와 실천을 권유하겠습니다.
답변달기
2015-04-10 11:17:2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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