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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중매를 서지 않는다"
신아연 2015년 05월 01일 (금) 05:21:51
“친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중매를 서지 않는다. 친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같으면 찬성하고 자기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반대한다. 자기와 같은 것을 맞다 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언어를 매개 수단으로 세상과 만나고 타자와 교감하며 소통하고 이해합니다. 실은 논쟁하고, 시비하고, 말꼬리 잡고, 자기 말만 옳다고 하기 위한 대결과 투쟁의 ‘무기’로 각자 자기 언어를 ‘장착’하고 있는 느낌을 무시로 받지만 말입니다.

위의 인용은 장자의 말입니다. 직업이란 게 다 그런 요소가 있지만 저 또한 말과 글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때때로 언어의 무망함과 환멸을 느낄 때 장자의 언어관을 통해 위로와 쉼을 얻곤 합니다. 혹여 지금 말과 글로 난도질당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제가 읽고 있는 동양 철학자 박희채 저 <장자의 생명적 사유>를 통해 마음을 추스르길 권합니다. 몇 구절 옮겨 보겠습니다.

언어의 ‘의미’는 자기를 중심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마음은 다양한 측면 중 하나에 고정된 견해이며, 자아가 개입되어 ‘이것이 옳다’[是]라고 선택하면서 시작된다. 타자를 언어로 규정하여 고정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거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에 대해 자아의 개입이 심화될수록 성심은 더욱 편파적이며 부분이 되는 것이다. 장자는 이러한 인간의 경향으로 인해 언어와 실재의 간격이 더 멀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노하는 까닭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과 치우친 말 때문이다.”

말은 감정에 의해 확대되며 객관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장자는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말 그대로를 바라보고자 하였다. 사람은 말로써 상대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 하지만 언어가 내용을 담아내는 한계로 인하여 서로 간의 소통은 쉽지 않고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문제는 대화를 할 때 상대가 자기 의견에 동의하기를 바라는 점이다. 만약 상대가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시비의 논쟁이 벌어진다. 장자는 이러한 논쟁에 대하여 ‘변무승辯無勝’이라고 했다. 즉 논쟁으로는 승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주 밖의 일에 대해 성인은 마음에 두고 논의하지 않으며, 우주 안의 일에 대해서는 논의하기만 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성인의 일이 기록된 <춘추>에 대해 성인은 평가만 하고 논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장자는 논의[論], 평가[議], 논쟁[辯]을 구분하여 말하고, 논쟁이 가장 낮은 단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논쟁은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서로간의 의견 대립이다.

화자와 청자가 언어라는 형식의 그릇을 통해 말 자체는 주고받았지만 그 ‘그릇’에는 각자의 경험적 내용물이 미리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과 뒤섞여 각자 다른 해석, 다른 의미로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의사 전달을 어떻게든 명료하게 하기 위해 여북하면 장자는 우언(寓言) 중언(重言) 치언(巵言)에, 은유까지 끌어들였을까요. 아시다시피 우언은 ‘친아버지는 아들의 중매를 서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유, 암시, 풍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중언은 ‘누가 말씀하시길’ 하는 식으로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빌려 설득력 있게 설명해 보려는 것이며, 치언은 취중진담이란 말처럼 무심, 방심한 상태에서 오히려 진심을 쏟아내게 되니 그 언어가 믿을 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저도 제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기에 ‘장자가 말하기를’ 하는 식의 '중언'으로 이 글을 쓰고 있나 싶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며 언어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 외에 달리 소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새삼 절망스럽습니다. 더구나 그 불충분한 수단을 생업의 도구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의 위험천만한 위태로움이야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우언으로도, 중언으로도, 치언으로도 심지어 비유로도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겠습니다. 장자 역시 서로간의 갈등과 반목에 대해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을 만큼 언어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니까요. 상대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 거라고, 나를 이해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직접 당하기 전까지는 어차피 깨닫지 못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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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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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화 (109.XXX.XXX.107)
저도 평소에 제 생각에 허점이 있음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실어 말하면서 점점 타인에게 강요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반성도 하게 되고 많은 생각이 드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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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0 17:55:57
0 0
귀욘늑대 (112.XXX.XXX.157)
오죽하면 침묵은 금이라고 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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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2 17:32:34
0 0
김종우 (121.XXX.XXX.56)
온갖 만상과 헤아리기 힘든 우리 마음까지 문자로 나타낸다는 것이 보통 일이겠습니까? 얼마나 제약이 많겠습니까? 그래도 그나마 있기에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한계를 서로 인정하고 받는 그릇들을 여유있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 한계를 조금 넘어서고자 예술의 표현이 생기자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언어 외의 도구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말의 힘을 무사할 수는 없지요.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까요. 모두가 잘 다듬어서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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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2 12:11:14
1 0
신아연 (112.XXX.XXX.157)
정말 공감가는 말씀을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너무나 참담한 일을 당하거나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할 때 '형언할 수 없다' 이런 표현을 하듯이 언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제한을 가질 수 밖에 없지요.

하물며 작정하고 귀를 막고 있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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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3 07:10:41
0 0
dada (119.XXX.XXX.7)
언어가 불완전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언어가 아니면 상대방과 소통할 방법이 없으니 참.....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가 언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점을 이해하고 언어를 사용한다면 좀더 정확히 소통하기 위해 신경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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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1 23:37:55
0 0
신아연 (112.XXX.XXX.157)
교통 사고 났다고 차를 안 타고 다닐 수 없듯이, 말로 글로 부상을 입었다고 안 할 수도 안 쓸 수도 없겠지요.

다만 어차피 모든 것을 전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 밖에는 달리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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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2 07:48:56
0 0
시드니 맨 (112.XXX.XXX.157)
말... 조심스럽네요. ㅎㅎ 말많이 하고나면 항상 후회하잖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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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1 22:44:12
0 0
김용학 (112.XXX.XXX.157)
신 선생님, 오늘 언어에 관한 수필, 잘 읽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오래 오래 반추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독자 김용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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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1 16: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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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감사합니다.



장자의 언어관은 시대를 관통하며 진리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매체가 횡포에 가까운 기승을 부릴 때에는 더욱 장자의 가르침이 긴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신아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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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3 07: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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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12.XXX.XXX.157)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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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1 16: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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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제게 이메일로 보내오신 이정민님의 댓글입니다. >


신아연 작가님의 글을읽으니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우리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들라고 하면 저는 언어의 특권을 말합니다.

그만큼 특권인 이 언어가 잘 못 쓰면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잘 쓰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했으니 삼가 조심하며 살아야 하겠지요.

작가들과 칼럼니스트 , 신문 기자와 같이 글을 쓰는 분들의 고충이 얼마나 힘드는지 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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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공감과 위로의 말씀 고맙습니다.



요즘처럼 언어가 혼탁해진 때는 역사상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입에서 쏟아지는 모든 것을 말이라 하고, 정제되지 않는 모든 생각을 글이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무 거나 줏어 먹고는 음식이라고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요.



모든 변화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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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2 08: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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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 (210.XXX.XXX.50)
그래도 쓰신 글에 많이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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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1 10: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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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157)
고맙습니다. 누구나 일상 겪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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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2 07: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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