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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이 좋은 것?
김창식 2015년 05월 13일 (수) 01:04:03
지난 3월 싱가포르 샌토사(Sentosa)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HSBC 위민스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어요. 마지막 날엔 세계 톱랭커인 리디아 고(1위), 박인비(2위), 스테이시 루이스(3위)가 챔피언 조에서 맞대결을 펼쳐 화제가 되었으며, 박인비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요. 골프 중계를 지켜보며 한창 골프에 '미쳤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손 놓은 지 10년도 훨씬 넘었지만요.

직장을 제 발로 걸어 나온 후 처음엔 아침밥을 먹고 한 대의 담배를 피우고 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버려 당황스러웠어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다 몇 달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그런 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비디오방에 일수도장을 찍고 경비아저씨와 말을 섞는 것은 백수 초기 단계 때나 하는 일이죠.

백수 5년 차여서 어언 관록이 잡힐 무렵, 그러니까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허허로운 처경(處境)에 이르렀을 무렵 골프연습장에 정상 출근했습니다. 그동안 재택근무 열심히 하면서 벌어놓은 것을 까먹어서 정식 골프 투어는 언감생심(焉敢生心) 바라지도 못했고, 골프를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그 계통에 능력 있는 친구가 연습장 회원권을 끊어주었거든요. 골프채야 구닥다리지만 직장 다닐 때 마련해둔 것이 있었고요.

골프연습장에 상근하다보니 고향 선‧후배를 비롯해, 호형호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근무 연한에 따라 터줏대감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에든 열심히 매달리는 좋지 않은 성격이라 '닭장 프로'라는 말도 더러 들었지요. ‘닭장 프로’는 이론에 밝고, 그런대로 폼도 좋으며, 연습장에서는 곧잘 치는데, 정작 필드에 나가면 죽 쑤고 돈 잃고 소문나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호구'를 비하하는 말입니다. 게임이 끝난 후 부근 음식점에서 잠깐 손목 좀 풀다가 또 돈 잃고…. 한번은 돌아오는 길에 차량 접촉사고를 낸 적도 있었다니까요.

알 만한 주말 골퍼 사이에 회자되는 우스개가 있어요. 세상에 마음대로 안되는 세 가지가 있으니 배우자, 자식, 골프더라. 그 중에서도 제일 안되는 것은 골프이니라. 맛이 간 골퍼 중에는 거실에서 플라스틱 공으로 롱아이언 스윙(롱아이언을 왜? 투어 프로들도 꺼려하는데) 연습을 하다가 천장에 달린 비싼 샹들리에 일부(그러니까 전부)를 박살 낸 친구도 있고, 강아지 발을 분질러 치료비가 적잖이 나온 친구도 있었다니까요. 그런 친구들은 밤에도 '빳다(퍼터)'를 끼고 자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본인 이야기 아니냐고요? 뭐, 그런 일을 꼭 밝혀야만…. 가정사이니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도록 해요.

제일 꼴불견은 실전 연습한다고 아파트 단지 내 출입 불가 잔디밭에 들어가 골프채 휘두르거나, 벙커 탈출한다고 어린이 놀이터에서 모래 퍼내는 자들이에요. 약간 호리호리한 몸매에 안경을 쓴 사유하는 철학자 타입인데, 아파트 단지마다 그런 사람 꼭 있어요. 뜻대로 안 되는지 가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옆에 놓인 골프 이론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모래를 한 웅큼 퍼내요. 이번엔 눈에 모래가 들어갔는지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빕니다. 비빌수록 눈은 더 따갑게 마련이죠. 그런 자들을 보면 숨어서 색 물감 총으로 정조준해 쏘고 싶어요.

일반 골퍼들은 드라이버 거리에 민감합니다. 연습장에 도착하자마자 워밍업도 없이 드라이버를 꺼내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러 댑니다. 왜 그렇게 주야장천(晝夜長川) 드라이버를 휘두를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드라이버 거리가 남자의 '고유 능력'과 관계된다는 속설 때문이지요. 물론 티잉 그라운드에서 드라이버를 '빡세게' 치고 나가면 여성동호인이나 캐디들이 "호오~!" 찬탄하며 경이롭게 쳐다봅니다. 허지만 드라이버 멀리 내질렀다 해서 그날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단언컨대, 비거리와 남자의 특정한 능력과는 상관없습니다.

드라이버가 실적 쌓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 중 상식입니다. 드라이버를 휘두를수록 힘이 들어가 스윙은 망가집니다. 중후장대(重厚長大)하면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속이 없다고요. 포대(砲臺) 크다고 위력이 있나요? 포신(砲身)이 커야죠. 그보다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뚜막(그린)에 먼저 올라가는 '개[犬]'가 제일이에요. 아니, 부뚜막에 오른 다음부터가 중요하다고요. 먼저 건더기를 건져먹어야 하니까요. "챙그렁!" 맑은 소리 나 홀로 듣는 중에 "룰루루루~" 휘파람 불며 다른 홀로 걸음을 옮겨야만. 미적거리다간 캐디들에게 눈치 보이거든요.

드라이버는 20~30번 휘둘러 감을 익히면 그만입니다. 성적을 내려면 짧은 채, 즉 퍼터-->웨지-->쇼트 아이언-->미들 아이언-->페어웨이 우드-->드라이버 순서로 많이 연습하는 편이 낫습니다. 벙커나 러프에서의 탈출 등 위기상황에도 대비해야지요. 이 금언은 자주 무시되는 것이 유감이에요. 전에 그랬듯 오늘도 골퍼들은 연습장에서 죽자 사자 드라이버에 매달릴걸요. 골퍼(남성)들 본성이 쉽게 바뀌나요? 잘못하면 갈비뼈 금 간다니까요. 그래도 드라이버 빼 드는 당신, 무어라? 큰 것이 좋은 것이다? 하긴, 이왕이면 다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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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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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자 (110.XXX.XXX.90)
"색 물감 총으로 정조준해 쏘고 싶어요" 이 대목에서 빵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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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19: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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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술시 (117.XXX.XXX.214)
아마추어는 열심히 연습. 아니면 즐기면서 쳐야...과유불급이요 안분지족해야 재미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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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12: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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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223.XXX.XXX.82)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교수님의 경험담 섞인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늘 글쓰시는 교수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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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09: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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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jndg (221.XXX.XXX.15)
필자께서는 이제부터 골프를 즐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10년여 외도를 하셨다고는 하나 LPGA투어 생중계를 소상히 꾈정도면 플레이어들의 겉모습만을 감상하시는 것 같지는 않고, 머리속에 그옛날 초짜시절 에피소드가 살아나는것을 보면 지금 다시 필드에 가면 혹시 압니까 만년 싱글로 재탄생할지....
이렇게 말하는 저는 올해부터 갑자기 드라이버가 50여미터 줄어들어 160~180을 넘나들어 업계 은퇴를 심각히 고려중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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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08: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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